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2118 추천 수 0 댓글 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얼마전 강교수님의 한글에 대한 글을 읽다가 10여간 묻어두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점심시간에 열심히 글을 쓰다 마무리 못했는데, 지난 화요일 [프로젝트 써!]에서 마무리 했지요..  좀더 다듬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마침 아랫글 전재영 회원의 글에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완성되지 않은채로 일단 올립니다.



==========================================

 


내가 살았던 모스크바 시내의 외국인 기숙사에는 세계 각국에서 러시아로 몰려든 인종이 함께 살고 있었다. 가까이는 옆 나라 일본인들과 중국인들부터, 멀리는 남미의 브라질에서 온 친구에 이르기까지(타이핑을 하면서 전적으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나 자신을 보며 놀래고 있다. 하하. 보라,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하하) 여하튼, 유럽의 영국인, 프랑스인, 북미의 미국인, 캐나다인, 중동의 터키인, 아랍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온 모로코 친구들까지. 기숙사는 건물 한 동이었는데, 말 그대로 작은 지구촌이다.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아서, 그저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약 4개월쯤 지나 12월, 년말이 되었을 때엔 적당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이면, 2층 공용 거실에서 파티를 했고, 파티가 끝나면, 각자 자기 나라의 소개를 하곤했다. 그 덕에 나는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는 (미국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었고, 친구들의 입과 마음으로 알게 된 사실들은 너무나 신선했다. 내가 샤블로프카(기숙사가 위치한 거리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다)에 머물렀던 10달 동안에 깨닳은 점은 무지 많은데, 그중에서도 단연 소중한 것은 지구는 하나라는 것. 그리고, 교육을 더 받고, 부자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가난할 지라도모든 인간은 같다(존중의 의미에서)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껏 흥에 겨웠던 우리가 모여 앉아서 서로 상대국의 말을 배우기로 했다. 모두 다 경험하겠지만 영어를 배울 때 제일 처음 시작하는 것인 자기 이름 말하는 법이고, 그 다음으로 배우는 것이 바로 이 표현이다. "I love you." 세계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 혹은 필요한 표현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가보다. 우리는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사랑해“라는 말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불어로, 영어로, 일어로, 중국어로, 한국어로, 터키어로, 브라질어로(포르투갈어로), 그리고 모로코에서 온 친구는 모로코 말로.


  어군이 같은 나라끼리는 비슷한 발음인데 반해, 동양권 세 나라의 발음이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해 서양인들은 너무나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사랑해”라는 말을 서로에게 하며 웃고 떠느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모두에게 써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해 라는 단어를 배우는 즐거운 놀이를 하던 우리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펜으로 각자 자기나라의 언어로 자기 나라의 말을 적어 내려갔다. 아, 그런데, 마지막 순서에 있던 모로코인 친구가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쓸수 없다는거다. 엥? @@ 뭔소리지??


  이유인 즉슨, 아랍어로는 쓸수 있지만, 모로코 말로는 쓸 수가 없다고. @@


 


  이 말을 하는 스무살도 되지 않은 그 청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ㅠㅜ 그렇다. 모로코는 말은 있지만, 언어(글)은 없었던 것이다. 모로코 말을 할 줄 알고, 아랍어를 할 줄 알고, 불어를 할 줄 알며, 지금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모국어인 모로코어는 없다는 것… 이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는가?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파티를 정리하고, 방으로 올라와 일기를 썼다.


  처음으로 한글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꼈다.


  만약 우리 글, 한글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랑해” 라고  말했겠지만, 나 역시 뭔가 야릇한 기분에 한문으로도 쓰지 못하고 울먹였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을 것도 같고, 내가 남의 옷을 입고 으스대는 모양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한글이 있기 전까지 우리도 한문으로 우리말을 대신 표현했더랬는데.... 신라시대 우리가 차용해서 썼다는 이두문자를 사용했던 것처럼, 모로코가 딱 그 상황이었나보다. 이날 이후, 나는 내 서명을 한글로 바꾸었다. 주로 한국인이 적은 동네에 살다보니, 설령 신용카드를 분실해도 멋지게 휘날리는 나의 한글 서명을 외국인들이 어찌 모방할까 싶기도 했고, 내 존재를 일깨워주는 자랑스런 한글로 나의 이름을 힘차게 서명할 때의 그 묘한 맛을 그때부터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한글날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국내에 있었더라면, 해당기관 인터넷에 댓글이라도 달겠는데, 바깥에 있었으니(10년 전모스크바의 인터넷 사정은 매우 열악) 더더욱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빨간날 하나가 줄어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글날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우리글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들지 모른다는 노파심이가. 우리 글은 곧 내 존재와 관련되는 것인데,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얘길 전해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귀국을 했고, 일상에 젖어 살며 10여년이 흘렀나 보다.


 


  얼마전 “우리 글”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오랫동안 마음에 묻어 두었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우리 문자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존재감, 자존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훌륭한 우리 글, 한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들을 100%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글이 있다는 것을 다 같이 느끼고 싶다.


  어떤 도구나 물건이 발전하려면, 많은 사람이 자주 사용해야 한다. 외래 문물의 도입과 함께 기존에 없던 표현을 우리 말과 글로 100% 전달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나는 한표를 던진다. 특히 선진 과학기술이 도입되는 경우, 적절한 단어가 없어 고생하는 것은 한글학자 뿐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직접 사용하는 이들도 함께 아름다운 우리 표현을 찾아내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세계화 앞에 영어 조기교육이 번지고 있는 시기이기는 해도, 모국어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면, 외국어 또한 제대로 사용할 수 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 말, 우리 글을 사랑하자.


  나의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나의 언어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종대왕의 한글 공포 덕택에 10년 전 그날 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울음을 터트릴 뻔 한 위기를 모면했다. 우리 글을 살리는 데 앞장서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릴 일이다.







  • ?
    이상수 2008.03.07 08:22
    문자를 만들 수 있는 민족이었다면 우리 선조들은 지구상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문자 한글이 너무나 자랑습니다. 한글이 있었기에 이렇게 좋은 경험담의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 ?
    전재영 2008.03.07 08:22
    가슴 한 뭉클했어요 한글이 위대한지는 진작에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만 머물러있었더니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정말이지 대한민국에 태어난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이 들어요~ 잘봤습니다^^
  • ?
    이병록 2008.03.07 08:22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동아리 새내기 등 좋은 말을 만들어 내서 사용할 줄 아는 국민입니다. 로스쿨 센터 찬스 타이밍 등 무심하게 쓰는 낱말들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휘관 할 때 표준말을 쓰지 않으면 벌금 천원 씩을 물게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투리는 문화어로 존중하고 있습니다.
  • ?
    이소연 2008.03.07 08:22
    위대함과 감사함을 참 당연함으로 여기고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한글자 한글자가 신기하게 보여요.^^
  • ?
    임석희 2008.03.07 08:22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민족이 한글과 유사한 문자를 고대사 시절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이 2-3천 여년의 세월을 넘어서 세종대왕때 체계화 시키고, 이를 공포했다는 주장.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저는 이쪽에 기웁니다 ^^*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대에도 그 문자가 있었는데, 우리는 없으라는 법 없죠!!), 정말 우리 민족 대단한 겁니다~!!!
  • ?
    이병록 2008.03.07 08:22
    가림토문자, 녹도문자라는 문자가 있었다는 의견이 있지요
  • ?
    강신철 2008.03.07 08:22
    "문자를 쓰는 민족이라야 문명을 말할 수 있다"
    우리 글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아끼고 다듬어 아름답게 가꾸어 나갑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84 공지 "미래 속으로" 발제 자료 고원용 2003.05.12 2895
4283 "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 토론 모임 공지!! 1 이일준 2011.07.04 2524
4282 "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 함께 머리 맞대실 분!!! 8 이일준 2011.06.21 1990
4281 "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을 읽다 든 의문 2 이일준 2011.06.29 1684
4280 "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을 읽다 생긴 의문 2 3 이일준 2011.06.30 2018
4279 "백북스 수준" 에 대한 생각 2 현영석 2011.05.17 1724
4278 공지 "벗" 1 이선영 2003.06.04 2737
4277 공지 "봄이 왔어요"- 상 춘 곡 (嘗 春 曲) 1 전재영 2008.04.13 2452
4276 "불교와 의학의 만남" 강연 알림. 고재명 2003.01.10 2923
4275 "불교와 의학의 만남" 강연 알림. 3 김미경 2009.05.20 1790
4274 "불교와 의학의 만남" 강연 알림. 김미경 2009.05.20 1469
4273 "사람"이 함께 하는 백북스(서울백북스를 다녀오며...) 5 홍종연 2009.08.01 1890
» 공지 "사랑해"라는 말을 한문(문자)로만 써야만 했다면.... 7 임석희 2008.03.07 2118
4271 공지 "사이트가 매우 불안정 한 것 같습니다." 1 한창희 2004.09.21 2621
4270 "사진과 인문학" 소모임 제안 8 임민수 2012.01.01 1511
4269 "세균이 항생제내성을 획득하는 새로운 방법: 이타주의" 8 고원용 2010.09.09 2428
4268 "신경학적 질환"에 대한 강의 8 이일준 2011.05.03 1824
4267 "신의 이름으로" 책 관련 이정모 2011.06.11 1653
4266 공지 "양자역학의 모험" 책 구해요! 2 손경두 2008.10.30 1752
4265 공지 "어릴 때부터 책 읽어주면 머리 좋아진다"/출판저널 이동선 2007.12.01 168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