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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5 01:26

엄준호님의 의견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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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주제를 직접 정해서 글을 쓰지 못하고 다른 분의 글에 붙여서 쓰는 것이 다소 게으른 태도이긴 합니다만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물리학의 입장에서 의견을 덧붙여 볼까 합니다. 부디 너그럽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생물학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같은 자연과학을 하고 있음에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물리학에서도 근래에 들어서야 창발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전의 연구들은 말씀하신대로 근본 원리에서부터 모든 것이 파생되는 구조를 가정하고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턴식의 고전역학적 결정론에서 보자면 TOE는 우리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행위까지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이 생물의 행동이나 의지까지 모두 결정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우연'을 말씀하시는 것도 그런 결정론적 세계관의 실패에 이어지는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에서는 고전역학적 결정론 (초기 변수와 물리법칙을 알면 어떤 시간 t에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은 미시세계를 설명하는데서 실패했고 그것이 양자역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알고 계실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엄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우연'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볼 때는 '확률' 개념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물론 양자역학의 다중우주 세계관같은 다소 혼란스러운 개념을 도입하게 되기는 하지만, 같은 조건으로부터 다시 출발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은 양자역학의 패러다임에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Folding at home(http://folding.stanford.edu)이라는 분산 컴퓨팅을 이용한 단백질 연구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스탠포드) 세계 각지에 있는 개인의 PC를 이용해서 수퍼컴퓨터 수준의 컴퓨팅 파워를 요하는 연산 작업을 하는 것인데, 단백질 네트워크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계산합니다. 수만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단백질들이 어떤 모양으로 서로 붙을 수 있는지를 그래픽으로도 보여주는데, 물리학과 화학의 연구결과는 이런 수준에까지 와 있습니다.

 


 Theory of Everything (TOE)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아인슈타인이 그것을 연구하던 시대에도 있었지만,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할 겁니다. 객관적인 사실로부터 찾아가는 어떤 법칙의 존재는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지, 법칙이 존재해야만하는 당위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모델이 저런 법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증명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괴델의 불완전성은 과학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됩니다) TOE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보면 미학적인 이유고 말 그대로 거의 종교적에 가까운 믿음입니다. 자연법칙의 단순함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TOE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실패했을 때, 여지껏 세워진 모델을 포기하거나 그 실패를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궁금하긴 합니다.


 

 지금의 과학자..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Technician으로 키워지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인 사고와 더불어 세상을 향한 열린 호기심을 갖는 Scientist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자신의 분야 이외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세기의 과학이 너무 세분화되고 깊게 깊게 내려가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것만을 핑계삼기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도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학생이지만 과학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과학이 더욱 재미있고 깔끔하다는 제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지요. 가치관이나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또 논리적인 사고, 비판에 대한 개방성,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하는 태도는 과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성이 발전하기 위해서, 개인이 발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태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소 거창합니다만) 다만 과학은 bottom-up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더욱 많은 비판과 수정을 거치게 되어 그런 사고에 익숙해져있는 것 뿐이지요. 그리고 다른 시스템의 학자들에 비해서 과학자들은 비판에 대해서 완고하게 고집을 내세운다면 그것만으로도 과학계라는 시스템에서 빠르게 도태되어 버립니다.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겸양을 익혀야 하는 환경이라고 할까요.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하고 도와가며 발전해야한다는 데에 동의하실 거라고 믿기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이나 여러 분야의 박사님들이 계신 게시판에 글을 쓰자니 조금 주눅이 들긴 합니다만.. 주절주절 제 생각을 늘어놓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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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철 2008.11.25 01:26
    양자역학도 결정론의 한부류입니다. 확률적인 결정론이죠.
    우연이라는 개념은 필연의 실현으로써 인과론적 개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필연은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않고 항상 우연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이진경) 양자역학과 우연이란 개념은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과 그 의식의 한계인데, 그 한계 내에서 타당한 방법론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결정론.. 환원주의가 근거없이 배제되어 온 우리의 지적 풍토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환원주의쪽으로 좀더 배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막대구부리기 라는 것 입니다. 한쪽으로 휘어진 젓가락을 똑바로 펼려면 휘어진 방향의 반대쪽으로 일정정도 더 구부려주어야 합니다.
    환원주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발전하면서 이미 철학의 중심영역에 닿아있으며, 유전학. 생물학 그리고 뇌과학에 이르는 여러가지 학문의 발전에 중요한 방법론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유독 우리사회가 환원주의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이유는 인문학적 전통과 종교적 풍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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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훈 2008.11.25 01:26
    양자역학을 결정론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노력도 있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물리학에서는 결정론과 확률론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이것도 서로 같은 단어로 다른 의미를 담아서 쓰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에서 쓰였던 결정론 determinism은 어떤 변수가 t에 대해 1:1 함수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f(t) = x 와 같은 형태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변수가 1:1의 스칼라 함수가 아니라 연산자로 와 같은 형태로 쓰여집니다. 원자 내에서 전자의 다음 상태를 묘사할 때는 여러 준위 중 어디로 갈 것인가 정도의 '선택지들'을 알 수 있다는 것 외에는 확률적으로 밖에 예측할 수 없습니다. E(t) 가 여러 가지의 값을 갖는 multivalued function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존의 수학적 방식으로는 기술할 수가 없는거죠. determinism은 과거와 미래의 기술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해집니다. '어떤 변수'나 '선택지'를 알 수 있다고 해서 결정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확률론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에 실패가 없다면, 굳이 확률론적 결정론이라는 중언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연'에 대해서도 제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자유도 degree of freedom이 있는 계에서의 선택으로 설명합니다. 그 중의 어떤 선택도 가능하며 동등하다는 관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의 세계에서는 '필연'과 '우연'은 다르게 기능합니다. 필연은 자유도가 개입하지 않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자유도가 없이 흘러가는 상태이고, 우연은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도라는 free parameter가 있는 시스템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vacuum fluctuation이나 대칭성 붕괴의 확률에 기여하는 QCD의 phase parameter가 그런 것에 속합니다.)

    환원주의에 대해서는 제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가 환원주의쪽으로 베팅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환원주의가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하시는지와 환원주의의 반대편에 무엇이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환원주의에 너그럽지 못하다는 말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예를 들어주시면 이해하기 좋겠습니다.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환원주의가 all round player도 아니고, 다른 사고체계에서도 유용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저 과학에서 유용한 방법론이라는게 소극적인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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