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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3 09:00

비 내리는 갑천에서

조회 수 223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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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시, 큰 아이가 양팔을 위로 쭉 뻗어 제껴 올리면서
"엄마 ! 어째 몸이 찌뿌드드 하네.
지금 바람 쏘이러 나가면 안될까?"
학교에서 돌아와 머리 아프다 면서
한숨 자고 싶다고 했다.

산에 다녀올 때까지도
딸애는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낮잠을 잔 것이다.

먹고 낮잠을 잤으니
그리고 곧바로 먹히지 않는 저녁식사를 했으니
몸이 가벼울 리가 없는 것이다.
"함께 산에 가자고 했을 때 갔으면
몸도 가볍고 저녁밥도 맛있었을 텐데..
머리 아프다고 게으름 피우더니 !
찌뿌드드한 게 당연하지.
먹은 음식이 용해되어 제자리를 찾아가야 되는데
가만히 누워 뒹굴 뒹굴 하니
그 음식들이 가야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곳에 고여 있을 거다. "

저녁 늦게 산엘 다녀왔기 때문에
조금 피곤한 상태여서
딸의 산책에 함께 동행해 줄 것인지 순간 조금 망설였다.
이 밤중에 혼자 나가서
동네 한바퀴 돌고 오라고 하기에는 위험한 일이고,
그렇다고 그냥 내비 두자니
딸의 무겁고 답답한 기분이 계속 나를 쫓아다닐 것 같고.

" 그래 ! 갑천으로 가자. "

우산을 받쳐 들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빗속을 나란히 걸었다.
우리 딸애는 갑천 나오는 것을 참 좋아한다.
밖에 나가 놀 나이가 지났는지 요즘에 와서 부쩍 몸 놀림이 무겁게 느껴진다.먹는 것 못지 않게 잠도 늘어서 낮잠까지 자곤하는데 그냥 냅두면 게을러져서 우둔해질까 열려가 된다.
그래서 그런 딸을 데리고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곤 한다.
그 때마다 딸애는 갑천에 가서 운동하자고 했다.
아파트 바로 옆에 학교가 있어서
운동할 맘을 쉽게 먹을 수 있었고
거의 한달 반 학교 운동장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딸 때문에 갑천으로 가게 되었다.

준비운동과 출발선에서 함께 시작해서
4-5백미터 까지는 그냥저냥 나와 보조를 잘 맞춘다.
1킬로 미터를 앞두고는
'요기가 땡긴다는둥, 이쪽이 땡긴다는둥"
배가 땡긴다 면서 온갗 엄살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래 ! 그러면 1킬로 까지만 달려 봐 .
그리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내일을 위해서
나는 최대한 딸의 비위를 기분좋게 맞추어 준다.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강요에 의해
해야만 되는 운동이 아니라
즐기는 운동, 즉 딸의 즐거운 오락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아주 현명해져야만 한다.

천천히 달리다가 서서히 걷다가
뭔가 딸의 눈에 띄게 되면
딸의 운동은 그것으로 만족해야한다.
목표지점까지 갔다가
딸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서 보면
딸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침없이 넘실넘실 흘러가는 물결과,
이곳을 찾아 자유롭게 비행을 즐기고 있는
저 하얀 새를 바라보고,
물가에 늘어선 낚싯대와
느긋하게 운동을 즐기는
저 건강한 사람들의 편안한 움직임을 보며
딸은 무엇을 상상할까?

" 자 그만 쉬고 또 뛰어야지?"
딸애는 다시 일어서서 나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어떤 무처럼 생긴 것이 떠내려가더라,
뚜껑이 이상하게 생긴 병이 떠 내려 가더라.
엄마는 저 새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아?"
등등 달리면서 눈으로 본 것
마음에 일어난 느낌 같은
온갗 것의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딸은 운동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갑천의 느긋하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그 편안한 경치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틀림 없다.

비를 맞고 있는
갑천의 밤은 정말 신비하다.
유유히 흘러가는 잔잔한 물결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드는
물 표면의 그림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에 어떤 행복한 자극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반대편 큰길에
나란히 서있는 가로등불빛이
물에 반사되어 긴 주황색 불빛이 물 속에 서있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앞과 되로 길게 나란히 서있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로 건너편에
더 이상 시야를 뻗칠 수 없게
큰 벽이 되어 꽉 막고 서 있는
멋없는 아파트단지이다.
아파트 대신에
잘생긴 나무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동산같은 것이 서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그냥 시야를 가리지 않게
아무것도 없는 평이한 상태라면
눈앞의 시야에 걸림이 없어서
갑천의 비오는 밤의 풍경은
더 없이 환상적일 것 같다.

어제 오후에는 하얀 새들의 무리가
나란히 일렬로 서서
넘실넘실 흘러가는 불어난 물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흘러가는 물결을 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장마철에 물구경 나온 사람들 모습을 닮았 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딸과 나 둘 이는 우산을 받치고 걷다가
" 우리 달려 보자 .
보는 사람도 없고,
비올 때 우산 들고 달려 본 적도 없잖아,
옷 젖으면 어때! 빨면 되지.
1킬로만 달려 보자"
우리는 희희덕거리면서
비오는 갑천을 달렸다.

조용히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다가
물결에서 이상한 어두운 그림자들의 무리를 보자
혹시 하늘의 구름이 비추어서
만들어진 구름의 그림자일까 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희뿌연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비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갑천의 잔디밭 위에
텐트하나가 쳐져 있었다.
며칠간 계속 내리고 있는 비로
흠뻑 젖어 있는 잔디에 ,
낮도 아닌 이 밤중에
비가 더 계속 내리면 위험할 수 도 있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낼려는 이는 도대체 누굴까?
딸은 시인일 거라 했다.
시상이 안 떠올라 영감을 얻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해 보는 걸거라고 딸은 말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사연으로
비오는 밤에 물로 질척거리는 이 갑천에서
잠을 자고 싶은 걸까?
궁금에 못견딘 나는 텐
트 가까이까지 다가가서 기웃기웃 거리며
"누굴까?
왜 이런 상황에 이곳에서 밤을 지내고 싶을까?"
라고 몇 번을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궁금해서 죽겠으니
나와서 답변 좀 해줄 수 없겠느냐?,
비오는 아름다운 갑천의 밤을
혼자 다 차지 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냐?
"이보시오 총각인지 홀아비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와 보시요?
" 엄마 미쳤느냐는 딸아이의 호들갑스런 제지로
나는 호기심을 그만 눌러야 했고 ,
신비한 아름다운 밤을 보여주고 있는
갑천에 밤이 깊어가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갑천!
잠을 자는 동안에도
갑천은 깨어 있겠지.



  • ?
    송봉찬 2003.07.13 09:00
    그래요... 흠뻑 비를 맞고 뛰어보는 그 자유... 그 가르침...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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