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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오피니언] 


'붕어빵 서점'과 책의 위기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 깊이있는 독서기쁨 없애




미국 대통령 후보 매케인, 오바마 두 사람 모두 유아독서환경운동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빈민가 아이들과 중산층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능력에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아 때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난 때문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므로, 국가가 유아독서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을 둔 미국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가? 유아 독서환경은 고사하고 인구 1000만의 서울에, 작은 규모나마 도서관은커녕 서점 하나 없는 동네가 부지기수다.

대학교육 대중화 시대라지만, 지적인 책은 갈수록 설 땅을 잃고 있다. 학력(學歷)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학력(學力)은 절대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가벼운 베스트셀러 위주로 판박이처럼 진열해놓는 서점들을 외국에서는 '붕어빵 서점'이라고 한다. 붕어빵 서점이 문제인 것은 깊이 있는 앎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붕어빵 교육, 붕어빵 출판, 붕어빵 서점, 붕어빵 독서환경은 그 나라 지식산업의 위기를 초래한다.

호암 이병철(삼성 창업자), 대산 신용호(교보문고 창업자)에 이어 은석 정진숙(을유문화사 설립자)마저 세상을 떠났다. 세 분 모두 책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본에 갈 때마다 100년 전통의 산세이도 서점, 기노쿠니야 서점을 먼저 찾았다고 한다. 대산은 세종로 네거리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 수지타산을 초월한 열린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큰 서점을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문제는 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늘어선 유서 깊은 서점들의 반발이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산은 당시 출판문화협회장이던 은석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산의 "참고서는 취급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호암의 응원, 은석의 헌신 등에 힘입어 교보문고는 문을 열게 된다. 1981년 교보문고 개점 첫날 호암, 대산, 은석,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감개무량함에 젖었다. 그리고 27년, 종로의 숭문사, 종로서적, 양우당 등 30여 유서 깊은 서점들이 모두 사라졌다.

최근 작고한 은석이 병석에 눕기 전, 교보문고에 가보고 싶다 하여 필자가 모시고 간 일이 있다. 광화문 주차장에서 매장으로 올라가니, 책은 보이지 않고 소란스러움이 도떼기시장 같았다. 서점 공간의 절반이 잡화부였다. 은석이 놀라며 혀를 찼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도쿄역 앞 금싸라기 땅 야에스 북센터 자손들은 유훈을 지켜 고집스럽게 일등 서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일본의 최대 서점 준쿠도가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켜 화제가 된 데에는 비결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이 흐르는 8층 건물, 층마다 젊은이들이 쉼터 의자에 앉아 책을 살핀다. 구입한 책을 즉석에서 읽을 수 있도록 독자서비스용 10평 커피숍까지 있다. 잘 분류· 정돈된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가 바구니로 수십 권씩 구입하는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24만종 중 10만종은 1년 가도 단 한 권 팔리지 않는다는 한국의 대형서점. 이는 책을 찾는 고객들을 쾌적하게 해주지 못하는 잡화경영, 팔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서점 진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간 호암, 대산, 은석의 개탄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입력 : 2008.09.05 21:53 / 수정 : 2008.09.0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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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이 2008.10.11 02:09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백북스가 해야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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