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의식구조

by 관리자 posted Jul 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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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7
저자 이규태
출판사 신원문화사
발표자 김갑기
일자 2003-07-22
<<토론자 소개>>

이번 토론은 청주대학교 김갑기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김갑기 교수님은 송강 정철 문학에 평생을 바치시고 동 분야 연구에 금자탑을 세우신 한문학의 대가이십니다. 송강에 관한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내셨으며 대표적인 저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松江 鄭澈 硏究 : 國·漢文詩歌의 源流論的 考察 / 김갑기(金甲起) 二友出版社 1985

松江 鄭澈의 詩文學 / 김갑기(金甲起) 梨花文化出版社 1997

현대판 선비의 길을 걷고 계신 김갑기 교수님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천리길을 맨걸음으로 주파하는 기록을 세우시기도 한 순수 자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체육진흥회 부회장, 한국 걷기과학학회 감사로도 맹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책 소개>>

선비란 누구인가?

언론인 이규태씨가 말하는 조선의 선비

꽃에는 그 꽃의 품격에 따라 화품(花品)이 있듯이 우리 선비사회에도 사품(士品)이라는 것이 있었다. 겨울에도 독야청청하는 소나무나 눈 속에 피는 매화의 화품을 높이 먹였듯이 사품도 그 등급을 먹이는 지조와 행동이 있었다.

그 사품의 평가기준을 들면 이렇다. 첫째 재물을 둔 태도다. 선비는 손에 돈을 쥐지 않고 쌀값을 묻지 않으며 닷푼 열량하는 값을 입에 하지않는다. 곧 이재(理財)와는 담을 쌓아야 하고 따라서 청빈 근검절약해야 한다. 그래서 선비는 비단옷을 입더라도 나들이 할 때에는 베두루마기를 위에 걸치고 나가야 했다.

둘째 의로운 일이나 옳은 일에 의연하고 사적인 일에 우선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영조때 선비 김수팽이 아우집에 들렀더니 항아리가 많은지라 어데 쓰는 항아리냐고 물었다. 아내가 염료인 남(藍)을 만들어 생계를 잇는다 하자 우리 형제가 나라에서 녹을 먹으면서 영업을 하면 가난한 사람은 뭣을 먹고 사느냐며 남 항아리를 모조리 엎어버렸다.

셋째 옳은 일이면 어떤 수난이 닥치더라도 앞서 감행한다. 오랑캐에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유일한 타결책인 항복문서를 척화파가 찢자 이를 거둬 모으며 “조정에서는 이를 찢는 사람도 없어서 안되고 이를 주어 모으는 사람도 없어서 안된다”하며 주워 모은 용기 있는 최명길(崔鳴吉)이야말로 우러러볼 선비다.

넷째 일신의 이해에 좌우되어 지조를 바꾸는 것은 선비가 아니다. 대대로 남인 가문인 영남 선비 장현광(張顯光)의 손녀 장씨는 남인인 안씨 집안으로 시집가 살았다. 한데 그의 손자가 벼슬에 급급한 나머지 서인에게 붙자 남인을 고수하는 사위집에 업혀가 그집에서 죽었다. 그는 임종하러 온 변절한 손자를 끝내 보지않고 죽었다. 요즈음 정당 바꾸는 것을 밥 먹듯 하는 것을 보면 선비정신은 물 건너간 전설이 되고 말았다.

다섯째 인간 본연의 욕망이나 욕구를 억제하는 것으로 본을 삼았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화초나 과목을 기르지않고 완물을 기피했다. 한말의 미국 공사가 즉석 녹음이 되는 축음기로 한국 대신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파티석상에서 조금 전에 한 즉석연설을 녹음해서 틀어놓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만은 어느 한 대신도 그 기색을 보이지않고 못들은 척 건 기침만 하더라 했음도 바로 완물상지(玩物喪志)의 선비정신의 발로랄 수 있다.

여섯째 처세에 약삭빠르지 않고 적당히 어리석으며 이해에 민감하지 않고 아둔하여 항상 손해를 보며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변통이 없으나 심지만은 곧아 그 앞에 허리 숙이는 존재다.

일곱째 나름대로 남 가지지 않은 멋을 지녀야 한다. 중종때 선비 김정국이 늙으막에 돈 모으기에 급급한 친구에게 충고한 글 가운데 선비 최저의 생활수단과 멋이 적시돼있다.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갖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기 두어 벌이면 입지않는 여벌의 옷이 있고 주발 밑에 먹다 남은 밥이 있으며 눕고도 남을 구들이 있다 했다.

그리고 다만 없어서 안될 것은 다락에 한 시렁 서적과 심심하면 튕길 거문고 한 벌 추우면 볕 쪼일 쪽마루 한쪽 기나긴 밤 차 끓여 마실 화로 하나 늙은 몸 의지할 지팡이 하나 그리고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한 것이요 했다.

이글을 쓴 이규태씨는 지금 조선일보 전무 대우로 있으며 같은 신문에 ‘이규태 코너’를 10년 넘게 싣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등의 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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