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할아버지

by 김수호 posted Dec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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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韓道] 김수호[金秀鎬]의 하루- 구멍가게 할아버지

사무실에는 유명 밀크커피가 몇 박스씩 한꺼번에 내려오지만 설탕커피만 먹다
보니 밖으로 돌아나가 구멍가게 자판기를 하루에 두 번씩 이용한다. 자판기 크림에도 얼마 전 멜라민 함유가 의심되 제품을 수거하고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판매를 일시 중지시키기도 했던 일도 잠시이고 자판기 커피 한 두 잔에 다른 사람들의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다 지나가는 동료간에 낭패를 보는 경우만 피하면 요긴하게 정을 나눌 수도 있어 좋다. 밖에 돌아나가면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주인인 자판기는 신권을 인식하지 못하여 가게에 들러 동전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동안 몸이 편치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시던 팔십을 넘긴 할머니가 앉아 있는 날이면 옆에서 할아버지가 몇 번을 일러주어도 동전 바꾸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 오후 주방에서 힘들게 설거지하시던 할머니가 그 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세상 사람들과의 이별을 고한 것이다. 아침 햇살에 얘기 나누던 이웃 쌀가게 아줌마와도 영영 이별이요 대낮에 일없이 날일 하며 소주 반 병 들던 손님 아저씨와도 이별이요 남은 음식 주면 꼬리치던 강아지와도 이별이다. 오늘 아침에 여느 때와 같이 동전을 바꾸며 장사를 잘 치루기는 하셨는지 구십이 넘으신 할아버지는 넉넉하지 못한 자식들이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나 며느리 눈칫밥도 그렇고 들어가기 싫다며 잠시 할머니 생각을 하셨는지 아침부터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시길래 구멍가게 소일하시며 건강을 신경쓰시라고는 했지만 그냥 인사말일 수 밖에 없었다. 정신없는 할머니에게서 과자나 아이스크림 몇 개로 거스름돈을 제멋대로 가져간 어린 학생들에 대한 서운함도 오래가고 대형슈퍼마켓이 들어서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대한 야속함도 오래가고 유난히 착하셨던 할머니에게 평생 구멍가게로 풍족히 못해줬던 할아버지 자책도 오래가겠지만 너무나 소중한 인생들만은 너무 짧을 수 밖에 없음을 아는지 추위가 이른 올해 11월 바람이 휘돌아 불며 오는 시간을 유난히 재촉하는 아침이다.




 

한도(韓道) 김수호(金秀鎬) planning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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