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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19:31

첫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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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 첫 산행의 추억을 아련히 떠올려 본다. 회사에 입사 후 별다른 취미가 없어 회사와 집만을 오가며 보내던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에는 소규모 모임들이 많았다. 어떤 모임에 가입할까 고민하던 중   함께 근무하던 언니가 산악회를 소개해 주었다.


 


 


"산악회요..?" 



 


임직원 대부분이 산악회에 가입 된 상태였고, 등산은 나이 든 분들이 하는 취미활동으로 생각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가입하는 회원에게 배낭을 공짜로 준다는 했다.


 


"공짜로 준다는 거죠? "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어 사무실 동생과 함께 가입을 했다. 단지 공짜 배낭에 눈이 멀어 가입을 했고, 나의 첫 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 번째 산행지는 설악산으로 결정됐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새로 산 등산화와 공짜로 받은 배낭을 짊어지고 강원도로 향했다 배낭엔 특별한 한 건 없었다. 옷가지들 외에 딱히 뭘 넣어야 할지 몰랐다. 허름한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내일 먹을 김밥을 말았다. 새벽 4시쯤 일어나 어제 저녁에 준비한 김밥과 물을 챙기고 산행을 시작했다.


 


설악산은 채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덜 깬 몸을 이끌고 두  남자(산악회에서 고용한 전문 산악인)를 따라 산악회 회원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배낭을 들쳐메고 야밤도주 하듯 영문도 모른 채 선두를 따랐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새벽 하늘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웃는 듯 했다.  얼마 뒤 함께 동행한 회사 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힘이들어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다. 낙오였다! 동생은 하산 하기로 결정했다. 패전병의 뒷모습이라면 저리 쓸쓸해 보였을까? 난 여유 있게 웃음지며 "이쯤이야..." 하산하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발목을 보호 한다기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산게 화근이었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등산화를 벗었다. 결국 길들여지지 않은 등산화를 신은 나의 발은 물집 투성이었다. 군데군데 잡힌 물집을 보자 하산한 동생이 잠시 부러웠다. 어찌 됐던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내려 간다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가 정상인가?


하늘과 맞다은 푸르름이 잠시 나의 피곤함을 달래 주었다. 이젠 억 만금을 준다해도 더 이상 오를 힘이 없었다. 나무와 나무 가지, 그 옆에 자리잡은 듬직한 바위, 땀냄새를 씻어주는 바람 "넌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니? 난 배낭에 눈이멀어 곳까지 왔단다." 잠시 숨을 고르며 자연과 함께 호흡을 했다. 아직까진 살아있었다.


 


"부탁이야! 제발...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하산하게 해줄래."


 


쉼도 잠시 뿐. 산악회 회원들이 떠날 채비를 한다. 또 오르기 시작한다온몸의 수분이 다 증발했는지 목이 말랐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을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때! 선두를 서던 산악인이 빨갛게 익은 사과 반쪽을 건내 주었다.


 


끝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사과를 한 입 깨물자 흐르는 과즙이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보다 더 달콤한 사과가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도 아직도 그 사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꿀 보다 더 달고 레몬보다 더 상큼한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그 맛…. 지금 이 느낌으로 산행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

 

지금 생각해 보면 화채봉이었다.  화채봉은 정규 등산로가 아니니 우리는 안내했던 두 명의 산악인은 설악산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이곳을 산행하다 적발되면 1인당 벌금이 50만원 이란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화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종주한것 같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일 없건 만은

사람이 제 안이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일은 없다그말이 맞았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마지막까지 버텨준나의 두 다리가 고맙게 느껴졌다. 어림잡아 12시간 정도 산행을 했다. 그것이 나의 첫 산행이었다.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고 다음날 아침 지친 다리를 이끌고 겨우 출근 했다. 그런데 발목이 붓기 시작했다.  통나무 처럼 굴곡도 없이 말이다.  일어나기 조차 힘이 들었다. 길들어지지 않는 등산화가 한몫 한 듯 했다. 결국 다음날엔 결근을 했다. 직장상사도 이해를 해줬다.

 

나의 첫 산행은 이렇게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날 이후 왠만한 산행은 힘들다는 느낌이 덜 한 것 같다.  

 

! 또 한번 그 사과맛을 느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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