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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06:20

발자크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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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피곤함·배고픔 잊게 만든 '노동자들의 각성제'
"커피가 위장에 들어가면 아이디어는
뛰어오르고 위트가 꼿꼿이
일어선다네
그러나 조심할지니… 모든 중독은 위험하다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는 다작(多作), 호사 취미 그리고 커피로 유명하다. 이름에 스스로 '귀족'을 뜻하는 '드(de)'를 붙일 만큼 과시욕이
강했던 그는 동시에 당대의 '문학 노동자'였다. 그 노동의 원동력은 커피. 한 통계학자는 그가 평생 마신 커피가 무려 5만잔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발자크, 커피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와의 가상 인터뷰를 꾸며봤다.

―모차르트·괴테와 더불어 당신은 커피 애호가로
불리지만 그 이상이었던 듯합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마신 겁니까.

"미친 듯이. 소설·콩트·정치논평을 합쳐 1830~31년에만
145편을 썼소. 기상시간은 새벽 1시. 8시까지 줄곧 글을 쓰면서 커피를 마시지. 그리고 아침으로 삶은 달걀 2개, 약간의 빵, 커피를 먹지.
9시부터 다시 12시까지 글을 쓰고,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교정작업. 후에 목욕을 하든가 간단한 요기를 하고 7시부터 잠자리에 들었지.
하루 커피를 쉰 잔씩 마시는 암탉 같은 생활이었지. 이런 생활을 6주에서 8주씩 반복했어. 남들은 나를 두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글을 썼다고들
하나 나는 때로 문장 하나를 100번씩 고친 적도 있고, 오자 같은 건 참을 수 없었어.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뻣뻣할 때까지 쓰고 또 썼는데,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게 커피였다네."

―기숙학교 시절부터 커피를 드셨군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시절 기숙사에
식민지에서 가져온 '금지된 콩'을 몰래 들여오는 아이들이 있었지. 커피와의 첫 만남은 곧 '빚'으로 이어져 어머니는 격분했네. 파리에 있는 내
집, 이제는 관광지로 유명한 '발자크의 집' 가봤소? 거기 문이 두 개 있지 않소. 그게 다 사업 실패와 사치로 빚을 많이 지게 되면서 빚쟁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니까. 돈, 그 지긋지긋한 고민이 작품의 원동력이 됐다고 볼 수도 있겠구먼."

―작품 얘기가 나왔으니 직접
설명을 좀 부탁드리죠.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좀 그렇고,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도록 하지. 그는 나를 '리얼리즘 창조의 모범'이라
말했다네. 파리, 그 '다이아몬드가 박힌 진흙' 같은 도시의 인간을 '인간 희극'이라는 대기획 속에 녹여 넣었지.
한국에 널리 알려진 '으제니 그랑데' 역시 그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야. 인간 희극의 장단편 90편에는
2400여명의 인간이 등장하네. 그런 거대화법으로 인물을 탐구한 것이 나, 발자크였네."

―그렇다면 커피는 작품을 쓰는 데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커피가 위장 안으로 들어가면 대소동이 일어나네. 아이디어는 전장에 뛰어든 육군 포병부대처럼 날렵하게 움직여 곧
전투를 시작하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듯 기억은 힘차게 뛰어오르지. 비유법 기갑부대가 어마어마한 화약을 배달하면 전차와 탄약으로 무장한 논리의
포병이 뛰기 시작하며, 위트가 명사수의 자세로 꼿꼿이 일어서네. 직유법이 발기하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이기 시작해. 글쓰기 투쟁이 시작되고 검은
잉크의 급류로 덮이는 거야. 마치 화약전처럼 말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커피는 피를 돌게 만들고,
근육을 강화하며, 소화를 돕고 잠을 쫓고, 지적인 활동에서도 좀 더 큰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니까. 로시니는 오페라를 작곡하는 보름 정도만 마시는
게 좋다 했지만 좀 더 효능을 보게 되면 결코 끊지 못할걸? "


―효능이라니요?

"이건 비밀인데. 처음 1~2주일 동안에는 거칠게 간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하루에 한두 잔을 마셔. 그
다음 주에는 물은 절반, 커피는 더 곱게 갈고 거기 찬물을 부어. 적은 양으로도 앞의 것 정도로 뇌에 활력을 주네. 그다음엔 아주 미세한 가루
낸 커피에 최소한의 물을 부은 다음 한 번에 두 잔, 뭐 사람에 따라서는 석 잔을 '복용'하면 며칠이든 일을 할 수 있다네. 마지막 방법은 힘센
사내들에게나 쓰는 방법인데, 잘게 간 커피를 물 없이 빈속에 털어 넣는 것이네. 커피가 위 주름벽을 공격하면 위장에선 불꽃이 일어나고 그게 뇌로
전달되는 순간 몸속 모든 것이 작동하지."





게티이미지

―세상에나. '복용량(dose)'이란 표현을 쓰고, 가루 커피까지 먹고, 의존성이 컸다는 점에서 일부 의학자들은 당신을 약물 중독자라
평가합니다.

"중세의 시계는 바늘이 하나만 있었소. 시간에 대한 개념이 그만큼 느슨했다는 것이오. 반면 1660년대 이후 유럽의
공장에서는 분 단위 개념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지. 자, 베네치아·암스테르담·파리·런던 같은 유럽의 도시에 커피숍이 문을 열기 시작한
시점이오. 그게 무슨 뜻이겠소?"

―그렇다면 커피가 노동자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요?

"그렇지. 커피와
시계야말로 노동문화의 중요한 상징이지. 이전 유럽에서는 막노동꾼은 피로를 잊으려 아침부터 술을 마셨소. 때문에 부상도 많았지.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술 취한 유럽'은 각성하기 시작하오. 게다가 커피는 인간의 신체리듬을 조절해 피곤함이라고는 모르는 기계와 싸우는 데도 큰 기여를
했지. 어떤 지배자가 커피를 마다했겠소."

―유럽의 '미니 빙하기'가 커피를 더욱 확산시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
스위스의 줌블(Zumbuhl)이라는 학자가 스위스 중부 인터라켄의 빙하 마을
그린델발트(Grindelwald)를 연구하고, 기상학자이자 문화사학자인 E 르 로이 래드리(Ladurie) 등은 꼼꼼한 연구결과를 통해 대략
1600년쯤부터 1850년대까지 '미니 빙하기'가 왔다는 결론을 내렸소. 지구 자전축 변화, 화산재로 인한 태양에너지의 유입량 감소 등이
원인이었지. 이 기간에 곡물 수확이 줄어 사람들은 배고픔과 추위를 덜어주는 음료로 커피를 애용하게 됐소. 가난한 베토벤도 아침식사로 커피 한잔을
들지 않았소."

―사실 커피는 담배나 알코올을 능가하는 중독성 물질이면서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거나 먹는 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문명사회는 거의 커피를 마시는데요, 왜일까요.

"1723년 바흐의 '커피 칸타타', 이런 대목이 있소. '오 커피여,
1000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캣 와인보다 달콤한 그것.'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 80잔을 마셨지. 1657년의 영국의 한
커피 광고는 심장병·감기·폐결핵·두통을 치료하는 만병 통치약으로 묘사했지. 인류가 커피의 부작용에 눈뜬 건 20세기에 들어서야. 월경전증후군
악화, 단기 기억 손상, 진통제 효과 경감, 불면증 등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인류의 혀는 이미 그 검은 유혹에 깊이 빠졌는데. 1674년
영국 여자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하고, 정력이 약해진다며 남자들의 커피문화를 금지해 달라는 '커피 반대 청원'을 냈었지. 2년
후에는 정부가 커피하우스를 금지하려 했었어. 당시 커피집은 '1전 대학(penny university)'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정부 씹는 법을
가르쳤으니까. 마누라들과 권력의 압력에도 살아남은 게 커피네. 중독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렵지 않겠나. 하지만 조심하게. 칼 융이 말하지 않았나.
모든 중독은 위험하다고 말이야. 그게 술이건 모르핀이건 이상(理想)이건 말이네."


☞ 카푸치노·라테 뭐가 다를까?


거품있으면 카푸치노, 우유 3분의 2 넘으면 라테


커피 전문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피 품목 중의 하나가 바로 카푸치노와 라테. 커피와 우유가 들어가는 것은 같은데, 이름과 맛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카푸치노(cappuccino)는 프란치스코회의 카푸친(Capuchin)작은형제회의 수도사 옷에서 유래한 이름. 청빈의 상징으로 세모꼴
두건이 달린 수도복 모양이 커피 잔에 솟은 거품과 닮아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 그들이 입는 브라운색 수도복이 카푸치노의 색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2개의 설이 존재한다. 오스트리아 왕가에서 만들어졌으며, 2차대전 후 에스프레소 기계가 보급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잘
만든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 3분의 1, 우유 3분의 1, 우유 거품 3분의 1의 비율로 만들어졌을 때 최적의 한 잔으로 평가받는다.


카페라테(caffe latte)는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마시는 일종의 '가족 음료'(family drink)로 포트에 끓인 커피에 거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데운' 우유를 첨가해 만들었다. 커피가 3분의 1~4분의 1, 우유가 3분의 2~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우유 비중이 높은 게
특징이다. 프랑스의 '카페오레(cafe au lait)'는 카페라테와 비슷하지만 우유를 좀 더 많이 넣고 이탈리아처럼 컵이 아니라 좀 더 커다란
'볼'에 담아 마신다. 대개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아침에 카페라테, 일터에 나가 오전 업무가 대강 끝날 때쯤 코르네토라 불리는 나비 모양의 빵과
카푸치노를 마셨지만 요즘은 시간에 관계없이 취향대로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참고문헌


The World of Caffeine:the science and culture of the world's most
popular drug, Bennett Alan 등
Honore de Balzac His Life and Writings, Mary F.
Sandars
Balzac, Frederic Lawton
The Drug Problem: a new view using the
general semantics approach, Martin H. Lev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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