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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9 09:00

자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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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

비가 온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 싫지는 않지만.
오늘 밤 실컷 내리고
내일 아침에는 제발 눈부신 해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을 잿빛 구름으로
온 세상이 찌푸린 얼굴이었고
거기에다 자주 내리는 비는
보기 싫게 흘리는 눈 물 같았다.
이제 그만 그쳤으면.

계속 비가 오니
비가 오기 전
산에서 만났던 느낌들을 되살리고 싶어진다.

겨우내 아카시아 나무는
'아카시아'라는 이름의 느낌과는 다르게
정말 볼품없이 산에서 살고 있었지.
키만 삐쭉하게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내놓고.
마치 영양실조에라도 걸린것처럼.
뿌리를 허옇게 드러내놓은채
어지럽게 옆으로 기웃이 누워 있는 모습들이,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 가끔씩 나타나던
미친여자의 어수선한 머리를 보는 듯 했었다.
서로가 더 이상 쓰러지면 안 되겠다 싶어
산 군데군데 아카시아나무들은
어지럽게 얽혀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간신히 서 있었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엽게만 보이던 나무들이
서서히 살아나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제 가난에 굶주려 가지만 앙상하게 뒤얽혀
미친여자의 어수선한 머리의 모습이었었더냐 "
하고 대들기 라도 하듯
기온이 조금씩 올라감에 따라
완벽한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보통 잎으로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카시아 나무들은 눈깜짝 할 사이에 꽃으로 자신의 변신을
화려하게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 볼품없이 마음에 연민을 일으키던 그 나무들이
갑작스런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천천히 번지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을 두고 완벽하게 산을 점령하여
천상의 세계로 요술을 부려놓았다.
몇 칠을 아카시아 향기에 이끌려
설레임으로 이른 아침을 맞이하곤 했었지.
그 좋은 향기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깔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자연의 향기에도 색깔이 있다면
향기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색의 향이기 때문에
그 향기가 더 그윽하고 한없이 끌리게 되는 게 아닐까?

아카시아 향기에 뒤이어
밤나무가 바통을 이어받아
온 동네에 향기를 품어대기 시작했지.
밤꽃은 노랑과 연두색의 중간색으로
북실북실한 털실의 모습으로 길다랗게 죽죽 늘어져서 피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고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금 높은 위치에서
바라봐야 보고 싶은 만큼의 꽃을 볼 수가 있다.
무심코 걷다 보면 어떤 진한향기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잡목들만 있을 뿐
향기를 품을 만한 나무는 쉽게 눈에 안 들어온다.
"도대체 매혹스런 이 향기의 정체는 누구야!".
시선의 반경을 조금 더 뻗쳐 보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잘생긴 밤나무 한 그루가
위풍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범인은 바로 너였었구나. 바로 네가 안개를 품어대고 있었구나".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자연의 냄새는
바로 찔레꽃 향기이다.
이런생각 저런생각으로 가볍게 발길은 놓다 보면
맑은 새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다른 종류의 새 소리가 들리고
그러다 보면 문득 귀에서 새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짐을 지각하게 된다.
풋풋한 향기가 귀를 막고 코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누굴까? .
눈을 옆으로 돌려보니
또다른 산의 요정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우리 한번 눈을 맞춰 보자구요!"
작은 귀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새하얀 꽃무더기를 발견하게 된다.
봄이 시작될 무렵
삐죽히 작은 새싹으로
가볍게 부드러운 흙을 뚫고 세상에
자기 존재를 알리고
날로 따뜻해지는 기온과 잦은 봄비로
연한 줄기를 쭉쭉 뻗어내어기 시작했었지.
제법 통통하다 싶은 것들만을 골라서
몇 날 며칠을 그 찔레꽃 줄기를 꺽어서 단맛도
안나던 떫은 맛이 뭐가 좋다고.
걸음을 멈추고 찔레꽃 무더기 앞에서 기웃거리곤 했었을까?.
아마도 어린시절의 고향이 생각나서
고향의 향기가 그리워서 그랬을까?.
찔레를 통해 자연에 무의식중에 친숙해지고 싶어서였을까?.
한동안 나는 물이 밴 통통한 찔레를 꺾어
껍질을 벗기어 맛보는 것을 즐겨 했었다.

이름모를 온갗 갖가지의 야생풀
또한 갖가지 꽃향기 못지 않게 우리를 매혹시킨다.
주인없이 야생으로 자라
자기들만의 갖가지 향기를 불어내고 있는데
산에 가기만 하면 야생풀의 향기는
온통 다 내것이 될 수 있다.

흙 또한 향기가 있다.
향기중에서도 제일 짙은향기를 갖고 있는 게 흙이 아닐까?.
한줌의 흙에도 수십억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하던데
1그램의 흙은 그냥 흙이 아니다.
1그램의 흙 전부가 작은미생물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생명체들의 덩어리 인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생명인 것이 아닌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우리가 지구표면에서 살고 있듯이
그들도 또한 우리와 똑같이 흙속에서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흙은 생명이다, 대지는 어머니와 같다"
이런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흙이 생명체 덩어리라는 것의 첫째 증거는
흙에도 진한 향기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증거는 흙의 색깔과 부드러운 흙의 촉감에 있다.
죽어있는 흙은 냄새가 안 난다.
농약을 뿌려서 흙 속에 있는 생명체들을
몰살시킨 흙은 냄새가 절대 안 난다.
그래서 죽은 흙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흙 냄새가 좋아서
일부러 코를 벌름거리며
흙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있다.
며칠전에 방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코를 자극하는 이상한 좋은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잡풀을 뽑아 내느라고
괭이로 흙을 파고 득득득 흙에서 풀을 떼어내는 데
흙이 파헤쳐지는 바람에 흙 냄새가 열려진 창으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창문을 더 활짝 열고 몸을 내밀어
뽑혀진 풀과 축축한 물기 머금은 진한 갈색의 흙을 보며
흙의 향기를 느낄수 있었다.

큰 도로에서 좁은 산길에 들어서면
온몸과 마음으로 산의 향기에 매료되다 보면
자연의 정기를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흙과 물과 태양이 만들어낸 온갗 생명체들,
자연의 정령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산에 가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온갗 나무와 이어서 피어 나는 꽃들,
다양한 잡목들과 야생풀들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어머니인 흙.
태양과 비를 만드는 구름과 바람 ...
등등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그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순간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에게서 은혜를 입으면서,
그래서 빚을 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순수한 진리를 체험해야만 한다.
그들이 없다면 살 수 없다는 너무도 쉬운 진리를
왜 우리들은 가슴깊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두뇌와 학벌을 자랑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내세우는 우리들이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해야만
진심으로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의 터무니없고 덧없는 욕심을 버리게 되는 날.
바로 그날 마음안에서 진짜 평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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