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0.03.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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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국어사전에서 '주름'을 찾아보니 "(1) 살갗이 느즈러져서 생긴 잔금(물론 여기서 '잔금'은 '殘金'이 아니라 '잘고 가는 선'이다: 인용자) (2) 옷의 폭 따위를 줄여서 접은 금 (3) 종이나 헝겊 따위의 구김살"이라고 풀이돼 있다. (사전아,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여기까지 끌고 오지 못했을 게 틀림없으니.)

파생어로는 '주름살', '주름살지다', '주름지다', '주름상자', '주름위(胃)' '주름잡다' 따위가 표제어로 올라있다. '주름위'는 반추동물의 네 번째 위를 가리킨다. 수많은 주름으로 이뤄져 있어 그리 부른다.

'주름잡다'는 "옷의 폭 따위를 줄여 접어서 주름을 내다"라는 본디의 뜻말고, "어느 집단이나 단체의 중심인물이 돼 그 조직을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실제로 이렇게 은유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곧이곧대로 쓰이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은 1970년대 한국 문단을 주름잡았지"에서처럼.

'주름살지다'는 "살갗, 옷, 종이 따위에 주름살이 생기다"라 풀이돼 있는데, 이것은 내 한국어감각에 조금 어긋난다. 비록 '주름살'의 '살'이 '살갗'의 '살'과 전혀 다른 형태소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평균적 한국어 화자는 그 둘을 포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살' 자체에만도 '옷 따위의 구김이나 구겨진 선'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중세어로는 '살지다'나 '살찌다'라고만 해도 '주름살지다'라는 뜻이었다. 이때의 살은 빛살, 물살, 햇살 따위의 '살'과 통하는 말이었으리라.)

 
평균적 한국어 화자들은 이마나 목이나 손등의 주름처럼 살에 생긴 잔줄은 '주름살'이라도 부르고 '주름'이라고도 부르지만, 옷이나 종이 따위의 접힌 금이나 구김살은 그저 '주름'이라고만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주름살진 이마'라는 표현은 '주름진 이마'처럼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주름살진 종이'나 '주름살진 헝겊' 같은 표현은 다소 생경하게 들린다.

첫째, 세월이 만들어낸 '삶의 무늬'이고
둘째, 연인에게 잘 보이려는 '멋 부리기'며
셋째, 허물없음을 드러내는 '구김살'이다

첫 번째 주름, 곧 살갗이 쇠하여 생긴 잔줄은 육체적 늙음의 기호다. 그래서 여자든 남자든 이 주름을 막아내기 위해 애쓴다. 피부마사지에 큰돈을 들이기도 하고, 보톡스 주사를 맞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보톡스 주사로 이마의 주름을 줄였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적이 있다. 늙음의 또 다른 기호인 백발을 감추려고 염색을 하는 이들도 많다.

고려 후기 유학자 우탁(禹倬)의 시조 '탄로가(嘆老歌)'나 <춘향전>의 '백발가(白髮歌)'를 보면 옛 한국인들은 늙음의 표시로 백발을 가장 두려워했던 듯도 싶지만, 그 백발의 나이에 주름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게다.

이 '주름'은 더러 '근심'이나 '불행'의 은유로도 쓰인다. 주름진 얼굴로 환히 웃는 어르신도 있겠지만, 대체로 주름은 한 나이든 개인이 헤쳐왔을 신산(辛酸)의 세월을 암시한다.

유복하게 한 생애를 살아온 노인의 육체에 새겨진 주름은 흐릿하거나 드물지만, 어렵게 한 세상을 살아온 노인의 육체는 또렷한 주름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네가 내 속을 썩일 때마다 내 이마에 주름이 하나씩 늘어!"라고 자식을 핀잔하는 부모도 있다.

두 번째 주름, 곧 옷의 가닥을 접어서 낸 줄은 일종의 멋 부리기다. 이런 멋 부리기는 사춘기나 청년기에 자주 하는 짓이지만, 중년을 넘긴 사람들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 이때의 주름은 옷을 입은 당사자(나 그의 수발을 드는 이)의 깔끔한 성품, 더 나아가 기품을 뽐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주름, 곧 종이나 옷감 따위의 구김살은 두 번째 주름과 반대로 그 사용자의 나태함이나 서투름을 보여준다. 종이나 옷감 따위도 잘 간직하지 못하는 칠칠치 못함이 이 주름 속에 웅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 뜻말고는 '주름'의 뉘앙스가 부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종류 주름을 다 사랑과 연관시켜 아름답게 보려 한다. 첫 번째 주름은 한 사람의 연륜을 드러낸다. 그 주름 속에는 사랑을 포함해 당사자가 겪은 온갖 사연들이 숨어있다.

주름살이 드러내는 삶의 굴곡은 곧 사랑의 굴곡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삶의 알갱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주름살은, 이마의 주름살이든 손등의 주름살이든 목의 주름살이든, 그 주름살 주인이 거쳐 온 세월의 기록이다.

그 세월이 만들어낸 무늬다. 그 주름살의 깊이가 때로는 사랑의 깊이고, 삶의 깊이다. 이마 주름살의 줄들은 제가끔 그 육체가(그러니 곧 마음이) 겪은 희로애락의 줄이다.

두 번째 주름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것 없겠다. 이 주름은 연애를 위한 데커레이션이니까. 그것은 공작새의 날개나 사자의 갈기 같은 것이다. 세 번째 주름은 그 주인의 성격이 털털함을 드러낸다. 털털함은 게으름이나 꼬질꼬질함과 관련 있으므로 꼭 상찬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 안심입명(安心立命), 처변불경(處變不驚)의 건강한 낙관주의를 꼭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이 세 종류 주름 모두 사랑의 말이 될 수 있다. 주름은 사랑의 얄팍함을 두텁게 한다. 그 평면성을 입체화한다. 주름을 통해서, 사랑은 부피를 얻는다. 주름이란 일종의 접힘, 포개짐, 겹침이기 때문이다.

나이든 연인의 주름은 그가 제 연인을 위해 긴 세월 마다하지 않은 수고의 자국이다. 바지의 주름은 제 연인에게 되도록 멋지게 보이려는 연애의 근본적 욕망에 닿아있다. 똑같은 바지의 구김살은 연인과의 허물없음을 드러낸다. 어느 주름이든, 그것들은 머릿속의 사랑을 세상 속에서 구체화한다.

처음, 머릿속에서 외줄이었던 사랑은 실제세계 속에서 주름을 통해 두 줄, 세 줄, 네 줄, 다섯 줄로 늘어나고, 그 줄들이 가로세로 엮이면서 사랑의 이야기가 쓰여진다. 나이든 연인들의 주름살은 그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훈장이다.

주름 없는 사랑은 밋밋한 사랑이고 정적인 사랑이다. 주름은 사랑에 발랄함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아니 발랄하고 역동적인 사랑의 결과가 주름이다. 그 접히고 포개지고 겹친 주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의 사연이 숨어있을 것인가. 그 줄 사이사이에, 그 면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사랑은 주름을 통해 서사가 된다. 로망이 된다.

아름다움의 추구가 사랑의 한 연료라면, 주름은 사랑을 예술로 만든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이름을 밝히기 싫다. 너무 잘난 사람이어서)에 따르면, 주름은 바로크의 질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물화는 이제 주름들만을 대상으로 취한다. 바로크 정물화의 요리법은 이렇다: 장식 휘장, 이것은 공기 또는 무거운 구름의 주름들을 만든다; 식탁보, 이것은 바다 또는 강의 주름을 지닌다; 금은세공품, 이것은 불의 주름을 태운다; 야채, 버섯 또는 설탕에 절인 과일들은 땅의 주름들 안에 붙잡혀 있다.

그림은 이토록 가득 주름들로 채워져 있어서, 누군가는 일종의 분열증적 '포만 상태'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그림으로부터 정신적인 교훈을 끌어내면서 그 그림을 무한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주름들을 끄집어낼 수 없게 된다. 천을 주름들로 덮으려는 이 야망이 우리에게는 현대 예술에서도 다시 발견되는 듯 보인다: 표면 전체를 뒤덮는 주름."(이찬웅 옮김)

끝에서 세 번째 문장은 사뭇 난삽한데, 내게 이 책의 프랑스어판이 없어서 원문을 확인해볼 도리가 없다. 이 말을 한 철학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제 아파트 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위 문단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는 본디, 독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저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책 한 군데서 불쑥 떼어온 문단 아닌가. 그러나, 이 문단을 꼭 이해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다섯 번만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보시라. 시나브로 그 뜻이 또렷해질 것이다.

이 철학자는 주름을 (조형)예술의, 특히 바로크 예술의 고갱이로 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 미적 집착을 통해서 제 안에 사랑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놓고 있다면, 주름은 사랑의 고갱이이기도 할 것이다.

독자들 각자가 신경정신과 진료실의 카우치에 누워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의사가 '사랑'이라는 말에서 어떤 말들이 연상되느냐고 물어보았다 치자. 아니, 의사가 '연애'나 '섹스'라는 말을 던졌다고 하자. 당신의 뇌주름 갈피갈피에 쟁여져 있던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을 통해 튀어나올 것이다.

그 말들의 상당수는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주름과 관련돼 있을 것이다. 슬플 수도 있고, 어두울 수도 있고, 심지어 외설스러울 수도 있는, 그 주름진 사랑의 말들! (무/잠재)의식 속에 한 점 그늘, 한 점 구김살, 한 점 주름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을 겪지 못하고 생을 지나쳐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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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03.23 08:57
    주름의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글입니다.
    고종석님의 연재글을 꾸준히 읽다보면 예술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재밌게 읽었고, 공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고종석님의 연재글 꾸준히 읽어보려고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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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03.23 08:57
    위의 글 여러번 읽으면서 느낀점은
    고종석님의 연재글 언어들의 특징은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연상하게 하고, 탐미적감각 속에서 시언어를 찾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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