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26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몇 년 전 가을, 나는 암으로 입원한 노수녀님을 간병하던 중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되던 임종의 순간이 예정 보다 빨리 와 당황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동료가 ‘그럼, 안녕히 가세요!’하고 환자의 귀에 대고 외치는 그 인사말이 어찌나 눈물겹고 절실했던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친지들의 부음을 접할 적마다 나는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말을 고인에게 나직이 건네 보곤 한다.

신앙심이 깊은 이들에게도 죽음이란 ‘평화롭고 초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론의 이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게 죽음을 의식하는 연습이라도 미리 해 두어야 삶의 마무리를 잘 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매 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새롭게’ 살아가는 연습, 모르는 이들의 죽음도 깊이 애도하며 그 슬픔에 동참하는 연습, 삶의 유한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이기심과 탐욕을 줄여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타인의 죽음은 어떤 사람의 명강론이나 어떤 책의 명언보다도 힘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무디게 닫혀서 듣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탔던 7명 중 한 여성이 죽기 전 했던 ‘지구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을 기억하던 날, 나는 밤새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며칠 전 일어난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이웃의 갑작스러운 비극이나 불행을 대할 때 ‘그들이 바로 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별의 슬픔을 겪은 이들과 그 쓰라림을 나누며 작은 위로라도 건네는 노력은 우리가 해야 할 거룩한 의무임을 다시 깨닫자.

‘주님, 자비로이 이 밤을 비추어주시고, 밝아 오는 아침에 당신 이름으로 일어나 건강한 몸과 기쁜 마음으로 새날 빛을 볼 수 있도록 오늘 평화 속에 편히 쉬게 하소서.’

하루 일과의 ‘끝 기도’에서 늘 습관적으로만 외우던 기도 내용을 다시 묵상하며 나는 새 아침을 기다린다.


이해인 수녀·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44 홍보 <자연의 발명> 다윈에게 어깨를 내준 훔볼트의 전기 file 스트라이더 2016.07.21 315
4243 홍보 <현대과학으로 풀어본 금강경> 강좌 수강생 모집 신윤상 2016.08.13 353
4242 홍보 "공유인으로 사고하기가 중요한 이유" ―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출간기념 저자 데이비드 볼리어 화상특강! (10/31 토 저녁 7시) 갈무리 2015.10.25 1618
4241 공지 ' 김억중'의 집읽기와 " 융'의 마음읽기 4 김갑중 2008.09.23 1629
4240 공지 '100권 독서클럽을 위한 제안' -31.5.08 송근호씀 4 송근호 2008.05.31 1908
4239 '과학과 사람들'의 팟캐스트 공개 강연 -『할리우드 사이언스』 저자 강연 송치민 2014.02.12 1691
4238 공지 '과학적 사고' 발표 후기 16 이정원 2008.09.09 1738
4237 '깨어있기' 과정 -이원규, 미내사클럽 대표 (한국정신과학학회 6월 월례회 강연) 김선숙 2014.06.16 1566
4236 '나로호' 2차발사 성공을 기원하며..;(D-2) 9 서지미 2010.06.07 1956
4235 공지 '뇌, 생각의 출현' 온라인 서점 현황 2 문경목 2008.11.10 1719
4234 공지 '뇌과학공부소모임' 모임 장소 공지 2 엄준호 2007.11.07 1829
4233 '뇌과학과 마음'주제 격론(미디어 붓다) 4 안희찬 2009.09.08 1796
4232 '느끼는 뇌' 강연을 듣고나서... 이재민 2011.03.29 1788
4231 공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윤석련 2003.02.04 2560
4230 공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구용본 2003.02.04 2938
4229 공지 '대구의 그들이 나'라는 마음으로..이해인 고재명 2003.02.22 3012
» 공지 '대구의 그들이 나'라는 마음으로..이해인 윤석련 2003.02.22 2665
4227 공지 '더 나이든 후에도 어느 분처럼'을 읽고 3 전재영 2008.03.16 1271
4226 '마음 거울' 청안 스님 강의 정리해서 올려주실거죠? 1 하경애 2009.05.14 2188
4225 공지 '면벽침사록' 중인 사람 인사올립니다. 4 김래호 2008.06.22 191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