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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06:59

나보코프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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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이름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롤리타>다. 롤리타는 두 번에 걸쳐 영화화된 소설이다. 이 <롤리타>의 원저자가 바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귀족태생으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프랑스어와 그림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으로 말미암아 그의 가족들은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으로 탈출했으나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간다. 미국에서 그는 대학 강사와 소설가로 활동한다. 그를 유명하게 한 작품은 바로 <롤리타>였다.

<롤리타>는 그 내용(소아성애)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가 주류였던 1950년대에 소아성애를 다룬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출판사에게는 상당한 모험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미국의 다섯 개 출판사에서 거절을 받은 <롤리타>는 마침내 프랑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파리 올랭피아 출판사의 모리스 제로디아스는 <롤리타>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었다.

나보코프는 <롤리타>가 출간되고, 초판본에 그레이엄 그린에게 헌사를 써서 증정한다. 이런 책을 수택본(手澤本, association books) 이라고 하는데, 즉 저자가 또 다른 명사에게 보내는 헌사를 써놓은 책을 말하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헌사와 함께 나비 그림을 그려놓는다. 수택본에 나비를 그려 넣은 이유는 바로 나보코프가 아마추어 인시류(鱗翅類, 나비와 나방류) 학자였기 때문이었다. 책에 저자가 직접그린 나비그림이 그려 있었으니 귀하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

이 수택본은 경매를 통해 판매되기도 했는데,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54,000 달러에 판매된다. 2009년 여름 뉴스위크에서는 세계명저 100권을 발표했는데, <롤리타>는 그 중 4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포르노가 아니라 뭔가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하튼 나보코프는 이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돈도 벌었다. 번 돈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집필과 나비 수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롤리타를 출판한 출판사도 돈벼락을 맞았다. 출판사 사장인 지로디아스는 파리식 나이트클럽 두 개, 레스토랑 하나, 술집 세 개, 극장 하나를 열었다. 그렇지만 행운은 지속되지 않았고 5년 만에 파산했다.

나보코프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나비를 채집하고 연구하는 일이었다. <나보코프 블루스, Nabokov's Blues>(해나무.2007년)라는 책을 보면 나보코프의 인시류학자로서의 업적이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책 제목에서 블루스는 춤이 아니라, 블루는 ‘파랗다’란 뜻의 나비의 이름이다. 그런데 나비의 이름 앞에 나보코프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이는 나보코프가 처음 발견하여 나비의 속명과 종명을 처음으로 붙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보코프 블루는 남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에서 서식하고 있는 일부 나비의 이름이다.

나보코프를 아마추어 인시류 학자라고 얘기했지만, 실은 전문가였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아마추어라고 말한 이유는 대학에서 이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하버드 대학의 비교동물학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나 다름없는 파트타임 특별연구원으로 몇 년을 근무했다. 코넬 대학의 교수직을 얻지 못했다면 그곳에서의 연구생활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나보코프는 이 박물관에서 보낸 시절을 “어른이 된 후로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활력 넘치는 나날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비의 일상적인 명칭에서도 그의 이름은 남아 있다. 나보코프 퍼그나방, 나보코프 블루, 나보코프 표범나비, 나보코프 브라운, 나보코프 사티로스, 나보코프 숲님프 등이고, 학명도 많이 남아 있다. 리카이데스이다스 나보코비(이 학명이 바로 나보코프 블루라는 통칭으로 불리운다), 킬로포시스 피라크몬 나보코비 등이 그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

사실 나보코프는 인시류를 연구하며 관련 학술지에 논문을 7편이나 발표했다.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많은 인시류 학자들은 그의 연구에 대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이는 그의 학문적 백그라운드에 대한 불만일터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그의 학문적 업적은 새롭게 평가를 받는다. <나보코프 블루스>의 공저자 중 한 명인 커트 존슨은 나보코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장소 또는 사물의 이름을 따서 나비 이름을 명명하기도 했다. <롤리타>의 두 주인공 이름을 딴 ‘마델레이네아 롤리타’와 ‘슈돌루키아 험버트’는 가장 큰 공명을 가지고 있는 명칭이다.

그렇다면 나보코프가 인시류에 깊이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종의 최초 표본을 잡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  둘째, 아주 희귀하거나 그 지역에서만 잡을 수 있는 나비를 잡는 일. 셋째, 특정한 곤충의 습성과 구조를 배우고 분류학적 체계 속에서 그 곤충이 놓일 위치를 결정하면서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곤충의 생활사를 풀어내려는 박물학자로서의 흥미. 넷째, 오락과 운, 활발한 움직임과 왕성한 성취, 손바닥에 놓은 날개를 접고 있는 나비가 이룬 보드라운 삼각형 속에서야 비로소 끝나는 열렬하고 끈기 있는 추구라는 요소.  

이 이유로 그는 평생 나비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비는 영어로 butterfly라고 한다. 이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듯한 날씨에 시작되는 나비의 출현 시기가 버터를 생산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지기에 butterfly로 불리게 되었다는설이 있다. 그런데 나보코프의 말하는 유래도 재미있다. 나보코프는 better fly에서 온 것 때문은 아닌가 하고 말한다. 요컨대 나비가 날개달린 다른 곤충들보다 크고 화려한 것 때문은 아닐까하고 표현하고 있다. 역시 나보코프 다운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다.

<나보코프 블루스>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통섭을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이 바로 통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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