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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참여한 100books.... 역시나 감동적인 5~6시간짜리 다큐를 보고 돌아오는 느낌... 발표를 했을 땐.. 스포츠에 참가해, 정말 어려운 예선전을 무사히 통과한 후의 속시원하면서도 더 어려운 게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부담감이 공존하는 기분이었다고...할까?

 


처음 백북스에 우연히 참여했던 지난 3월... 그 좁은 방(독서산방)에 빼곡히 어깨를 붙이고 앉아 밤을 새우던 사람들의 열정을 보며 정말 많이 놀랐고 한편으론 나의 가슴 한구석이 '쿵쿵' 뛰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측지선 방정식'이니 '목성의 궤도'니 '특수상대성이론'이니 하는 것들을 몇십장의 수식으로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여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곳은 아닌가보다...' 하는, 도저히 내가 오를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도 '좀더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몇번을 '참여는 하되 내것 같지는 않은' 기분으로 방관자로서 앉아 있었다.(그렇게 되면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버티기 한판이 된다)

발표자들의 발표내용 중 알아듣겠는 건 반의 반도 안되다보니 나의 무지를 확인만 하게 되어 주눅이 들고, 박문호 박사님의 말씀은 왠지 감동은 있으되 멀고 먼 나라 얘기인지라, 영원히 내것이 될 거 같지는 않았다. 감동과 불편함 사이에서 양적으로는 불편함이 훨씬 더 큰 자리였다, 나에겐...

 


그러다 박사님의 전화가 왔다! (그 뒤로, 박사님의 전화가 입영통지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발표를 하게 될 주제는 '탄수화물'이었다. 탄수화물...

'해볼 만하다!!'

어차피 계속해서 방관자로 버티는 대는 한계가 있다. 이쯤에서 아예 접든지, 아님 좀더 앞쪽으로 가봐야 한다. 발표를 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것이 되리라는 건 뻔한 이치, 지금 상태론 백날을 들어도 마찮가지란 생각이었다. 게다가 '탄수화물'이라면 왠지 될 거 같았다. 자신있는 건 아니지만 주저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발표 날짜는 15일 정도 남아 있었다. 우선 기본서로 정해주신 <필수 세포생물학>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 도서관에서 생물학 관련 좀 쉬워보이는 책을 몇 권 빌려왔다.

생물....과목은 고1때 1년을 배운 게 전부였다. 고2부터는 입시 때 선택한 과목(문과는 과학과목 중 1개만 선택을 한다. 나는 특별한 이유없이 물리를 선택했다)만 집중해서 수업이 편성되다보니 나의 생물지식은 21년전에 배운 짧은 지식과 신문과 인터넷에서 보는 생활정보지 수준이 다였다...

주문한 책이 오기까지 2~3일간 3권의 책을 재밌게 읽었다.(3권의 책 중 2권은 어린이책이었다) '음... 배운 지 오래된 내용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될 거 같은데...!'

 

드디어 <필수 세포생물학>이 도착했다. 하지만 왠걸.... 이건 뭐야...

그때의 막막한 기분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순 없지만 어쨌든 뭔가 무거운 것에 가슴이 꽉 눌리는 상태에서 일단 책을 읽었다. 하지만 며칠을 읽어도 가슴을 누르고 있는 무거운 그 무언가의 무게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대충 알 것 같았지만 문제는 낱낱의 문장들은 독해가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용어들이 모두 낯선 것들이었고, 내가 이걸 읽고 도대체 '탄수화물'에 대해 뭘 발표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탄수화물, 탄수화물, 탄수화물, 탄수화물....... 분명 어려운 놈은 아닐 거 같은데.. 그 형체를 숨기고 있어 나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싸움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게 더 힘든 상황이었다...

(중간 생략~/애초 생각과 다르게 쓰다보니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ㅋ)

무사히 발표가 끝났다... 물론 '무사히'는 아니었다. 중간에 발표목차를 대강 정리해서 보냈을 때 박사님 말씀 '이정도는 고등학교 때 다 배우는 거예요, 이정도로는 발표가 안 됩니다'............크~ '어찌하란 말씀이시옵나이까.....'

 

하지만 시간은 예정대로 흐르고, 정해진 날짜는 찾아왔고, 발표는 끝을 맺었다.


발표를 마치자 속은 시원~ 해졌지만, 발표준비 기간 동안 가슴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그 무언가가 없어지진 않았다. 어쩌면 다른 무언가가 다시 가슴을 누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발표날짜가 거의 임박해서야 비로소 내가 뭘 발표해야 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고 그걸 발표하려면 어떻게, 무얼, 얼마큼.. 공부해야 하는지도 알 거 같았다. 

그 막연하게.. 어렴풋이 보이는 '내가 맞닥드려야 할 대상'의 형체가 다시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것 같았다.

과학을 공부한다는 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거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단순히 내가 몰랐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세계를,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는 게 이정도의 발표로도 벅찬데, 과연 가능은 할까?

발표는 끝났지만 또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엉켜갔다.

 


그 뒤로도 한번을 더 발표를 했다. '뇌간'.......

어찌저찌 발표를 무시히 마쳤고, 발표내용의 수준은 별볼일 없을지 모르지만 준비하던 2주 정도의 기간은 여전히 괴로움이었다. 박사님 말씀처럼 하루 2~3시간만 자고 준비를 한 건 아니지만 그 2주 동안은 회사 생활도 정상이 아니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정상적인 생활이 안됐고, 내 정신상태도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번 발표를 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이것저것(회사 업무를 포함해서) 정리를 하는 데 10일은 족히 걸렸다.

 


그런데 2번의 발표로 무엇을 얻었는지 이번 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똑같은 시간 동안, 변함없이 반의 반도 못알아 듣겠는 발표내용이었고 그간 나의 지식의 수준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보다 불편하지 않은 '나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른다는 것 때문에 온지당에 지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이다. 버티기 한판에서는 벗어난 거였다. 어쩌면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갈 길이 멀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진전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2번의 발표를 통해 그 불편함을 없앨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에겐 큰 변화다. 그래봤자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지만....

 

 



*****서지미 선생님의 속시원한 발표를 듣고 저도 용기를 내서 써봤습니다. 인문계 출신의 대다수가 백북스에서의 과학공부를 좇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렵고 불편한데, '아냐, 할 수 있어... 보기엔 어려워 보일지 모르지만 조금만 더 하면 너도 따라올 수 있어' 하기보다는,

'그래, 실은 되게 어려워. 그정도 해서는 안 돼. 빡세게 해야 따라올 수 있을까말까 하니까 단단히 각오하고 와야 해.' '누구든 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쉽지는 않아.' 하고 말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에게 스스로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은 백북스에 와도 불편하고, 안 와도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헌데 10월 모임에서는 왠지 마음이 전보다는 편해지더라구요...

오늘도 짬을 내서 아직 못읽은 <유뇌론>을 읽고 있습니다. 수학 정석도 구해놨구요.


가야 할 길이 무척 멀다는 게 어쩌면 행복한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만큼 즐거운 길을 오래도록 갈 수 있으니까요...

 

즐겁게 공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힘들어 죽겠다. 괴롭다. 미치겠다.' 하는 비명을 솔직하게 게시판에 마구마구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비명이니까요...

 


*저는 앞으로 불평불만을 많이 올릴 겁니다. 그간 너무 참았더니 병나겠더라구요^^
  • ?
    이지홍 2008.10.08 02:51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래저래 전공이 생물과 관련이 있지마는, 강의를 들을 때(특히 천문-물리!) 멍~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책 잘 읽어간다면 뭔가 될 것 같은!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더불어 다른 분들의 열정적인 모습 때문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 같구요~ 즐거운 공부, 좋아요 ^^
  • ?
    임성혁 2008.10.08 02:51
    만나 반가웠습니다. 필수세포생물학 참 멋진 책입니다. 대충 넘겨만 보고 책장에 꽂혀 있는데 시간 되는대로 한번 도전 해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 ?
    서지미 2008.10.08 02:51
    김남중회원님
    간결한 문체속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묘한 매력이 있으시네요..^^
    ........
    가야 할 길이 무척 멀다는 게 어쩌면 행복한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만큼 즐거운 길을 오래도록 갈 수 있으니까요...
    .......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행복해요"
    더 넓고...더 자유로운 세계...
    그 길위에 서 있다는 거...
    좋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한다는 거...
    그 자체로도 축복이라 생각해요
    "날마다 화이팅합시다"
  • ?
    김영이 2008.10.08 02:51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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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영 2008.10.08 02:51
    발표를 위해서 주중에는 직장일이나 이런저런 일들로 피곤하기도 하고 짬이 나지 않아 주말에 집중을 하는 편이었는데, 머릿속에서는 24시간 심지어는 꿈속에서조차 발표에 관한 내용들을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부담이 그만큼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는 거지요.
    하지만 발표를 잘 끝내든.. 아쉬움이 남든.. 어렵든.. 쉽든...이 모든것은 과정이지 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남중회원님처럼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분이 승자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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