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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확신의 위험성; 직관/감각 기반성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인지심리학자 Daniel Kahneman 등이 1980년대 초 ‘불확실성하에서의 판단’에 대하여 저술한 책을 1980년대 중반에  읽고는,

  인간 사고는 논리적 합리성을 따르는 사고보다는, 이따금 맞기는 하지만, 완벽한 정확성 보다는 이따금 틀리더라도 빨리 반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휴리스틱스적 (탈 합리적) 실용적 사고가 인간 사고의 기본이며, 바로 그렇기에 인간 사고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도 많은 오류와 인지적 착각을 범하고 있다는 현상에 주목을 하여 왔다.

그 이후, 그리고 국내의 배아줄기 세포  황우석 교수 관련 일련의 사건, 광우병 괴담 사건, 천안함 사건 불신 괴담 등을 보면서, 그리고 정치권의 보수-진보 진영의 갈등, 연예인 관련 날조된 정보의 빠른 확산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일부 정보의 타당성을 확신하며, 아전인수 격의 허황된, 그리고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확실하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며,
그것이 특히 현재의 한국의 정치, 경제, 과학, 웹 등의 도처 상황에서 심각하게 전개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생각에서 떠올려지는 것은, 과거에 독일의 나치 정권이 유태인을 지구상에서 제거하여야 할 ‘쥐 같은 종족’이라는 등의  부정적 정보를 퍼트릴 때에 그것을 참이라고 믿고,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하면서도 자신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던 수많은 독일인들이었다.

지금 국내에서 정치나 범법적 행위나 기타 이런 저런 일들에서 편향된 단서(정보)에 바탕을 두고 ‘확신에 찬’ 채 자기 주장을 전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란,
저 나치, 그리고 그들 하의 독일인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두가 인간 진화 과정에서 인류가 발전시킨  휴리스틱스적 사고, 자기중심적 내러티브(이야기) 짓기의  마음 작동의 원리를 못 벗어나고, 자신의 지적 능력(때로는 IQ)의 한계를 자발적으로 널리 광고하는 짓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자신이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근거가 박약한 일방적 추론인지
인간의 사고의 본질이 얼마나 오류 투성이의 것인지
자신이 논리적으로 정확히 추리하여 내린 주장이, 실상은 여러 가지 자신의 편향된 직관과 논리틀을 갖춘 편견에 바탕하여 관련 지지 정보를 찾아 자기 나름대로 연결하여 내린 하나의 (자기가 그럴싸하다고 믿는) 짜여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지

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과학철학을 좀 공부하게 되면
이러한 인간 사고의 오류(자신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즉 cognitive illusion이 인간 삶  도처에 산재함을 깨닫게 되고
조금 더 자신의 주장, 지식, 주의. 믿음, 신앙의 불확실성 가능성에 대하여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겸손하여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글을 한번 써보려 하였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해외에서 관련하여 좋은 책들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 최근에 출간된 한 책에 주목하게 된다.

그 것은 바로 원저 제목이 'On being certain' (확신에 대하여) 이고
번역서 제목이 ‘뇌, 생각의 한계’ 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적어도 국내의 정치가, 정치지망생, 법률가, 법률가지망생들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의 틀을 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게 하기위하여
항상 노력하는 많은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이상의 글 책임 : 이정모; 홈:  http://cogpsy.skku.ac.kr/
                              블로그 : http://blog.naver.com/meta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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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확실성은 생물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불쾌함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확신은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고 사고 과정조차도 아니다. 확신과, ‘우리가 뭘 아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들은 마치 사랑이나 분노처럼, 이성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무의적... 기제들로부터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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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뇌, 생각의 한계:  :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원서명 : On Being Certain)
저자: 로버트 버튼 
역자: 김미선
출판사: 북스토리 
(원서명 : On Being Certain)
정가; 15,800원
출간일  2010년 08월 05일
쪽수:303쪽
ISBN-10899348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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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링크]
http://www.yes24.com/24/goods/401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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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 안다는 느낌
2. 우리가 뭘 아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까?
3. 신념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4. 정신 상태의 분류
5. 신경망
6. 모듈성과 창발
7. 사고는 언제 시작될까?
8. 지각적 사고: 그 이상의 설명
9. 사고의 쾌감
10. 유전자와 사고
11. 감각적 사고
12. 확신의 양대 기둥: 이성과 객관성
13. 신앙
14. 마음에 대한 사색
15. 마지막 사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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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로버트 버튼
- 의학박사. 예일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의대를 졸업했다. 33세에 UCSF 마운트 지온 병원에서 신경학 부문장으로 임명되었고, 뒤이어 신경과학과 부과장이 되었다. 그의 신경과학 이외의 글쓰기 경력에는 비평가들로부터 인정받은 세 편의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에 살고 있다.

[역자소개] : 김미선
-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대덕연구단지 내 LG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숙명여대 TESOL 과정 수료 후 영어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뇌’라는 키워드를 가운데 두고 영역을 넓히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식의 탐구』, 『꿈꾸는 기계의 진화』, 『기적을 부르는 뇌』, 『미러링 피플』, 『세계의 과학자 12인, 과학과 세상을 말하다』, 『창의성: 문제 해결, 과학, 발명, 예술에서의 혁신』, 『뇌 과학의 함정』, 『감정의 분자』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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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위의 링크
http://www.yes24.com/24/goods/4015969

에 소개된 자료를 보세요

  • ?
    이정원 2010.08.08 18:09
    이정모 교수님 잘 지내시죠.^^
    인사 드린지 좀 오래 되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추천글 감사합니다.
    꼭 볼게요.
  • ?
    안희찬 2010.08.08 18:09
    이정모 교수님 "뇌, 생각의 한계"에 대한 추천 글 고맙습니다.
  • ?
    김미선 2010.08.08 18:09
    제가 쓴 책도 아닌데 제목에 놀랐습니다, 교수님^^;;
    "인간 사고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도 많은 오류와 인지적 착각을 범하고 있다..."
    하물며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을 재간도 없으니 제가 제대로 아는 건 뭘까요...
  • ?
    임석희 2010.08.08 18:09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머리를, 가슴을 후려치는 문구입니다.

    김미선 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책 추천해 주시고, 저희에게 계속 자극 주시는 이정모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 ?
    문건민 2010.08.08 18:09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 ?
    지석연 2010.08.08 18:09
    좋은 책, 좋은 번역, 좋은 추천.
    모두 감사합니다.
    잘 읽고, 확신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 ?
    현영석 2010.08.08 18:09
    읽어야 할 좋은 책을 소개 받는 것은 한편으론 행복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담입니다. '먼일 이든 그렇게 확신하지 말어'
  • ?
    연탄이정원 2010.08.08 18:09
    1-42. 시비(是非)와 자성반성

    안다고 할 때 어느 정도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옳은 것인가?
    내가 좋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인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엔 시빗거리도 없을 것이고, 다툼도 없을 것이며,
    갑론을박의 논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사람은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식견과 기호에 따라 선과 악이 다르고,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르고, 아름답고 추함의 기준이 다르고, 믿는바와 추구함의 가치관이 다르다.
    백인백색, 천차만별, 이렇게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화목상생 하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장자’에 나오는 우물안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구리가 동해에 사는 거북에게 말했다.
    ‘나는 참 즐겁소! 밖으로 나오면 우물 난간위에서 뛰놀고,
    안에 들어가면 깨진 벽돌 끝에서 쉬며,
    물위에 엎드릴 때는 겨드랑이를 수면에 대고 턱을 물위에 받치며,
    진흙을 발로 차면 발은 발등까지밖에 잠기지 않지.
    장구벌레, 게, 올챙이를 두루 보아도 나만큼 즐겁지가 못하네.
    구덩이 물을 내 멋대로 독점 하고서 우물을 지배하는 즐거움이란
    또한 최고의 것일세. 자네도 이따금 와서 들어와 보는 게 어떻겠나?‘

    그래서 거북이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 왼발이 들어가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우물에 이미 걸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뒤로 물러나서는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 주었다.

    ‘대저 천리의 먼 거리도 바다의 크기를 드러내 보이기에는 부족하고,
    천길의 높이도 바다의 깊이를 형용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네.
    우 임금 때 십 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바닷물은 불어나지 않았지. 탕 임금 때 팔 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믐이 들었지만 바닷물은 줄지 않았지. 시간이 짧고 긺에 따라 변하는 일이 없고, 비가 많고 적음에 따라 불거나 주는 일 없다는 것, 이것 또한 동해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네.‘
    우물안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만 당황하여 얼이 빠져 버렸다.“
    ('장자' 외편 '추수')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안 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가 아는 지식은 우물밖에 없다. 그에게 바다를 이야기 해 주어도 바다에 대해 알 턱이 없다.
    바다의 거북이는 또 바다만을 알 뿐이지 더 넓은 이 우주 공간을 알 턱이 없다. 그가 동해바다는 이 쪽이고, 서해바다는 저 쪽이고, 남쪽은 이 쪽, 북쪽은 저 쪽이 라고 하자. 우주인이 볼 때는 동쪽도 없고, 서쪽도 없고, 남쪽도 북쪽도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우리가 아는 지식 이라는 것이 이처럼 제 입장에서 제 나름 대로의 지식이요 편벽된 지식일 뿐이다. 그 지식이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양 주장하기 때문에 편이 갈라지고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매미에게 얼음에 관해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을 받 고 있기 때문이다. 편벽된 선비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 외편 '추수')

    시간이라는 장벽, 공간이라는 장벽, 그리고 또 기존 지식의 고정관념 이라는 장벽이 있어 지식이 그 한계를 보인다는 뜻 일게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격물치지의 공부 방법에 따라 비판적 사고를 통한 시비판단이 몸에 배어 아무래도 도를 이해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문이 매일매일 더해가는 위학일익(爲學日益)의 '더하기 공부'라면 도는 매일매일 버리는 위도일손(爲道日損)의 '빼기 공부'다. 무(無)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버리 고 또 버리라는 것이 도가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만약 나와 당신이 논쟁을 했다고 하자.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내가 당신을 이기지 못하면
    당신은 과연 옳고 나는 그른 것인가?
    내가 당신을 이기고 당신이 나를 이기지 못하면
    나는 과연 옳고 당신은 그른 것인가?
    한사람이 옳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그른 것인가?

    한 쪽에서의 나누어짐은 다른 쪽 에서는 이룸이며,
    한쪽에서의 이룸은 다른 쪽 에서는 무너짐 이다.
    모든 사물은 이룸이건 무너짐이건 간에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오직 도에 이른 자만이 이 하나가 됨을 깨달아서
    자기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보편적인 영원한 것에 일체를 맡겨 버린다.

    성인은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고,
    하늘의 이치인 절대적 자연에 비추어 보고, 또 이를 따른다.
    거기선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 또한 이것이 된다.
    저것도 일면의 시비가 있고, 이것도 일면의 시비가 있다.
    그렇다면 저것과 이것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없는 것, 그것을 일컬어 도추(道樞), 즉 도의 핵심이라 한다. 도추가 원의 가장 중심에 있어야 비로서 무궁한 변화에 대처할 수가 있다. 옳음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며, 그름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내 세우는 것은)자연의 명증함만 못하다고 말한다. ('장자' 내편 '제물론 ')

    도가사상은 사람들의 이성은 불완전한 것이고, 사람들의 판단은 상대적 이어서 절대적인 값을 매길 수가 없는 것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행복과 불행, 아름 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나쁜 것, 긴 것과 짧은 것, 심지어 삶과 죽음도 같은 자연변화의 한 가지 현상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처럼 상대적인 판단에서 얻어진 불안 정한 가치를 평생 두고 추구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이나 감정 또는 욕망을 초월하여 아무런 의식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지내야 만 한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도가의 이러한 주장은 세상의 모든 상대적인 시비나 가치판단을 부정하고 오로지 무한한 자연의 밝음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무위자연’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숙명론(宿命論)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람의 빈부나 귀천은 모두가 숙명이며 그 숙명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인위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란 완전히 ‘무위자연’ 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모든 의식이나 행동상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 에서는 ‘자연심(自然心)’ '자연지도(自然之道)' '자연의 법'은 말하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씀은 없다.
    자연심!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이 바로 자연심이다. 선함과 악함, 좋아하고 싫어함, 아름다움과 추함을 나의 감정이나 편견 없이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라고 가르친다. 내 착함도 자연이 알아주고 내 원한도 자연이 풀어 주신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라도 타인을 원망하지 말고 오로지 ‘자성반성 ’을 통하여 내 안에 있는 천성선령의 자연심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자연심은 바로 한량없이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이다!

    성훈에 “숙명고애 운명행복(宿命苦埃 運命幸福)”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은 고애요, 이를 자성반성을 통해 고쳐 나가면 행복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또 “숙명불개척 박명지인생(宿命不開拓 薄命之人生)” 이라 하였다. 숙명을 개척하지 않으면 박명의 인생이 된다는 말씀이다.

    도가의 가르침이 무위자연으로 현실을 회피 또는 초월코자 한다면, 성덕의 가르침은 자성반성을 통하여 보다 적극적인 삶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성덕의 위대한 가르치심이 아니던가!

    그동안 나는 보고, 듣고, 접하는 일마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판단을 하며 살아왔다. 희로애락오애욕(喜怒哀樂惡愛慾)의 인간심으로 얼마나 많은 시비를 걸 며 살아 왔던가!
    성훈에 “묻는 것이 아는 것이요, 아는 것이 묻는 것이라. 배우는 것이 아는 것이요, 아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 하였다.
    항상 겸허한 자세로 묻고 배우며, 시비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 시비가 들어가 있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지키리라. 그리고 자성반성으로 돌리리라!


    (www.kosoo.kr/2010.7)
  • ?
    이정모 2010.08.08 18:09
    도가의 가르침 소개 글 감사합니다. 동양에서도 깊은 통찰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관련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가다듬어야 할 것에 대한 좋은 화두를 받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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