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모 과학관에는 거대한 별자리 교육용 돔이 있었죠. 왜, 천정이 거대한 반구형 스크린으로 되어 있고 학생 떼가 둘러앉은 후 이윽고 불을 끄면 영상으로 다닥다닥 박힌 수많은 별들을 쏘아 주는.. 그것. 당시 어렸던 제가 그것을 보고 느꼈던 첫 감상이 뭐였던 줄 아십니까?
'흥, 저렇게 별이 많이 보인다고? 뻥치네.'
^^;;;;;
네, 저는 그다지 순수하지 않았던 학생이었던 겁니다..먼 옛날 공기가 깨끗했던 시절에야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백 보 양보해서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어느 낙후된 지역은 저 별의 반쯤은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맨날 올려다 보는 대한민국의 하늘에 기껏해야 별은 스무 개 남짓.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 이상의 별 볼 일 없다.. 뭐 그런 다소 시니컬한 자세였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그제, 제가 '이만큼은 보이겠지'라고 상상했던 것의 딱 두 배쯤 되는 양의 별들을 보고 왔습니다. 내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겠다.. 그게 얼마나 오만한 자세였는지요.
제가 엊그제 처음으로 다녀온 독서산방이란 곳은, '내가 매일매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 왔던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정도로 충격적으로 많은 별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방이 프라이팬의 테두리마냥 야트막한 산으로 둥글게 둘러싸여, 지상의 빛으로부터 확실하게 차단된 그 곳은 그야말로 촘촘한 별빛에 매혹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하늘이 열렸다'고 표현하시더군요. 구름 한 점 없이 그처럼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이, 매일 있는 당연한 모습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서울에서 모진 비를 맞으며 여러 시간 달려간 정성을, 하늘이 굽어살피신 모양입니다. ^^
저희 서울팀이 상당히 늦게 도착해 버린지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강의가 지연되어 버리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사실 당연히 먼저 시작하실 줄 알았는데, 먼 동네에서 오는 처음 오는 회원(접니다 ^^;)을 위해서 특별히 끈기있게 기다려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몸둘 바를 몰랐다지요.. 여러분들의 따스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소문난 명강의, 박문호 박사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무식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애초에 흐름만 잡아내고 뼈대만 추려 내면 되는 거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참석했습니다만 천문학에 상당한 조예를 이미 갖추신 분들이 많이 계셨고.. 수준의 격차가 하도 심하야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한 컵의 모래를 퍼담아 주셨는데, 그 중에서 네댓 알 정도 손바닥에 쥐었을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하려나요.. 중간중간 보여 주시는 어여쁜 영상들이 자괴감에 빠진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 중에서 여러 색깔의 보석같던 형형색색의 별들을 한 페이지에 모아 둔 사진과, 펑펑 폭발하듯 이글거리는 태양의 동영상이 특히 기억에 남더군요. 그 밖의 여러 가지 단편적으로 이해한 지식들과 함께..(중력은 무자비하다! 는 것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박사님..)
이론에서 참패를 당한 저와 같은 사람은 실전에서 감동을 대대적으로 맛봐 주어야 합니다. 네, 별이 풍부하게 흩뿌려진 하늘이 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래, 난 별 보러 왔지. 이론이야 까짓 거 나중에 채우면 되는 거지..시력이 안 따랐지만 눈에 힘을 힘을 주면서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보려고 용을 썼습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토성과 금성이었습니다. 금성도 일식(월식?)현상이 나타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 반달 모양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꼭 보석 같아서 너무나 예뻤습니다. 토성은 그야말로 무슨 애기 반지같더군요! 사진이나 그림에서는 항상 엄청 크게 표현되어서 그런지 좀 투박한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파인더 속에 있는 그것은 어찌나 앙증맞던지..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이틀이 지난 지금, 그 때 느꼈던 그 감동들이 다시는 맛보지 못할 비현실적인 환상처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 날 만나뵈었던 수많은 따스한 분들의 온정과, 박문호 박사님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열정, 우리가 추울까 배고플까 끊임없이 염려하시며 보살펴 주시던 사모님의 배려, 그리고 자면서 놀면서 그냥 앉아만 오기에도 너무나 힘들었던 그 머나먼 길을 내내 잠도 못 자고 운전해 주셨던 문경수 회원님, 차 안에서 어리버리한 초보 회원을 위하여 100북스에 대한 브리핑에 수고해 주신 주현씨와 혜영씨.. 그들은 자신있게 예고하더군요.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할 거에요.' 네, 절대 아니라고 할 수가 없겠군요..
이 자리를 빌어 신경써 주시고 수고해 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근데 저, 토성이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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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혜경씨가 아니라 혜영씨 일것 같은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