대구백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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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첫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무슨 일에나 첫 번째가 가지는 의미심장함으로
조금은 설레이며, 떠난 걸음이었습니다.

우연히, 공군에 함께 지원한 아들들 덕분에
입대하던 날에도 카풀을 했었던 남편 선배네 부부와 이번에도 함께였지요. 

면회신청서를 적고 자리를 잡고 아들들을 기다리며 둘러보니
여기저기 면회온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벌써 아들을 만나 준비해간 음식들을 나누고 있는 가족도 있고
우리처럼, 아들을 기다리느라 초조한 얼굴로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아주 이뿐 한쌍의 연인들의 반가운 재회도 지켜보았구요.

아직은 여려보이기만 하는 얼굴에다 어딘가 어슬퍼 보이는 군복 차림.
그래도 새카맣게 탄 얼굴에 조금은 늠름해진 아들들과 기쁜 재회를 해서
밤잠 못 이루고 준비해간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부대 이야기도 듣고 당부할 말들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미 인터넷에서 면회 온 가족의 무질서 때문에 
장병들이 고생한다는 얘기를 알고 떠난 길이었는데요,
참 여러가지를 보고 생각이나 반성도 많이 한 하루였습니다.

아들의 친구도 함께 불러서 준비해간 맛있는 음식과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단란한 한 가족의 모습도 있었지요.
참 보기좋았는데요.. 그 뒷모습은 조금 씁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단란한 모습으로 화기애애 면회를 끝낸 가족이 검은 비닐 봉지에 쓰레기를 모두 담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죠.
얘길 하고 싶었는데, 다른 일에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타이밍을 놓쳤고, 
내내 찜짐한 기분이었는데,
우연히 앞쪽에 갔던 선배네 부부가 한 부인을 가리키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종량제 봉투에 남들이 함부로 버려두고 간 쓰레기들을(주변의 것까지) 주워서
일일이 분리수거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도, 여기 직원인가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면회 온 어느 장병의 어머니였다는군요.

저도, 면회 간 가족이 함부로 버리고 간 음식쓰레기 등을 면회 후 남은 장병들이 맨손으로 치우기 때문에
저녁을 못 먹을 정도로 비위도 상하고,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갔었기에
처음부터 종이 하나라도 떨어뜨릴까 신경을 써서 챙기긴 했었습니만,
그 분의 모습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더군요.

자신들의 편의만을 생각한 가족과
내가 가져간 쓰레기는 되가져 온다고 우리 차에 몽땅 싣고 온 나와
아들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원래의 성품이었던지.
어쨌든 주변의 쓰레기를 주워서 분리수거를 해 주신 분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자리에서도
다른 여러가지의 행동과 모습들에서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름, 경우 밝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허세였던지요.
그저 다른 이의 잘못에 대해(그냥 쓰레기를 버리는 분) 지적을 하지 못한 것이 찜찜했었는데,
그렇게 아무런 내색도 않고 솔선해서 몸으로 실천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과 거기에서 나오는 삶의 건강성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몸으로 부딪치는 실천보다는 꼬장꼬장 이론이나 파고 있었던 걸까요?
때로는 한마디의 말보다도 더 웅변적으로 와닿는 삶의 현장이라는게 있는데 말이죠.

이러이러한 사실이 옳다거나, 이렇게 해야만 해 라고 주장했던 일들의 무용함이
예리하게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관념뿐인 어슬픈 이론이 아니라, 실천속에서 탄탄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움직임을 싫어한 자신을 깊이 반성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구구절절 참 얘기도 길었습니다만,
결론은,
군대 있는 가족이나 애인에게 면회가시는 분들은,
자기 쓰레기만이라도 되가져 옵시다는 것. 하하.
  • ?
    이병은 2009.06.23 07:33
    군대 있는 가족도 애인도 없으니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산에 가면 쓰레기라도 줍겠습니다.
    샘이 쓰신 글을 읽으며
    지식이 머릿속에 이상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을 버거워하며
    지식으로 그치고 있는 것에 대해... ㅠㅠ
  • ?
    서지미 2009.06.23 07:33
    시대를 거쳐오면서
    우리는 삼팔육세대다.
    함부로 말할수 없게 된 요즈음.
    지금은 사팔육이 되었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할수 있는 그런 용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잘못되지 않기.
    그러면서 착한세대로 용기있는 세대로 변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9세처럼 보인다는 사팔육세대 홍종연총무님
    군인 간 아들 몸건강. 정신건강.
    두루두루 성장하는 군생활 되었으면 좋겠네요~~
  • ?
    정수임 2009.06.23 07:33
    홍종연 선생님 부지런함에 으앜~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
    그런데 말이지요.정말 아들이 군대간거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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