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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분자 RNA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 있는 존재

 2009년 07월 22일(수)






미르(miR) 이야기 이중나선의 발견은 즉시 분자생물학에 하나의 도그마를 만들었다. 크릭은 카톨릭에서 사용되던 도그마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DNA에서 단백질로 흐르는 정보의 흐름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도그마라는 말은 종교용어다. 특히 어떤 종류의 증명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현대적 의미에서는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훗날 크릭은 이 용어의 사용을 후회하지만, 도그마라는 말이 남긴 상처는 크릭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었다. DNA는 독재자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절대적 분자로 생물학자들과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 파고들었다. DNA의 D는 Dictator, 즉 독재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후 정보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RNA로부터 DNA가 만들어지는 역전사 과정이 바이러스에서 발견되면서 중심 도그마의 위용은 흔들렸다. 생물학에는 언제나 하나의 이론으로 포섭되지 않는 예외들이 널려 있다. 따라서 역전사 과정을 하나의 예외로 보는 관점과 중심 도그마는 공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온이라는 괴물이 발견되었다. 단백질은 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중심 도그마의 진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온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단백질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효모에 대한 연구는 프리온이 획득형질의 유전에 관여하는 분자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중심 도그마는 생물학이라는, 많은 예외가 존재하는 다양성의 세계에서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되지는 못했다. 생명의 세계는 경이롭고 다양한 시도로 점철된 진화의 역사가 보여주는 흔적의 집합체다.

길고 긴 진화의 역사에서 얼마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 중 얼마나 많은 시도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다양성 앞에서 주눅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원리들을 찾아나가려는 모순된 존재들이다.

중성자의 발견과 RNA의 재발견

자연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겨우 백 년 전에 처음으로 원자의 존재가 밝혀졌을 때, 원자는 단지 전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전자와 양성자만으로도 당시 알려져 있었던 원자의 특성이 대부분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2년 제임스 쇼드윅에 의해 중성자가 발견되면서 그동안 잘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명확해졌다. 중성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였다.

RNA의 역할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최근의 생물학은 물리학에서 중성자가 발견되었던 그 시대에 비견되곤 한다. 크릭의 도그마에서 RNA의 위치는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는 수동적인 분자로 그려졌다. 정보의 전달과 복제는 DNA가, 유기체를 유지하는 다양한 기계적 기능들은 단백질이 가지고 있다. RNA는 이 과정을 매개하는 전령에 불과했다.

중성자의 발견과 RNA의 발견은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중성자와는 달리, RNA는 이미 DNA의 구조가 발견되기 전부터 존재가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견된 것은 RNA라는 분자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RNA의 새로운 기능들을 발견했다. 이제 RNA는 생물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던 중요한 두 분자, DNA와 단백질과 같은 지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RNA에게 그러한 지위를 선사한 것은 ‘조절자’로서의 RNA의 기능이다.

유기체 복잡성의 역설

인간유전체계획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인간의 유전자 수가 보잘것없다는 점이었다. 유전자의 개수로 유기체의 복잡성을 설명하려던 20세기 생물학자들의 관점은, 크릭의 도그마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의 분자생물학자들은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란 단백질을 만드는 DNA 부위에 생긴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들은 단백질을 코딩한 유전자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생명체를 연구해왔다. 단백질은 강력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유기체의 복잡성은 충분히 설명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DNA-단백질의 패러다임 안에서 분자생물학의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만족했다. 유기체는 DNA와 단백질의 상호작용 속에 피어나는 꽃이었다.







유전자의 개수로 유기체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어렵게 되자, 과학자들은 즉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조절유전자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유전자의 개수보다는 어떻게 유전자를 조절하느냐가 유기체의 복잡성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당연히 DNA의 전사를 조절하는 프로모터와 이곳에 달라 붙는 단백질인 전사인자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절에 대한 강조는 네트워크에 대한 유비를 이끌어 낸다. 당시 발전하던 복잡계 과학과 컴퓨터 과학자들이 DNA와 단백질의 패러다임 안에서 분자생물학자들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모델링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프로모터와 전사인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막 개발되어 생물학자들을 흥분시켰던 DNA칩 기술이 있었다. 광범위한 대량의 전사체 프로파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학자들은 학제간 연구를 통해 유기체의 복잡성을 설명해냈다.

유기체의 복잡성을 유전자의 개수로 측정하고자 했던 시도 이전엔, “C값 역설”이라 불리던 문제가 있었다. 유전체의 크기와 유기체의 복잡성 사이에 그 어떤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설의 핵심이었다. “C값 역설”과 비교되는 유전자 개수의 역설을 “G값 역설” 혹은 “N값 역설”이라고 부른다. G는 Gene을, N은 Number를 상징한다.

결국 유기체의 복잡성은 복잡성에 걸맞아 보이는 유전체의 ‘크기’로도,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의 ‘수’로도 표현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아주 모호한 해답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라는 창발성의 화두가 그것이다.

하지만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언명은 그 자체로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부분들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어떻게 유기체의 복잡성이 창발하는지를 연구하지 않고는, 전혀 단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절자, RNA의 재발견

과학자들이 유기체의 복잡성을 조절과 네트워크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을 때, RNA가 수줍게 등장했다. RNA는 단백질의 번역을 조절하는 조절자라고 자신을 광고했다. 처음엔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단백질의 양을 조절하는 것은 주로 전사인자라는 단백질 그 자신이었고, RNA가 조절하는 것에 비해 훨씬 강력한 동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충과 식물에서 시작된 RNA 간섭에 대한 연구는 초파리와 생쥐 그리고 인간으로 확장되면서 그 광범위한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RNA에 의한 유전자 발현의 조절은 과학자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게다가 우리 유전체의 대부분이 전사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론에 쐐기를 박았다. 어쩌면 유기체의 복잡성을 결정하는 ‘조절’과 ‘네트워크’의 중심에 RNA라는 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과학자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53년 이후, RNA라는 분자의 역할이 새롭게 밝혀지는 데 6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RNA의 재발견은 과학의 발전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과학자들이 얼마나 이미 발견된 단서들만을 가지고 세상을 일반화하기를 좋아하는지가, C값 역설과 G값 역설에서 드러난다.

반면, 그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해줄 새로운 발견들에 열려 있는 과학의 성격도 찾아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보수와 진보의 복합체다. 그들은 기존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고하면서도 끝없이 새로운 발견에 목매는 존재들이다.







중성자의 발견과 RNA의 재발견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물질의 ‘존재’로 혁명이 이루어진 물리학과는 대조적으로, 생물학에서는 존재하던 물질의 새로운 ‘기능’에 의해 혁명이 이루어졌다. 두 학문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다르다. 생물학의 ‘기능’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문제들에는 많은 해답이 있거나, 아예 해답이 없다. 하나의 해답이 있는 문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하나의 해답을 찾아가는 물리학과, 그 물리학을 경외하면서도 다양한 답에서 만족하는 생물학은 그렇게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RNA도 그 다양한 해답의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NA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혁명이었다. 더 이상 발견될 것이 없어 보이던 생물학계에 RNA라는 분자는 언제나 자연이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 있는 존재임을 다시금 드러내 주었다. RNA의 R은 Revolution의 R이다. RNA는 적어도 지금 생물학자들에게는 혁명의 분자다.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7.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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