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0.07.20 02:31

땀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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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철학하신 위대한 철학자 다석 유영모 선생님 말씀입니다. 저는 다석 선생님 책을 읽으면 들뢰즈가 같이 떠오르더군요.



돈을 모으면 자유가 있는 줄 아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영업이나 경영이 자기 몸뚱이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평등을 좀먹는다. 경영을 하게 되면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생 동안 모으려고만 하게 될 것이니 자유평등이 있을 리 없다. 돈에 매여서 사는 몸이 무슨 자유이랴? 매인 생활은 우상생활이다.


그래서 매여서는 안 된다. 매는 데 매여지기를 바라고, 매여지면 돈을 모아서 더 큰 데 매여지기를 바란다. 요즘 말하는 정상배(政商輩)의 생리다. 나도 한번 모아서 떵떵거리며 잘 살아 보자고 한다. 재벌도 되고 고위직에 앉아 보자는 것이다. 이따위 우상 숭배는 사라져야 한다. 사람은 매이는 데 없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농부는 3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 1년 먹을 것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농사를 밑지면서도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얼나)을 사랑하여 천명(天命)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는 농사꾼뿐이다. 농부는 때를 지키어 할 일을 한다. 그것이 사명이다.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거둘 때 거둔다.




이마에 땀 흘리고 살아야 한다. 일이 내가 사는 것을 돕는다. 자기가 들어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자리를 정하게 되면 그것을 복거(卜居)라고 한다. 도심(道心)이 이롭다는 것을 알고 땀 흘리며 일해 생활을 규정지어 주는 것이 되어 복거하니 이 이상 즐거운 호강이 어디 있겠는가? 권력과 금력으로 호강하겠다는 것은 제가 땀 흘릴 것을 남에게 대신 흘리게 해서 호강하자는 것이니 그 죄악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한 꼭대기에 이어진 것으로 생각을 잘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몸뚱이를 바로 잘 쓰겠다는 정신이 안 나올 수 없다. 바로 쓸 수 있다면 동포를 위해서도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도심(道心)이다. 곧 진리된 마음으로 백성을 지도하면 백성이 이마에 땀 흘리는 것을 즐거워한다. 곧 백성이 즐겁게 땀을 흘리도록 지도를 하는 데는 도심이 필요하다. 지도하는 사람은 같이 이마에 땀 흘릴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제정 러시아시대에 톨스토이를 감화시킨 교파가 있었다. 그 교파에서는 십계명보다 앞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흙으로 되었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마에 땀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마에 땀 흘리며 일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참으로 그렇다고 했다.





동양에서 농사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하는 것도 땀을 흘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또 맹자가 이르기를 땀 흘려 일하여 거기서 얻은 것으로 부모를 봉양하면 큰 효라고 했다. 이 세상의 일은 가만히 보면 말끔히 땀 흘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 실정은 어떻게든지 땀 흘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한자리 해보겠다는 것이다. 우선 좋은 학교라는 것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저는 이 부분에서 대한민국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인 학벌 교육문제를 이렇게 독창적인 시각으로 갈파하신 분은 처음 봤습니다) 


우리 백성은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십계명보다도 앞서 있는 ‘땀 홀려야 한다’는 하느님의 이르심을 죄다가 거역하고 있다. 그러니 도심(道心)이고 도의(道義)고 이 나라에서는 지금 찾아볼 수가 있는가? 땀은 자꾸 흘러야 한다. 땀을 흘리면 보기에 더러운 것같이 보이나 속은 시원하다. 이마에 땀 흘리기를 싫어하면 도심이고 도의고 아주 미미하게 된다.





자신이 진심과 지성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는 이는 모두 성모(聖母)로 인정해야 한다. 이런 뜻으로 우리나라 농부는 우리의 어머니시다. 어머니가 밥을 지어주듯이 농부는 농사를 지어준다. 지금은 서로가 할퀴고 뜯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말 농(農)을 천하지대본으로 알고 천직으로 삼아 마음을 다해서 농사를 짓는 이는 우리의 어머니다. 우리는 그들을 대접해야 한다. 땀 흘리며 김매는 농부는 어버이의 상과 같다.




돈에 매여 사는 생활은 우상숭배


땀흘리며 김매는 농부가 어버이像”


‘흙과 땀의 철학’ 톨스토이도 감화


인생의 행로 至難…그냥이란 없어




이같이 꿈틀거리고 사는 이 세상에서는 지각 있는 인사는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살지를 않는다. 이 사람은 거의 70년을 서울에서 사는데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르겠다. 산다고 하되 류영모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싱겁기 한량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제는 아주 진저리가 처질 지경이다.




자연스레 적당히 나는 땀은 좋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못살 곳에 사는 것같이 식은땀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진땀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땀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땀내기를 싫어하면 안 된다. 땀을 내도 진땀만은 내지 않는 것이 좋다. 자연히 내야 할 땀을 내기 싫어하면 진땀이나 식은땀을 내는 경우를 당한다.




입맛 잃고 진땀내기란 인생으로 당하지 못할 꼴이다. 이 세상은 맛의 세상인데 땅에서 맛을 얻고 힘을 기른다. 밥을 맛있게 먹고 싶으면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별다른 말이 아니다. 이 사람이 종내 거저만 먹고사는 죄인이 되어서 내 죄를 회개하는 뜻인지 모른다. 이 생각은 늘 하고 있다. 밤낮 생각하는 말은 이 말이다.




딛고 서 있는 땅과 몸에서 스며나오는 땀은 우리 밥맛을 내게 하는 데 바쁘다. 땅과 땀이 바삐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입맛과 밥맛 내는 데 서로 내기하는 것 같다. 땅이 우리 밥맛을 내 주는지, 땀이 우리 밥맛을 더 내 주는지, 밥맛을 좇기 때문에 땅 파는 데 땀을 많이 흘러야 할는지 도무지 서로 내기를 하는 것 같다.




몸뚱이를 위해서는 지식을 찾지 말아야 한다. 먹기 위해서는 땅을 파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요 밥그릇인데 그렇게 보는 이는 없고 모두가 팔아먹을 상품으로 본다. 땅을 어머니로 모시고 밥그릇으로 보는 겸손한 이가 마침내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 땅을 어머니로 밥그릇으로 아는 이는 놀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일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부지런하다. 겸손이란 남을 어려워하고 절을 잘 하는 이가 아니다. 남이 뭐라거나, 땅을 어머니로 모시는 이다.




보통 일이 없어서 논다는 것은 일이 너무 많은 데서 나온다. 일나면 해야지 취직이 일이고 실직하면 일없다는 그까짓 놈의 일이 무슨 일인가? 인생의 행로는 지난(至難)하다. 그냥이 어디 있는가? 그냥이란 없다. 먹으려면 일하고 먹어야 한다. 그냥 놀고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가 우리 아버지는 농부라고 했다. 전능하신 농부가 농사에 실패할 까닭이 없다.





하루하루가 심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심판이요, 역사가 심판이다. 허송세월이란 있을 수 없다. 깨어서 사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찌꺼기다. 찌꺼기는 돌볼 것이 못된다. 내일을 찾으면 안 된다. 내일은 아직 도착되지 않은 손님이다. 언제나 오늘,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인생은 어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오늘, 오늘에 있다.






유영모(1890~1981)


호 다석(多石). 우리말과 글을 가지고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유불도를 회통하는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사상을 형성했다. 곧음으로써 하나 됨에 이를 수 있고(歸一), 하나 됨에 이르러서 두루 통할 수 있다(會通)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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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석연 2010.07.20 02:3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유쾌하고 밥맛 있는 땀을 흘리고, 그 땀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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