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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8 06:51

나는 왜 산골로 가는가?

조회 수 1838 추천 수 0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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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농사도 지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려고 산골 외딴곳에 작은 텃밭과 산방을  마련한 후 매주 이곳, 산골을 찾는다. 추운 겨울에는 산방을 폐쇄하지만 얼음이 녹고 날이 풀리는 3월부터 봄맞이 대청소에 가지치기며 샘터청소, 밭갈이 준비에 봄을 느낄 정신적 여유가 없다.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는 산골에도 찾아와 그 모진 추위를 이겨낸 산수유는 제일 먼저 꽃몽오리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무마다 물이 오른 자두, 매화, 복숭아 ,수국 ,장미, 대추나무도 물이 오르기 시작해 때늦었지만 가지치기를 하기로 했다.




 

혼자 하기엔 너무 벅차  '소리없이 부지런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가지치기를 하는데 집에 들른 할머니가 대추나무에 가지치기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한마디 거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오가는 사람 아무도 없고 열심히 밭정리를 하다 개울가에서 세수를 한다.  숲속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다 하늘을 쳐다보니 나뭇잎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뿐이다. 한바탕 땀을 흘렸더니 차(茶) 생각이 절로난다. '소리없이 부지런한 남자 부부'와 같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며 '소리없이 부지런한 부부'에게 아궁이에 불 때며 읽었던 도종환 시인의 '산경' 이란 시를 읽어주었다.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 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시인의  '해인으로 가는 길') 중에서



정말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다. 그냥 편안하고 좋다. 도종환 시인의 뛰어난 시적언어에 감탄하면서 나는 왜 저런 시적 상상력이 없을까 한탄해본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시골에서 살려고 그래요? "


"무섭지 않으세요?"


"외롭지 않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내 마음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편안하고 좋아요. 거창하게 소유론적 욕망과 존재론적 욕망, 본래적 자기와 비본래적 자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골에 있을 때는 가능한 한 거짓말 할 필요도 없고, 남을 속일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솔직해 질수 있기 때문에... 본래의 자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산방이름을 관아재로 했다고 ...

 





 

자연은 정말 나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으며 '그것' 으로 대하지 않으며 정말 아낌없이 많은 것을 주고 있지 않은가?




 

나에겐 아직 숲이 시아노박테리아로 보이지는 않지만 작년에 공부하면서 나무가 죽으면 흙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나무는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까지 흙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숲으로 되돌리며 다른 생물들의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지 않는가?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우의 말을 가슴깊이 다시 새겨본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만 직면하며...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소로우나 스코트니어링처럼 살 수는 없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봄이 기다려진다. 비록 지금은 주말뿐이지만 낮에는 밭일하고 밤에는 별공부도 해야 하니 참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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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8.03.18 06:51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삶의 본질적 문제에 직면하며... " 라는 말이 참 많이 와 닿습니다. 인간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느낍니다.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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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8.03.18 06:51
    직장생활 끝나면 고향인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서 관심있게 본 땅에는 작년에 어떤 집이 들어섰더군요. 땅과 집을 사거나 짓거나 하는 문제가 안 풀리면 동가숙 서가식하면서 선암사나 고향의 동화사에서 한 철을 보내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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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태 2008.03.18 06:51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게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깨끗한 물, 맑은 공기, 마음편한 친구들,
    한가로움, 넉넉함, 홀가분함,고요함 이런것들 아닐까요?
    가끔식 자연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산골일기 형식으로 적어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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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정식 2008.03.18 06:51
    아~ 저도 대학생활로 정신없는 요즘에 시골냄새가 그립네요. 주말에 시간 나는 대로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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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 2008.03.18 06:51
    아. 정말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 느껴집니다. 소리없이 부지런한 부부와 함께. 자연은 정말 나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으며 '그것' 으로 대하지 않으며 정말 아낌없이 많은 것을 주고 있지 않은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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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철 2008.03.18 06:51
    박용태 PD님은 만난지 1년도 안 되었지만 오랜 지기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눈빛에 그 사람의 천성이 배어나오지요. 깊은 산속을 좋아하는 마음도 나와 같고, 56년생 나이도 같고... 저렇게 외진 산골에 비록 주말이나마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그 마음 씀씀이를 난 잘 압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어봤음직한 무수한 말들이 무엇이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갑니다. 나도 14년 째 듣고 있거든요. 그 말 속에는 부러움이 섞여 있음도 잘 압니다. 박PD님 한 번 초대하세요. 꼭 가서 하루밤 자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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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보미 2008.03.18 06:51
    산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박용태 PD님 글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안했어요. 산.. 산은 그런 곳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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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목 2008.03.18 06:51
    그 동안 도시에서 겨울 - 여름 - 겨울 - 여름 만을 살지 않았나 생각하며 자연의 산, 들, 바람 모두에 대한 미안함을 느낍니다.
    박용태 PD님의 글과 사진에서 봄 내음새가 시나브로 전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기회되면 말 없이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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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우정 2008.03.18 06:51
    (본문 중) 나에겐 아직 숲이 시아노박테리아로 보이지는 않지만...
    제 100북스크럽 로그인 아이디가 cyano 입니다. PD님 글에 제 아이디가 숨어 있네요.ㅎㅎ
    대전에 와서 100북스클럽과 함께 녹색평론 독자모임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모임을 통해서 꾸준한 책읽기와 글쓰기를 자신에게 약속하며 "실천없는 이론은 생명력이 없다"는 말이 요즘 저를 많이 채찍질합니다. 그래서 100북스클럽 활동도 열심히 하려 하고 농촌공동체에 관심이 많은터라 올해 홍성, 변산, 진도 3 곳을 찾아가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PD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해 지네요! 다음편 산골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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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태 2008.03.18 06:51
    강교수님 날잡아서 꼭 오셔야죠. 여러가지로 불편하지만 우리 100books식구들의
    공부방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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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3.18 06:51
    1. 아주미술관에서, (3/1 율란다 컬렉션 관람 중)
    도슨트 : 사람들은 왜 풍경화를 그릴까요?
    사람들 : 자연이 좋은가보죠.
    도슨트 : 이 시대(산업혁명 직후)의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맛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죠. 그러자, 그때 사람들은 문득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어디에서왔는가? 그리곤, 그 답을 자연에서 찾습니다. 도시의 일상에서 힘들어질때, 사람들은 자연에서 휴식을 얻습니다. 그런 자연이 그리워, 그래서 이 시기(물질적으로 풍요로운)의 사람들은 풍경화를 그려 집안 곳곳에 걸어두고, 그 자연을 그리워 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그리워 하는 것입니다.

    2. 어제 티비를 보다가,(mbn,호주 생활)
    호주 사막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 진행자가 묻는다.
    왜 여기서 사시나요? 힘들지 않으세요???
    호주인들 : 우리는 자연이 제일 우리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 뿐이예요. 물질 문명의 이기보다는 이렇게 자연속에 내가 들어가 있을때, 그들과 하나됨을 느끼지요.

    3. 그리고 오늘 박용태 님의 글, "나는 왜 산골로 가는가?"


    모두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군요.
    자연... 그것이 내가 돌아갈 곳이고, 내가 나온 곳이며... 내 영혼이 쉬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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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08.03.18 06:51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만 직면하며...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

    의도적,
    의도적인 삶!!!
    뭔가 느낌이 살아 온다.
    그래서 "검색"
    역시 실망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삶이란
    바로 네가 하는 행동이 곧 너 자신인 상태를 말한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가슴을 열고, 마음을 활기차게 가지면,
    우리에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연(chance)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choice) 에 의해서 살아가는 게 바로 의도적인 삶이다."

    ---스튜어트 에어버리 골드의 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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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8.03.18 06:51
    "본래의 자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이 맘에 와 닿습니다. 처음 독서산방에 갔을때 강교수님으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른다고..
    사람들은 왜 힘이들면 이런곳을 찾을까요?
    그냥 쉬고싶다는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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