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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북스 경주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도곡요(陶谷窯)에서는 자연그대로의 단아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황룡골의 매죽헌(梅竹軒)에서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평화로움을....


박물관과 유적지등에서는 “신라”라는 나라의 뿌리와 그들이 지녔던 문화적인 저력과 숨은 비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행복하고 뜻깊은 여행이었지만 돌아와 정리를 하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신라’라는 나라에 대해





저는  경주김씨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9형제 중 넷째손이신 김은열 대안공파의 제28대 손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에게 신라라는 나라는 ‘당’이라는 외세의 힘을 빌어 삼국통일을 이룩한 영리하지만 용감하지는 못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 국토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 저멀리로 뻗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저는 신라의 기원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훌륭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통해 막연한 오해의 감정과 무지와 무관심을 조금은 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외세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했지만,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당과의 7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매소성 전투를 기념하는 날이 지금의 경북시민의 날인 10월 23일이라고 합니다.


이 전투는 12척의 배로 133척의 외선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처럼 3만의 신라군이 당의 20만대군을 무찌른 기념비적인 전투였다고 합니다.





‘신라’의 문화에 대해





이밖에도 불교국가였던 경주에서 세계를 무대로 큰 뜻을 펼치고 후학을 양성했던 의상과 혜초스님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 불교미술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석굴암의 단면도 모형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신라역사과학관에 가서 고대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아 이를 재창조한 신라불교미술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과학적으로 설계된 모습에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신라의 문화가 저 먼 이역땅인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설명들을 읽으며, 정말 안타깝고 화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5~6차례의 보수공사를 하면서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를 덧칠하고 광복후에는 우리 손으로 세차례의 보수를 하면서 이중 콘크리드돔을 씌우는 바람에 내부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 결로현상이 심해져 지금도 석굴암은 아프다고 합니다. 이 콘크리트를 손상없이 제거하는 일이 아직도 풀어야할 숙제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더더욱 화가 납니다. 어떻게 콘크리트를 덧씌울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무지한 공무원들의 행정적 발상이었는지..





다음으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이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리는 에밀레종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손상되어 붕괴를 우려해 녹음된 소리만을 들려주더군요.


이숙희 교수님께서 예전에 제자들과 함께 송광사에서 들었다는 노을질녘의 종소리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땡~하는 종소리가 울리자 소리의 물결이 산을 휘돌아 뒷머리를 때리더라는.. 그 감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라는....


저도 언젠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박물관에 있던 종의 모형과 설명을 유심히 보게되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그 아름다운 소리의 비밀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음향연구가 ‘진용옥 교수’에 의하면 ‘타음(打音)’ 즉 종을 친 순간에 들리는 소리는 불과 1초이내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체가 떨리는 ‘진동’ 현상이 10초 전후정도 이어지고, 3분정도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맥놀이 현상’이 우리가 듣는 종소리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밖에도 구리+주석+아연의 비율과 음관크기, 당좌위치, 유두의 크기, 명동(울림통)의 깊이, 종과의 거리 등 여러 가지가 소리의 질을 좌우하는 데 특히 ‘맥놀이 현상’의 결정적인 작용원인이 되는 것은 ‘비대칭 분할구도의 무늬’라는 것입니다. 그는 “비대칭없이 맥놀이는 없다”라고 단언하며 한국범종을 과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했다고 합니다. 


서라벌밖에서 종소리를 듣고 서라벌에 당도했음을 알았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종소리가 얼마나 깊고 먼 여운을 가졌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도곡요(陶谷窯)에서는 자연그대로의 단아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꾸미지 않은 순수함과 도자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시던  도곡선생님의 말씀답게 도곡선생님의 댁은 나무결 그대로의 단아함이 있었습니다.


전에 내소사라는 절에 갔을 때 화려한 단청이 없이 나뭇결 그대로 빗살에 새겨진 음각된 꽃무늬들이 참으로 소박하고 예쁘다는 인상을 받고 왔던 적이 있습니다. 나이를 그대로 머금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듯해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도곡선생님은 서양화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도자기의 가치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재료를 고르는 안목을 가지는 데만도 한 평생을 바쳐야 할 만큼 어렵고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말차’를 직접 한사람 한사람에게 만들어 주시며 평소에는 과묵하시다는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가치를 일찍이 간파한 일본은 도공들을 대거 잡아가 자국에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급기야 우리의 맛사발을 국보로까지 지정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자기 사랑이 유별남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땅에서 막사발이 만들어진 곳이 경남 사천의 새미골이라고 하는데 그 ‘새미골’의 일본식 한자 이름이 ‘이도(井戶)’라고 합니다. 즉 일본의 ‘이도다완’은 한국어의 ‘새미골 막사발’이 되는 셈입니다.





이도다완에 대해 찬미한 일본의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문장은 도곡선생이 말씀하셨던 “화장하지 않은 도자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무엇 하나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밥사발이다. 그것도 가난뱅이가 보통 쓰던 사발이다...흙은 뒷산에서 파온 것이다. 유약은 화로에서 퍼온 재다. 물레는 축이 흔들거린다...아무렇게나 깎아낸 그릇이다... 방은 어둡고 도공은 문맹이다.... 꾸밈이 없는 것, 사심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은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지금도 도곡선생님 댁에는 도자기를 감상하고 사려는 일본인들과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우리가 먼저 찾아줘야겠지만, 현대의 미술품처럼 부의 축적과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서 가치가 매겨지는 안타깝고 경박한 현실에서는 비껴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황룡골의 매죽헌(梅竹軒)에서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평화로움을....


  


“모든 소음이 사라진 순간의 우주적 소리”가 바로 “원음”이라고 누군가 정의했다고 합니다.


소리와 내가 철저한 고독의 순간에 마주한다는 의미같기도 합니다.


황룡골의 산을 품은 너른 마당에 들어선 순간, 그리고 정겹게 올려진 초가의 작은 방에 좌정한 순간, 저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풀잎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만이 들렸고, 어떤 순간에는 풍경을 건드리고 돌아가는 바람이 남겨놓은 공기의 울림만이 들렸습니다.


잠시 보이차와 철관음이 혀끝과 목울대를 즐거이 간질이는 동안에도 방안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을 떠도는 동안에도 저는 눈을 감고 있는 듯 했습니다.


모든 것이 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조지훈의 낙화라는 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정말 매죽헌과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진즉 이詩를 외워둘 것을... 후회하는 동안 어렴풋이 첫 구절만 머릿속을 맴돕니다.  





落花 1(趙芝薰, 1920~1968)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자리를 옮겨 산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 작은 방에 앉습니다. 잠시 불을 끄고 음악을 틀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김영동님의 명상음악 禪이 딱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하모니카와 어쿠스틱 기타가 어루러진 잔잔한 포크음악이 흐릅니다.


곡의 제목은 모르겠고, 짧은 영어실력때문인지 “see you sometime.."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만이 귀에 쏘옥 들어옵니다.


‘그래....나도 대전에 돌아가면 이곳을 문득문득 그리워하겠구나..우리 아주 가끔은 만날 수 있을까?      see you sometime....’


마지막 인사를 마음속에 읊조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접었습니다.





“잡으면서 놓을 수 있는 문화”





박문호 박사님께서 신라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잡으면서 놓을 수 있는 문화”라고 하셨습니다.


찬란한 신라문화를 꽃피웠지만 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춘 화려하고 큰 양지바른 무덤자리를 포기하고 호국을 위해 차갑고 외로운 바다무덤을 택한 문무왕의 수중릉을 이야기 하시면서 말입니다. 





갓난 아이의 손가락에 무언가를 쥐어주면 꼬옥 잡고 놓지 않는 힘을 보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잡고 있는 것들을 놓기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잡으면서 놓을 수 있다는 말이 참으로 위대하게 들리는 걸까요?





“사는 동안 짐은 한 바랑이면 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소중한 것들은 가슴에 담아두고 남은 짐들은 버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되도록 악취나는 쓰레기가 아닌 쓸모있는 짐들을 버리고 갈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실천하는 일이 어렵겠지요? 





정말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댁에 초대하셔서 귀한 차를 손수 대접해 주시며 주옥같은 말씀 들려주신 박사님의 큰 형님과 귀한 자료를 내어주신 박문호 박사님,  운전하고 길찾느라 고생하신 김홍섭회원님, 문경수회원님, 멋진 사진 찍어주신 이정원회원님, 그리고 좋은 말씀들과 질문들로 좌중의 웃음을 우물처럼 샘솟게 해주신 함께한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08년 4월 26~27일의 경주여행기를 5월 4일에 쓰다..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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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5.04 20:47
    고마우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행사 준비와 운영을 해 주신 백북스 멤버들 뿐만이 아니라,
    우선, 말차와 점심 식사와 숙박을 제공해 주신 도곡 선생님.. ^^*
    경주에서의 1박 2일동안 백북스 지킴이를 해 주셨던 오대한의원 원장님 ^^*
    저녁 식사와 멋진 언담으로 저희를 감동시켜주신 박영호 교수님^^*
    멋진 풍광과 끊임없는 차와 명상의 기쁨을 주신 강선생님댁 ^^*
    모두모두 감사드려요~, 꾸벅.
  • ?
    이병록 2008.05.04 20:47
    분황사와 첨성대는 남아있는데, 나무로 만든 문화재는 보존하기도 힘들고, 전란을 비껴 가기도 힘들죠. 다음에는 남산을 한 바퀴 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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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영 2008.05.04 20:47
    임석희님~ 너무나 당연히 감사해야할 분들의 존함을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분들께는 저의 기쁨어린 여행기가 감사의 뜻을 대신하리라 혼자생각 했었답니다.
  • ?
    이정원 2008.05.04 20:47
    너무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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