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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2 09:00

기로에 선 오프라인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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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종로서적의 예고된 도산

지난 6월 4일 부도난 종로서적은 과연 되살아날 것인가? 수많은 언론과 문사, 서적출판관계자들은 창립 100주년을 몇 년 남겨놓지 않은 채 쓰러진 종로서적을 우리 출판문화의 한 ‘상징’으로 여긴 바 있었다. 그래서 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6월 7일 성명을 통해 종로서적의 ‘발전적 재건’을 촉구한 바 있으며, 그 후 11개 출판 관련 단체가 망라된 ‘종로서적 살리기 추지위원회’가 결성된 후 회생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었다.

종로서적 ‘재건’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1)기존 경영진의 기득권 포기 2)고액 채권자들인 출판사들의 동의 3)운영자금난 해결 등 세 가지의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종로서적을 살리겠다는 출판계의 의지로 인해 2)와 3)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으나 1)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7월 16일의 채권단 회의는 기존 경영진이 제기한 제3자에게 대표권한을 이양시킨 후 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일단 매장의 도서를 회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지난 시대에 지성의 산실로서 혹은 추억의 약속장소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문서점인 종로서적은 결국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반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종로서적의 기존 경영진이 대승적인 견지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나오면 일단 회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대책위가 별도로 다시 종로서적을 설립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뒤늦게나마 ‘종로서적’의 의미를 모든 사람이 깨달은 것은 분명 상당한 성과다.

우리 나라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러본 경혐이 없지 않을 간다(神田) 서점거리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산세이도쇼텐(三省堂書店)도 여러 차례 부도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산세이도의 회생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산세이도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산세이도가 사라지면 독자들이 ‘간다의 서점거리’를 잊게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두가 동업공생(同業共生) 하겠다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종로서적은 어땠는가? 내부적으로는 경영진간의 불화, 강성노조와 경영진간의 대립으로 인해 환경 변화에 따른 변신의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과거의 서점은 독자가 제발로 찾아와 ‘교양주의적’인 양서를 스스로 고르는 공간이었지만 지식정보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은 폭넓은 정보화 지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서점은 책을 단순하게 ‘진열’하던 것에서 벗어나 적절한 ‘편집’을 통해 알맞게 진열된 책이 분출하는 ‘정보의 불규칙성’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한편 문제의식을 담은 신간을 수시로 골라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독자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고 독자를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유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 불화에 휩싸인 종로서적은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도가 나기 직전에는 회사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자구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얄팍한 ‘술수’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만 보여줬다. 최근에 보여준 경영진들의 행로 또한 일단 부도낸 다음 채권의 탕감을 통해 상당한 부채 소멸을 이룬 후 다시 경영권을 이어갈 작정이었던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서점관계자들에게 종로서적의 도산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앞장서 종로서적을 살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출판사들이 도산으로 인한 피해를 줄려보려고 책 공급을 하지 않거나 현금 거래만 했다. 그런 일이 종로서적의 도산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종로서적이 부도가 난 다음 언론에게 대대적으로 종로서적을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서야 종로서적을 살리자는 실제 행동에 돌입했지만 사실상 이미 시기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서점을 살려야 한다

설사 종로서적이 회생한다 해도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종로서적을 어떻게든 살려놓으면 독자들은 책 문화에 대한 출판계의 굳건한 의지를 읽게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자주 서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책문화의 부흥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 서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공공도서관이 400여 개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도서관들이 책을 구입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서 독자가 정보수집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역할을 대신해 온 것이 지역서점들이었다.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긴급하게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래서 서점 경영자들은 서점을 ‘생업의 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문환운동의 ‘전진기지’로서도 여긴 바 없지 않았다. 온 가족이 손을 맞잡고 함께 책을 고르며 서로간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생적인 기초생활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등장한 온라인서점은 풍부한 서적목록 데이터, 개별 독자에 대한 맞춤 서비스, 커뮤니티 등의 많은 장점을 내보이며 출판시장에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온라인서점을 가지고 있는 교보문고 등 일부 대형서점들이 할인경쟁에 가세해 지금 출판시장을 대붕괴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온라인 서점 운영자들은 자신들이 매장임대료와 인건비를 절감해 책값을 할인해줄 수 있다고 선전해댔다. 하지만 지금 온라인 서점들은 누적적자로 인해 모두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해 5월 10일 국내 온라인서점 매출 순위 1,2위인 예스24와 와우북이 합병을 선언하자 다른 온라인 서점인모닝 365는, 예스24가 지난해 51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면 이미 손익분기점에 이르렀어야 함에도 “택배비용과 재고부담 및 물류창고에 대한 과다한 투자에 따른 근본적인 사업구조” 때문에 “매출 증대에 비례한 적자폭 증가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두 회사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몸집 부풀리기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실제로 온라인서점의 원조인 아마존닷컴은 단 한 차례의 이익을 낸 바가 없으며, 출판 강국인 독일과 일본에서도 온라인서점이 줄줄이 망해가고 있다. 온라인서점은 많은 장점을 보여줬지만 결국 오프라인과의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고 있다.

‘막가파식’ 할인경쟁과 합종연횡을 통해 끊임없이 ‘판매력’ 키우기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오프라인서점들은 급격히 무너졌다. 온라인서점들에 의해 과다한 이익을 착복하는 ‘악덕업주’가 되어버린 서점주들은 자존심마저 크게 상했다. 그래서 1997년 말에 5,407개였던 서점은 98년에 510개, 99년에 302개, 2000년에 1,238개, 2001년에 661개가 문을 닫아 2001년 말에는 2,696개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올해에는 ‘느낌표’와 같은 방송프로의 신설과 사회 전반의 독서 운동 활성화로 1/4분기에만 서적소비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2%(한국은행 발표)나 늘어나고 준정가제 조항이 포함된 ‘출판 및 인쇄진흥법’ 제정으로 서점의 폐업이 답보상태로 접어들었다.

도서정가시스템 부활시켜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판매력이 커진 온라인서점들과 대형서점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출판사에게 책의 입고가 인하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출판사들은 그런 요구를 수용해 베스트셀러들은 책의 출고가를 정가의 50~55%로 낮추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과도한 할인 이벤트를 핑계로 출고율을 40~45%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출고율은 20~25%까지 낮춰져 출판시장 전체가 덤핑시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런 체제 에 적응하기 위해 출판사는 이미 명목정가를 대대적으로 인상하고 있다. 결국 독자들은 상황에 따라 마구 널뛰는 책값을 불신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책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막가파식’ 할인구조에서는 극단적인 베스트셀러 편중주의만이 활개를 칠 것이며 책의 다양성은 훼손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출판시장에서는 소비자(독자)가 양질의 상품을, 보다 싼 가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자유경쟁시스템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오프라인서점은 몇 년안에 100개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또 출판사는 책을 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책을 팔기 위해서 거리를 헤매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사실상 붕괴된 도서정가시스템을 어떻게든 부활시켜야 했다. 마침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도서정가제를 지켜온 독일에서는 이를 강제하는 특별입법을 최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제1항 ‘목적’에는 “본 법은 문화재인 도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구매자에게 판매시 정가결정은 다양한 도서공급 유지를 보장한다. 본 법은 동시에 다수의 도서판매업소의 존재를 장려함으로써 폭넓은 대중에게 도서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도서의 정가판매를 위반한 사람은 “부작위의 고소”를 받을 수 있으며 “위법으로 발생된 피해에 대하여 보상”을 해야만 한다. 피해 보상은 출판사, 서적판매업자, 관련단체 등과 그들이 위임한 변호사 모두가 요구할 수 있다.

독일 연방정부의 뤼멜린 문화미디어청 장관은 이 법안이 자유시장경제 신봉자들에게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서적에 거액을 투입할 여유가 없는 출판사, 그리고 한 줌의 베스트셀러보다 다양한 서적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독자를 지키는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우리 나라도 계류중이던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그나마 출판시장에 원칙과 기준이 적립돼 출판시장의 급격한 붕괴를 막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간행물윤리 통권289호 2002년 8월호)


글쓴이 : 한 기 호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창작과비평사 영업부 근무, (사)어린이도
서연구회 연구위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주요저서 : 출판마케팅입문/세 학교 이야기/한국출판의 활로,바로 이
것이다 외
역서 : 누가 책을 죽이는가(사노 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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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전에서 문경서점이 부도로 믄을 닫았습니다.
독서크럽과 관련 있는 서점의 최근 상황을 우리 독서인들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전재합니다.

현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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