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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07:21

조중걸 선생님과의 질의응답

조회 수 1999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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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북스에 회원 가입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업무에 치어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얄밉게도 가끔씩 강연회에만 몇 번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지난 화요일 조중걸 선생님 강연을 듣고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아 인터넷 검색해서 이메일 주소를 찾아 질문을 드렸습니다. 친절하고도 자세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백북스 회원 중에도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는 분도 있을 테니, 게시판에도 올려 주길 부탁 하셨습니다. 백북스 회원님들께 항상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이하 제가 보낸 메일-------------


 


제목 : 백북스 강연에 대한 간단한 질문



조중걸 선생님께,





백북스에서의 강연은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저는 백북스 회원은 아니지만,


가끔 (이제 겨우 세번째)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나스타샤도 반도 채 못 읽은 상태에서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양 철학에 대해 속성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철학에 대해 따로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아직까지는


약간은 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추어의 황당한 질문이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명제의 진위를 알기위해서는, 진리함수의 예를 드시면서,


쪼개고 쪼개서 요소명제들의 참, 거짓에 의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요소명제는 예도 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인류의 기원처럼 요소명제는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참, 거짓도 불분명하다면


이것으로부터 구축된 명제의 참, 거짓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동업자들에게만 강의하시겠다고 하셨지만,


마지막으로 아마추어에게도 가르침 하나 더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이디는 네이버에서 선생님 성함을 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언짢으셨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소설은 아직까지 읽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부분이 줄어드는게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안치용 드림


 


 


----------이하 조중걸 선생님의 답변-----------------


 




좋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예로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중학생에게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R 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제시되었다고 가정합시다. 이 훌륭한 중학생은 “동위각과 엇각은 같다” 라는 정리를 이용하여 증명하고 선생님은 만족합니다. 이때 철학적 탐구열을 가진 다른 훌륭한 학생이 선생님께 묻습니다. 동위각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와 엇각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도 증명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선생님은 대견하다는 웃음과 함께 수업을 끝내실 겁니다.


우리는 물론 계속 질문과 증명을 거듭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 공리와 공준에 부딪힐 때 까지요. 우리는 공리는 증명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명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자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자명은 독단(dogma)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사실상 우리의 수학은 매우 의심스런 독단 위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그 수학을 이용하여 우리의 물질적 세계를 설명하고 또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하고 거창한 토목공사도 합니다. 독단을 기반으로 한 세계가 그럭저럭 굴러갑니다. 우리가 이러한 수학 세계에 사는 한 우리는 출발점의 그 독단들이 옳다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애초의 공리와 공준의 참임은 우리의 수학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요청”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인간 기원에 대한 의문에 대해 어떤 생물학자가 “원숭이로부터” 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개연성을 엄밀하게 증명했다고 가정 합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ad infinitum 하게 생명 현상의 기원을 탐구해 나간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탐구의 종점에서 좌절에 빠집니다. 최초의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다양한 생물 종이 지구를 물들이고 있다는 사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최초의 생명이 요청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명제의 진위는 바로 그 하부의 분석된 명제들에 의해 판가름 납니다. 우리 명제의 진위가 궁금할 때 우리는 그와 같은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판을 보고야 말겠다” 라고 한다면 궁극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그리고 존재해야만 하는 그 명제들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요소명제”입니다. 요소명제는 마치 분해되는 아원자와 같아서 분석에 의해 실체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요소명제들의 존재를 가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휘황찬란하게 도열된 수많은 자연과학적 가설들에 의해 우리 세계가 어쨌든 해명되고 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우리 세계가 해명되고 있는 바의 바로 그 자연과학에 대해 신뢰를 가질 양이라면 최초의 요소명제에 대하여도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요소명제의 진위에 의해 우리 세계의 진위가 결정된다는 가정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10 층에 사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가정하면 1 층이 기초하는 기반이 안전하다고 가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그 기반의 존재를 요청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10 층에 살고 있습니다. 매우 안전하다고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 안전성에 대한 확신은 9 층이 안전하다는 증명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모험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탐구의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8 층, 7 층, 6 층을 거쳐 그의 탐험을 계속합니다. 마침내 1 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1 층은 알 수 없는 어떤 기반 위엔가 기초해 있습니다. 그 기반은 짙은 안개에 싸여 탐사는 커녕 존재조차도 의구스럽습니다.  10 층의 안전이 1 층이 기초한 기반의 안정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논리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를 논리학자라 했습니다)


복합명제의 안전은 요소명제의 안전에 의존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선험적” 으로 가정되는 가설입니다. 그런데 기반이 안개에 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소명제의 범례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세계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복합명제의 진위가 요소명제의 진위의 함수라는 것은 필연적인 논리적 가설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논리학을 잃는다. 우리가 논리학을 유지하려면 그 가설을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야한다. 요소명제의 예를 발견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쨌든 우리는 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바로 그 아래의 하부구조의 참으로 만족한다. 요소명제의 존재와 그 진위는 단지 요청될 뿐이다. 우리 세계와 우리 현존이 그것을 요청한다. 만약 우리 세계가 만족스럽게 해명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고 거기에 입각하는 새로운 요청을 할 것이다.“





철학이 궁극적인 실증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모든 자연과학이 궁극적인 실증성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새장 속에 갇혀 악순환을 하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지 이것을 밝혔을 뿐입니다. 삶과 앎의 궁극적 의미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앎은 없고 알기 위해 애쓰는 나만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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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희 2009.01.17 07:21
    신의 입자라는 최후의 소립자, 힉스입자의 존재와 그 진위는 단지 요청될뿐이다.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입자물리학의 표준모델이 그것의 존재를 요청한다.
    14년 공들인 10조원짜리 LHC에 의해서도,
    만약 표준모델이 만족스럽게 해명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고 거기에 입각하는 새로운 요청을 할 것이다.

    그냥 주어를 살짝 바꾸어 보았습니다. ^^ . 재밌죠.

    비트겐슈타인 논리 많이 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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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말희 2009.01.17 07:21
    "사고들(thoughts)은 그것들을 사고해줄 사고자(thinker)를 기다린다" 는
    윌프레드 비온의 말이 생각나네요.

    비온은 안다는 행위의 주체와 대상에 대해,
    주체는 물론 힘을 가지고 있으나 대상 탐구에 착수하자마자 취약성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앎이란 선개념들이 진위 테스트를 거쳐 전개념이 되는 변증법적 과정이므로, 어떠한 개념(이론)도 상수로 고정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개념은 변수로서 다른 진위 테스트를 통해 또 다른 변수가 될 준비를 할 뿐이란 거죠.

    결국 비온이나 비트겐슈타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유한하고 취약한 토대를 가졌는지 염두에 두라는 거겠죠.
    그렇다고 이들이 앎의 과정을 허무하게 본 것은 아니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possible worlds"(수없이 열려있는 인식의 가능성)라는 말로, 비온은 "O"(수학의 무한대 개념처럼 어떤 변수가 항속적으로 접근해가는 궁극적 대상)라는 용어로 도그마적 지식을 경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식(앎)이라는 것이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필요로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상태를 견디고, 지식에 너무 강박적이 되지 말고, 앎의 과정 자체를 즐기자는 것이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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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이 2009.01.17 07:21
    조중걸 선생님의 답변보다 안치용회원님의 질문글이 상당한 예의를 갖추고 있고 선생님의 책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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