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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생각하게끔/한겨레

by 이동선 posted Aug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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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생각하게끔

박영선/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나는 이렇게 읽었다/소설처럼

우리는 외부의 요구에 의해 책을 읽기도 하고 자발적 동기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이 두 경우 중에서 어떤 경로로 읽은 책이 한 개인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책읽기를 권하는 수준을 넘어서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주로 학생들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내놓기를 원한다. 그것은 꼭 거창한 독후감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느낌이나 하다못해 주인공 이름이 뭔지는 알아야겠다는 심산이다. 아이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해 하면 도대체 뭘 읽었느냐 하면서 핀잔을 준다. 아이는 책을 그냥 재미있게 읽었을 뿐인데 어른들이 책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러면서 점점 책에서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책을 읽는 행위는 무상성 그 자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됐지 책을 읽은 후에 어떤 결과를 바라는 것은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마다 개성이 있듯 책읽기에도 체득해가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는데 어른들이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조급하게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글을 깨친 후에라도 책을 읽어주는 일이 최고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학 강단에서 책을 읽어준 시인 조르주 페로스의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 학생들이 처음에는 심드렁해하다가 나중에는 도서관에서 서로 책을 빌려 읽으며 책읽기에 열중하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 시인의 수업에 호응할 수 있었던 건, 그 시인이 학생들에게 책읽어주는 행위의 대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문학을 조각조각 분석해가면 인색하게 떼어주기보다는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나누어 주었다고 들려준다.

이 책 결미에서는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항이 ‘책을 읽지 않을 권리’다. 독서가 사람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생각은 대체로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볼 것도 없이 야만인이 될 소지가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 외에도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모든 항에 권리라는 말이 따라오는 걸 보니 책을 읽는 일이나 읽지 않는 일이나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교인적자원부에서 독서인증제나 독서이력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책을 읽지 않은 아이에게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학부모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아이들에게는 학원을 하나 더 다녀야 되는 짐이 되고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실적 문제를 불러온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제도가 책읽기를 한 후 시험을 보게 하고 그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서 이력으로 남기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다니엘 페나크가 말한 인권과 맞서는 제도라는 데 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정서가 풍부한 아이로 자라기를 기대한다면 우리 어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책을 매개로 하여 교육하려는 것은 오히려 교육을 그르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염두 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훌륭한 교사(학부모)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혀야 한다.

박영선/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한겨레신문 200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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