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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백 권 읽기 운동본부



                                          한비야



“올해부터 죽을 때까지 1년에 백 권 읽기”


여고 1학년,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단짝 친구 영희와 굳게 한 결심이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1학년 필독 도서 백 권 목록>에 있는 책을 읽고 책 제목을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대단히 큰 자랑거리였다. 그건 순전히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굴뚝같이 믿었던 국어 선생님 때문이고, 그 선생님이 우리 수준에 꼭 맞는 목록을 작성해주셨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이 총각 선생님을 우리 학년 아이들 모두가 은근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목록에 있는 책을 손에 들고 다니다가 복도에서 국어 선생님과 마주치면 선생님이 “아, 그 책을 읽고 있구나!” 흐뭇해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 역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심히 책을 끼고 다녔다.<중략>


어쨌든 우리는 그다음 해 겨울까지 백 권을 몽땅 목록에서 지울 수 있었다. 영희가 먼저 다 읽었는데 난 그게 분해서 봄방학 동안 마지막 몇 권을 밤을 새우며 읽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학년 마지막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백 권 다 읽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을 때, 당당히 손을 든 우리 둘을 바라보던 선생님의 놀라는 표정과 그 순간 단짝 친구와 주고받았던 통쾌한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 읽기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고 일기장 뒷면이 독서 일지가 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으며 나만의 독서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내 책 읽는 버릇은 코흘리개 시절이 아니라 꽃다운 열일곱 살에 생겨났다. 그리고 ‘1년에 백 권 읽기’라는 독서 습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해나 세계 오지 여행 중이거나 긴급구호 현장에 장기간 파견 나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1년에 백 권 읽기’를 해마다 달성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생긴 독서 습관이 내 인생을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책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개미와 우주인, 천 년 전 사람들과 천 년 후의 사람들을 만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녹아 들어가고, 그들의 머릿속을 낱낱이 분석할 있단 말인가? 책 읽는 재미를 알고 난 후부터 정말이지 나는 심심하다는 단어를 모르고 살고 있다. 거대한 호수에 빨대를 꽂고 있는 듯 세상의 지혜와 지식과 이야기에 목마르지 않게 살고 있다. 이런 놀랍고도 멋진 세상을 알게 해준 국어 선생님과 여고 시절 단짝 친구가 일생의 은인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이따금 대한민국 전 국민이 ‘1년에 백 권 읽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역시 책을 읽고 있는 옆 사람을 보고는 “이게 몇 권 째예요?”라고 묻고, 길에서 누군가 책을 들고 가면 사람들마다 “어, 저거 작년에 내가 열두 번째로 읽은 책인데”, “올 해 읽으려고 한 책인데”, “내년 목록에 넣어야지” 하는 말들이 터져나오는 상상. 그러면 백 권 읽기를 주제로 한 전국 순회 퀴즈 대회도 생길 것이고, 개그 프로그램에는 ‘독서의 달인’이라는 코너도 생길 것이고, 9시 뉴스에는 “올 해의 첫 백 권 읽기 완독자가 나왔습니다. 충청북도 음성의 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을 전해 듣겠습니다. 이현수 기자, 나와주세요” 이런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백권을 다 읽은 사람들이 지역마다 모여 갖가지 축제를 벌이고 온라인에서는 책 읽은 사람끼리 중매 사이트가 활성화되며, 정부 차원에서는 전국의 백 권 읽기를 달성한 사람을 강변 공원에 초대하여 국빈 대접을 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축하해주는 행사를 벌일 것이다. 3년 이상 백권을 달성한 사람은 세금도 깎아주고 직원 채용 때 보너스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건, 사랑이었네> 161쪽~165쪽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한비야



나는 종종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꽃처럼 사람들도 피어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초봄의 개나리처럼 십대에, 어떤 이는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이삼십대에, 어떤 이는 가을의 국화처럼 사오십대에, 또 어떤 이는 한겨울 매화처럼 육십대 이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거라고. 계절은 다르지만 꽃마다 각각의 한창때가 반드시 오듯이, 사람도 가장 활짝 피어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절대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쓴 《중국견문록》중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라는 꼭지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위안을 받았다는 대목이라서 여기 다시 옮겨 적어 본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그건, 사랑이었네> 95쪽~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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