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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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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기원전 330~275?)가 쓴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의 첫 부분은 서문도 없고 설명도 없이 정의, 공리, 공통개념으로 시작된다. 정의는 모두 23개인데, 그중 일부분은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는 것이다” “선의 끝은 점이다” “면은 길이와 폭만 있는 것이다” “면의 끝은 선이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도 정확한 것은 아니며,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하면 계속적인 모순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지만 점·선·면과 같은 용어는 아주 중요하고 기초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정의하지 않고, 즉 무정의 용어로 도입된다. 이러한 기하적인 요소는 그림그릴 때에도 기초적인 요소가 된다. 그림을 배우려고 처음 화실을 찾은 사람들은 당연하게 한 달 정도는 족히 하얀 도화지 위에 선을 바로 긋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에 농담을 나타내도록 지도받는다.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수학시간에나 봄직한 도형들을 탁자 위에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한다.

정육면제, 정사면체, 사각뿔, 원뿔,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구를 그리도록 한다. 드디어 면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면은 연필을 들어 짓이기 듯이 아무렇게 채워서 그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수많은 선을 겹치기도 하고 나란히 긋기도 하면서 표현한다. 이때 단순히 면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겹침의 정도 또는 연필의 농담을 이용하여 입체감까지 표현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는 구도를 잡는 연습을 한다. 삼각형 구도가 되기도 하고 사다리꼴의 구도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회화의 기초에서 한 작업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하자. 면을 선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선은 또한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바로 무수히 많은 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면 또한 무수히 많은 점들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그림에 그대로 접목시켜 표현한 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점묘법의 주창자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91)이다.

조르주 쇠라는 훌륭한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쇠라의 그림은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을 렌즈로 모아 필름에 상을 맺게 한 뒤에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진 필름의 은입자처럼 모든 대상을 수천개의 작은 점을 찍어서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채색하였다. 그는 즉흥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계획적으로 사진기에 포착된 순간과 같은 정지되어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놀라울 만큼 균형미가 넘치며 그의 섬세한 채색은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원색의 작은 점을 찍어서 인물과 배경을 섬세하게 나타내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점들이 하나하나 보이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그 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빛을 자아낸다.

그가 1884년부터 3년에 걸쳐 그린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가로 308㎝, 세로 207㎝의 큰 작품으로, 수평선과 수직선을 이용해 화폭 전체를 기하학적으로 구도화시킨 그림이다. 쇠라는 2년 동안 이 그림을 위해 최소한 20점 이상의 소묘와 40점 이상의 색채 스케치를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개의 인물에 대한 연구와 공간감, 그리고 색채 관계를 일일이 점검하고 그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 것이다.

작은 수많은 점들로 정교하게 표현된 그림은 마치 작게 뜯어 붙이기를 한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색채 경험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높은 채도와 색채 원근법을 구현한 것이다. 분할주의, 점묘파, 신인상주의 등으로 불리는 쇠라의 그림이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가지는 색채감 이외에도 잘 계산되어지고 계획되어진 기하학적 구조가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분석가에 의하면 점과 점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러한 간격으로 점을 찍었을 때, 6m 이내에서 그림을 관찰하면 그림의 점들이 구별되지만 이보다 멀리 떨어져서 그림을 보면 그림의 점들이 구별되지 않고 붓으로 바른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 그림처럼 점묘법으로 그릴 때는 그림의 크기가 꽤 커야 효과가 클 것이다.

그는 32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몇개 안되는 작품들은 19세기 프랑스의 신인상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많은 미술가들이 쇠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중 폴시냑(1865~35)은 쇠라의 점들을 작은 붓질로 확대하여 갔다. 이즈음 이탈리아에서도 분할주의가 한참 유행하게 되고, 특히 북부 유럽에서는 이러한 점묘법을 이용하여 산업화되어가는 도시 속의 때가 묻지 않은 농촌의 모습이나 조국을 비판하는 대형 그림 등에서 자주 표현기법으로 등장하였다.

언뜻 생각하면 미술과 수학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수학 중에서도 기하 영역과 미술은 참으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림에서의 삼각형 구도나 원근법의 소실점 찾기 등은 모두 엄격히 말해 수학의 기하 영역에 속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술의 수학적, 과학적 기초에 관심을 가지고 빛의 회절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쇠라는 퓨전 문화의 또 하나의 선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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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03.30 21:16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중훈님께선 피부, 점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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