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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출산 전에 '혀 내밀기 모방 실험' 계획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두었더니,
출산 소식을 들은 분들 중에 '42분 실험' 해봤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다.
실험은 성공했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늦긴 했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 혀 내밀기 모방 실험 보고서 >

 

1. 배경과 목적
수세기 동안 신생아의 뇌는 백지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신생아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우리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의 연구로 우리는 신생아의 뇌가 백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생후 42분의 신생아가 성공한 기록이 있는 '혀 내밀기 모방'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신생아는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
신생아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 혀놀림 정도로 반응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혀 내밀기 모방 실험'은, 갓 눈을 뜬 신생아의 모방 본능을 이용하여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해 보고자 하는 실험이다.

 

어느 연구자가 생후 몇 개월 된 아기에게서 혀 내밀기 모방을 관찰한 이후로
생후 더 빠른 시기에 모방 반응을 관찰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이 실험은 신생아의 뇌에 선천적으로 입력된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실험이므로
생후 실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일수록 경험에 의한 요소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혀 내밀기 모방 실험'은 신생아가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하는 실험이다.
 

모방은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이다.
아기는 모방을 통해 말을 배우고 기술을 습득한다.
이 학습 방법은 그 탁월한 효과가 진화적으로도 인정받아 본능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방 본능을 가진 신생아라지만
눈을 뜨자마자 혀 내밀기 모방이 가능하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 모방은 신생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1)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사람과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을까?
아기의 뇌에는 사람 얼굴에 대한 윤곽이 미리 입력되어 있는 듯하다.
아기는 신생아때부터 사물과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줄 알고, 사물보다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
사람의 얼굴 표정 사진과 사물의 사진을 이용한 실험에서, 아기들은 사람의 얼굴에 더 시선을 오래 둔다.
또한 아기는 서로 다른 얼굴을 구별하고 특정한 얼굴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신생아의 혀 내밀기 모방 실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짐작할 수 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줄 안다.

 

2) 신생아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태어날까?
자궁 속에는 거울이 없다.
아기는 태어나서도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혀가 입 안에 있는지 입 밖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생아는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자신도 앞에 있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마주한 사람의 혀 움직임을 보고 자신의 혀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신생아의 혀 내밀기 모방 실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짐작할 수 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눈 앞의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3) 신생아는 자신의 몸에 대한 내적 감각을 가지고 태어날까?
모방 본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외국어를 배울 때 원어민 발음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모국어에 특화된 구강 구조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발성 관련 근육을 미세하게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로 듣는 소리와 우리 발성 관련 근육 사이의 연관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혀를 내밀 때 그것을 보지 않아도 우리가 혀를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내적인 운동 감각과 혀의 움직임과 위치에 대한 연관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관성을 신생아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신생아의 혀 내밀기 모방 실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짐작할 수 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내적인 운동 감각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2. 실험 내용
1. 아기와 20cm 간격을 두고 얼굴을 마주본다. -신생아는 심한 근시이다-
2. 시선이 나에게 오는 것을 기다린다.
3. 천천히 혀를 내밀고 수초 기다렸다가 넣는다.  -신생아는 수 초 이상 시선을 두어야 장면을 인식한다-
4. 3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혀 내밀기를 반복한다.
5. 아기가 혀를 내미는 행동을 모방하는 지 관찰한다.

 

3. 실험 환경 및 과정

생후 3분
출생 직후 3분 동안 분만실에서의 조치 등을 지켜보고 사진도 찍었지만, 이후 3시간 동안 아기를 보지 못했다.
그 동안에 피를 닦고 코나 귀 등에 들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체온과 습도, 무균 상태를 유지해 주는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생후 3시간
내가 아기를 다시 만난 것은 생후 3시간이 지나서였는데
그날 밤 신생아실로 보내기 전까지는 왼쪽눈만 잠깐 떴을 뿐 별 활동 없이 계속 잠만 잤다.

 

생후 32시간
생후 이틀째 오후에 내가 아기를 다시 만났을 때
계속 자고만 있다가 어느 순간엔가 두 눈을 뜨고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처음 아기를 안고 똑바로 마주보게 된 것은 2월 11일 오후 4시 (생후 32시간) 였다.


1차 실험 (생후 2일, 31시간 45분)

아기는 이틀째 계속 잠만 자다가 3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내가 아기와 함께 있지 않은 첫날 밤에 눈을 떴을 수는 있다.-

 

생후 32시간이 되어서 갓 눈을 뜬 아기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아기에게 나를 소개하고 혀내밀기 모방 실험을 시도해 보았다.
시선이 나에게 올 때마다 천천히 두세 번씩 시도해 보았다.
어느 순간 내가 혀를 내민 직후에 아기도 혀를 입술 근처까지 아주 천천히 내밀었다.
15회 정도 시도 후에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이때 3초 간격으로 연속 2회 혀 내밀기 모방을 관찰했다.

아기가 눈을 뜨자마자 모방을 관찰했다는 점에서 실험은 성공적이다.

 

2차 실험 (생후 3일, 61시간 33분)

셋째날은 회사에 출근하여 저녁 9시쯤 병원에 들러서 9시 40분 쯤에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데려왔다.
아기는 조금 전 저녁 9시에 30cc의 분유를 먹고 눈이 말똥말똥한 상태였다.

 

2차 실험은 산모가 시도해 보았다.
산모가 아기 얼굴을 마주보고 혀 내미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5회 정도 시도했을 때, 아기가 혀를 쭉 내밀었다.
전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혀를 길게 내밀었다.
방금 전에 먹은 분유가 혓바닥 안쪽이 하얗게 묻어 있었는데 하얀 부분이 입 밖으로 꽤 많이 나왔다.
아기는 혀를 완전히 내밀었다. 엄마보다 더 열심히.

아기가 혀를 내미는 것이 습관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4. 결과
실험자 : 이정원, 송영주
피험자 : 봄이

 

출생일시 : 2008년 2월 10일 08시 17분
1차 실험일시 : 2008년 2월 11일 16시 02분 (생후 2일, 31시간 45분)
2차 실험일시 : 2008년 2월 12일 21시 50분 (생후 3일, 61시간 33분)

 

1차 실험결과 : 15회 시도 후 입술 근처까지 혀를 내미는 모방 연속 2회 관찰
2차 실험결과 :  5회 시도 후 입술 밖으로 혀를 길게 내미는 모방 1회 관찰


5. 고찰
아기가 혀를 내미는 것이 우연이거나 습관이라면 이 실험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혀 내밀기가 의도적인 모방이 아니라 자극에 의한 반사라면 역시 이 실험은 적절치 못하다.
아기를 며칠 동안 관찰하고 이 실험을 직접 해 보면 알 수 있다.
아기는 우연히 혹은 습관적으로 혀를 내밀지 않는다.
또한 혀 내밀기는 의도적인 모방이다.
눈 앞에서 박수를 칠 때 눈을 깜박이는 반사와는 성질이 다르다.

 

다음은 내가 근거없이 상상한 모방 반응 중 신생아의 사고 과정이다.

 

1. 눈 앞에 있는 장면-사람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해. 다른 장면-사물-보다 정이 가네.
2. 어랏. 붉은 테두리의 주머니 안에서 분홍색의 덩어리가 밖으로 튀어나오네!
3. 아래위로 벌어지는 붉은 주머니는 무엇이고, 튀어나오는 선홍색의 덩어리는 무엇일까?
   [7~8회 관찰 후]
4. 아,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자궁 속에서 상상만 해 왔던 인간이라는 것이구나!
5. 왠지 정이 간다 했더니, 나와 동종인 인간이어서 그랬구나!
6. 그럼 나도 저런 주머니와 덩어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7. 인간의 움직임을 많이 따라할수록 빨리 큰다던데.
8. 그렇다면 이게 과연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움직임일까.
9. 입 안의 이 근육을 이렇게 씰룩대면 저렇게 보이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10. '메~롱'

11. 아, 이렇게 해야 하나씩 배우는거구나. 역시 배움의 길은 멀고도 힘들어.

 

6. 결론
1.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줄 안다.
2.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눈 앞의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3.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내적인 운동 감각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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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8.02.15 01:23
    긴 글을 싫어하는데 이번 글은 어쩔 수 없네요. ^^;
    제가 작년 송년회와 독서토론회 뒤풀이 자리에서 모방 실험을 예고했었는데
    드디어 때가 되어 보고서를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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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2.15 01:23
    와....너무 신기해!!!
    그리고 너무 재미있어요~!!! 보고서도 일품~!!!
    아기를 기다리는 주변사람들에게 이 얘길 꼭 해 줘야겠어요!!
    봄이야~ 무럭무럭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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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2.15 01:23
    아이들 앞에서는 행동거지도 말도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2,4,5세인 제 조카들만 하더라도 언제 배웠는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할 때가 많아서 자주 놀래거던요. 그런데, 이제보니.... 탄생 42분 후 부터 조심해야 하는게 맞군요!!!
    역쉬,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하나의 인격체임이... 생각보다 그 인격체 형성이 빨리 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감탄감탄감탄감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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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8.02.15 01:23
    저도 이런실험이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적이 있어요..
    아기 맛사지를 할때도 처음엔 조금 찌그리지만..그것이 좋은 기분이란걸 알게되면서 엄마가 자신의 몸을 만지면 알아서 손을 쭉 위로 뻗어 기분좋은 표정을 짓는다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너무나 신기한 이일이..실로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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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08.02.15 01:23
    생생한 뇌과학 실험이라고 해야하나요?^^실험이라는 단어 보다 아이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생각중...(봄이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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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8.02.15 01:23
    실험 말고 다른 단어 좀 찾아주세요.
    아기를 대상으로 무슨 실험이냐면서 부성애도 없는 사람 취급 당하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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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8.02.15 01:23
    그러네요..실험이라고 한건 좀..저도 죄송..
    연구? 이건 더 그렇고...사회성 ? 지각능력 훈련? 아님 감각테스트?
    아..갑자기 저도 좋은말 찾고 싶네요..생각해 봐야지..
    그리고 부성애도 없는 아버지 아니고..아기를너무 사랑하는 아버지 맞씁니당~~~
    사랑하는 아들의과의 교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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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8.02.15 01:23
    저는 실험이란 말 엄청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딱딱하게 들리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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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8.02.15 01:23
    실험(實驗)을 실험이라고 하는건데 전 괜찮아요. ^^
    관찰이나 연구도 근접하긴 하지만 정확한 건 '실험'이겠죠 ^^
    보고서 정말 잘 봤습니다. 저도 언젠가 본 실험결과의 사례추가에 일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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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08.02.15 01:23
    내 아이의 능력 발견!!
    "발견"이라고 하면 좋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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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숙 2008.02.15 01:23
    발견..?좋은것 같아요..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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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8.02.15 01:23
    오늘 날짜 조선일보에 거울 뉴런(mirror neuron)에 관한 칼럼이 실렸네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6/2008021600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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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보미 2008.02.15 01:23
    어쩜 좋아. 글을 읽으면서 웃음이 떠나지 않아요. ^-^
    모니터 앞에서 혀를 낼름 낼름 같이 따라해보기도 하고요. ^-^
    아기 앞에서 메롱을 하시는 엄마, 아빠의 모습도 상상되고.
    정말 계획성있고 생물학적이면서도 귀엽고 행복한 실험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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