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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이후 평북이 낳았던 천재시인으로 ‘우리 문학의 북극성’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시인 백석. 그는 분단의 어두운 수렁 속에 매몰된 채로 망각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입증된 문학적 자료와 삶의 자취는 제대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영남대학교의 이동순 교수에 의해 『백석시전집』으로 나와 그나마 우리들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여태껏 들어 보지도 못했던 읽어 보지도 못했던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 가면서 나는 향토색 짙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색깔과 멋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는 본명이 백기행으로서 오산소학교, 오산고보를 거친 뒤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건너가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19세의 나이로 조선일보 작품 공모에그 모()와 아들을 응모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나온 재자(才子)이었다. 그 후정주성이라는 작품으로 시인이 되어 시집 『사슴』을 발간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가 북만주로 건너가서 6·25 후에 고향인 평북 땅에 머물게 된 것이 월북작가라는 멍에를 걸머지게 되어 우리들 앞에서 그 이름이 묻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백석이라는 낯선 이름을 대하면서 무슨 보물이라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그에 대한 것들을 찾아 보던 중내 사랑 백석이라는 희귀한 책 하나를 더 발견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김 자야라는 사람으로서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이었으며, 시인의 작품 속에서도 아내라 지칭되는 바로 그 인물이었던 것이다.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읽어 본 그 회고록에는 한 시인에 대한 인생 전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생생한 모습과 생활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시인을 이해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다.


   봉건주의의 사슬에 얽매여 풍운의 시대속을 걸어가야 했던 한 작가의 험난했던 인생길에 그와 같이 동행했던 한 여인과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세월의 뒤안길에 파묻혀서 살아짐즉도 하였건만 이렇게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음도 얼마나 놀라운 일이런가.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던 수십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그 시절로 돌아가 보는 책갈피 속에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외국 문물을 접했던 지식인이자 멋쟁이였던 미남 시인과 기방의 예쁜 여인 김자야와의 격정적이고 성급했던 사랑의 역사가 세록세록 수록되어 있는 사연들은 가슴을 뛰게 하는 놀라운 사건의 연속이었다.


   실로 운명적이었던 만남과 그리고 수년간의 동거생활, 그러다가 시인이 북만주로 떠난 후 그 후 영영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 그래서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살며 오직 순애보의 한 길을 걸어야 했던 주인공의 독백이 가슴 아프게 와 닿고 있었다.


   온 생애를 다 바친 그리움의 연모가 산과 강물처럼 흘러왔고, 오랜 세월동안 그 빛깔이 퇴색되지도 않은체 오로지 멈추어진 시간 앞에 서 있는 이 애절함은 책을 읽어가는 이의 심장까지도 오열에 잠기게 하는 슬픔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마치 뜨거운 불덩이를 손에 쥔 사람들처럼 절절 끓는 사랑이라는 불화로 속에 마구 갇혀 버린다. 그래서 가슴 아프도록 절절한 사모의 연정은 너무 뜨거워서 그들 생애의 전부까지를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일까.


   첫 만남부터 빠르고 성급하기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기상천외했던 연애의 시작. 그 당시 약관 26세의 잘 생기고 멋있는 모던 보이였던 백석은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 영문과를 졸업한 재자로서 함흥의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였고, 자야 씨는 젊고 어여쁜 22세 기생의 신분이었는데, 함흥관이라는 요릿집에서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해 버렸던 것이다.


   첫 대면에 이끌린 백석은 저돌적으로 자야에게 접근하였고 광풍같이 시작된 초고속의 연애는 1936년 북방의 추운 함흥에서 하숙을 하며 동거생활로 바로 들어가 버린 결과를 낳는다. 그곳에서 둘만이 느끼는 온갖 달콤한 낭만과 자지러지는 듯한 정열의 포옹은 너무나 달콤하고 격정적이기만 했다. 그러나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너무나 지극하고 순수하기만 하지만,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둘의 사랑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둘의 애정은 점점 더 간절하고 깊어지고 있어서 자야를 예뻐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백석은 그의 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는 길은 걸림돌이 하나 없는 낙원과 같은 세상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타샤를 사랑하여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에 가서 둘만이 살고 싶다는 절규가 마구 뿜어 나온 시다. 그 불안한 심정을 매우 환상적이며 매혹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흰 당나귀는 바로 현실에서의 도피를 의미하는 희망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들의 위태위태한 동거생활은 백석이 영생고보에 사표를 던지고 조선일보사로 재입사하여 서울로 오면서 더욱더 본격화되었다. 아예 둘이 살 집으로 청진동의 아담하고 작은 기와집을 얻어 그들 생애에서 제일 멋지고도 기억에 남는 살림집을 차리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그들의 집을 잘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삼우오(三羽嗚)로 불리었던 소설가 허준, 의사이며 수필가인 정근양, 극작가 함대훈 등이다. 비둘기장같이 자그마한 한옥에서 보금자리를 잡고 제일 편안하고 다정하게 지냈었던 청진동의 연가는 이 때가 그들 부부에겐 제일 황금 같은 시절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정주의 시골 마을의 한 장남이었던 그가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부모님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장가를 세 번씩 드는 우스운 일들을 연출하게 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갈등하던 그는 결국 북만주로 떠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부모 형제를 떠나서 자야와 같이 살고 싶었던 그에게 자야의 거절로 인하여 그는 상처를 안고 외롭게  만주행 기차를 탄다. 자야는 나중에 그를 뒤따라 갈 것으로 생각하고 그와의 이별을 나누었지만 그들은 그 후로 영영 만날 수 없었고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서커스의 유희처럼 높고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거듭하다 이국 만리에서 가난과 외로움으로 시인은 병들어 간다. 기나긴 세월, 기가 막힌 상황을 거머쥔 채로 좌절과 자포자기로 살아가며 방랑하던 나그네의 심정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달웅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콱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놀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집과 가족과 아내도 없이 떠도는 한 가난한 시인의 독백과 자학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애상에 젖어있는 절규가 쓸쓸한 가슴에 스며들고 있다. 백석은 그 뒤로 만주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측량 보조원도 해 보고, 측량서기에다 만주인의 토지를 떼어서 부치는 소작인 노릇도 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갈라진 사랑이 한 시인의 운명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니 생애 전부라고 할 만큼 몰두했었던 그들 사랑이 참혹하게 일그러져서 한 시인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음은 참으로 어이없는 불장난같은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영혼이 너무도 맑고 고결하기만 하여서 우리는 백석 시인의 인간적인 풍모에 목이 메어오는 슬픔만을 감당할 뿐이다. 지금 시절에 만났더라면 선남선녀로서 잘 맺어졌을 천재 작가와 그의 사랑이었던자야’.
   그들의 아름다운 인연과 발자국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사랑의 힘이 어쩌면 그처럼 맹목적이고 뜨거울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천재시인백석과 그의 여인 나타샤의 사랑 이야기는 동화 같은 또 변하지 않는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다. 영롱한 진주처럼 반짝이며 영원히 빛바래지 않을 아름다운 두 영혼이 저승에서라도 꼭 한 쌍의 원앙새로 맺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인 백석과 나타샤그 사랑의 신화는 우리에게 영원한 목마름의 이름으로 남는다.


 


 
출처 : Kiss 작가 최계순 http://blog.naver.com/kisscks/120046861306


  • ?
    임석희 2008.04.27 18:17
    옥선생님의 시 낭송이 절절하게 느껴졌던게... 맞는 느낌이었군요!!!
    나타샤는 흰 당나귀를 타고...
    언제쯤 뵐 수 있으려나...옥선생님의 음성이 다시 듣고 싶습니다.
  • ?
    전재영 2008.04.27 18:17
    그 영롱한 목소리..저도 다시 한번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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