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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4 16:19

이종상 화백 공부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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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도 동북아연구학회 기조강연 )




山水畵의 韓國的 樂園觀










繪畵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의 反影이다. 특히 산수화는 그 나라의 지리적 풍토나 地勢에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더욱이 天惠의 수려한 山勢와 유달리 드높고 짙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四季가 정확한 환경 속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해 온 한민족은 외래사상이 이입되기 전부터 자연물의 대상성을 높고 큰 산에 두어 神靈視해 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민족의 초기 산수화에 애니미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 儒佛仙의 사상이 移入되면서부터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風流思想이 산수화에 표현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고유한 한국적 樂園觀으로 규정지을 수 있겠는데 그 원형은 물론 陶淵明의 <桃花源記>에 접근되지 않는가 싶다. 그러나 中國的 桃花源이 지나치게 낭만적이며 상징적인 동경으로 산수화 속에 반영되고 있음에 비해, 韓國的 桃花源은 비록 환상적으로 보이더라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생활의 範疇 속에 한정되어 있는 점에서 現實逃避나 종교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이러한 발상은 超現實 세계에 대한 신비적인 동경을 현실적으로 自己救濟의 수단으로써 표상해 보려는 道敎的 인상을 풍긴다.



이 같은 農耕民的 생활 체험에 基底한 평화주의의 風流樂園觀은 老子의 <小國寡民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선 중․후기의 산수화에 나타난 도교적 神秘主義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커다란 隔差를 느낌으로써 현세적 유교로부터 의식의 屈折을 초래하게 된다. 이로써 隱逸을 自己救濟의 최선으로 삼고, 한국적 풍류사상과 隱逸思想은 산수화에서 桃源鄕을 찾게 된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적 산수화는 중국 산수화의 철저한 模寫에도 미치지 못한 채, 엉글고 성긴 형식의 外觀에 그나마 엷게 묻어있는 한민족의 性情을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無性格하였다. 이것은 당시 漫然했던 事大主義 慕華思想에 편승하여 미의 가치기준을 중국 산수화에 두고 芥子園式 중국 山勢에 埋頭沒身하는 형식주의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유독 謙齊 鄭敾(1676-1759)의 眞景山水畵만은 欣快히 사대적 植民根性을 벗어나 한민족의 얼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은 산수화의 素材나 經營位置에 나타난 한국인의 讖緯堪輿思想이다. 원래 이러한 사상적 근원은 周代로부터 체계화되어 唐 이후에 전래됐다고 하나, 그것과 관계없이 한민족들도 삼국시대에 이미 고유한 讖緯堪輿思想을 지녀왔다(<三國史記>).

鄭道傳의 堪輿說에 기초한 漢陽遷都라든지 이지함의 風水說과 鄭鑑錄의 十勝地思想 등이 현실과 이상과의 격차를 메우는 방편으로 우리들 저변에 潛在해 내려오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산수화의 전형은 山間의 古寺․古樓에서부터 쓰러져 가는 초막에 이르기까지 陽宅地相을 고려해서 그려 넣는다거나 背山得水의 地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또, 타관 명산을 客山으로 두기를 꺼려 平遠法보다는 深遠法이나 高遠法을 주로 사용했다든지, 雲靄 속에 드리워진 主峰의 좌우를 음양으로 조화시켜 청룡백호를 암시한다든지, 유실수나 竹林․松林을 울안으로 그려 넣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 등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산수화에는 ‘한’의 사상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眞理觀이 깃들어 있다. 고래로 우리 민족은 사물의 진리를 판단함에 있어 그 근본 중심을 不二性에 둔다. 이것은 한국인의 對物觀에서 오는 視方式의 특성이다. 우리가 보는 산수는 주관 쪽에서 객관적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내가 그 속에 同化되어 대상 그 자체가 곧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彼岸의 一點에 서서 수평선상에 한 개의 消失點을 고정시키고 보려는 歸納的 透視畵法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산 속에 뛰어들어 구석구석을 밟고 체험하며 산마루턱을 넘고 둘러보아가면서 끝없는 화면의 연속을 암시한다. 이것은 산 그 자체를 고정물로 보지 않고 運動體로 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움직임의 속성과 방향성을 演繹的으로 지시하는 線描形式의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산수화는 주름투성이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對物觀은 자연을 극복하려는 서구인들처럼 집안에 앉아 고정된 창틀 너머로 내다보이는 黃金比의 화면에서부터 벗어나게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컨대, 내 자신을 산 속에 동화시켜 계곡으로부터 山頂까지 오르면서 수십 개의 수직 소실점을 가질 수 있는 簇子의 형태나, 강어귀로부터  수 백리 분수령까지 걸어가면서 수평 消失點을 가지며 그려나간 卷軸圖와 屛風의 형식을 많이 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산수화를 連幅으로 길게 그려 12폭의 병풍을 만들었을 때,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그 병풍을 일직선으로 펼쳐 놓고 감상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을, 병풍이 넘어질까 봐서라든지, 혹은 주거 공간이 狹小해서라든지 아니면 國難이 잦아서 避難 갈 때 말고(簇子, 卷軸圖 등), 접어 가져가기 좋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정신유산을 거지근성으로 매도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면키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감상자도 작가와 같은 對物觀을 갖고 동일한 視方式으로 감상할 수 있는 한국인의 공통된 眞理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산수 속에 뛰어들어 자연 속에 묻혀서 그려나갔으니, 감상자도 또한 화면 속에 묻혀 천리 길을 보아 가는 視方式을 갖게 마련이며, 반드시 한 각도에서 감상해야 된다는 하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 그림에서 일정한 연속 무늬에 360도 돌아가면서 산수화를 그린 작품이 많은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동일 문화권 내의 동양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산수화는 그 지리적 풍토가 말해 주듯이 웅대장엄한 大觀山水畵風이 주종을 이루는데 반해서, 일본의 그것은 濕潤한 기후적 조건에 걸맞음 직한 南宋 馬遠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馬의 一角法 山水畵風이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면서 점차 土着化하여 島嶼民族이 지니고 있는 微官末梢的 纖弱性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비해 한국의 산수화는 莊嚴하지도, 그렇다고 徹底하게 세련되지도 못한, 어떻게 보면 無性格한 미완성 단계에 엉거주춤 끼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관찰해 보면, 한국의 산수화에는 ‘한’의 고유 사상을 바탕으로 원시적 애니미즘이 보이며 한국적 낙원관은 風流氣質을 觸媒하면서 隱逸思想을 표현케 했으며, 어느 면으로는 安逸無事主義와 形式主義로 빠지게 까지 된 것 같다. 또한 한민족의 밑바탕에 중국 한대(7 B.C.-5 A.D)로부터 연원한 예언과 경서 부연의 讖緯堪輿思想이 깔려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의 독특한 對物觀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부정적 측면에서의 사대주의 慕華思想이나 식민사관의 慕和根性은 한민족의 의타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密記','秘詞','秘錄' 으로 불리는 圖讖思想이란 미래를 예시하는 '未來記'로서 이런 민속신앙이나 사상은 합리적 세계관을 가진 서구사회는 물론, 어느 민족의 모듬살이 속에서도 행해져왔던 문화현상이다. 중국에서의  圖讖形式은 殷墟의 甲骨文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갑골문은 미래를 예견하는 일종의 神託이며, 거기서 진일보한 周易 또한 이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중국풍의 圖讖사상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는 이미 삼국시대로부터이며 고구려 말기에는 『高句麗秘記)』란 도참서圖讖書가 유행하였고 신라 말기에는 道詵이 몇 권의 地理圖讖書를 저술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원전은 전해지지 않으나 짐작컨대 지리衰旺說과 지리裨補說, 내지는 山水順逆說 등의 裨補書였을 것이다.



    하여간 오늘날 예술로 분류되어지는 순수미술의 圖像學的 근거와 도참의 그것과를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圖讖의 字意와 개념을 생각해보면, 그림'圖'자는 미래의 은밀한 豫徵(Symbol)이 개념의 밖으로 標徵(Joken)되는 기호학적 信號(Signal)로서 시각적 暗示(Suggestion)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圖'는 본래부터 符瑞의 표징으로서 기호나 표적으로 시각적 최면의  뜻을 담고 있는 데 반해 '讖'은 口述로서 은밀한 豫言의 뜻이 더 많다고 하겠다. 이러한 堪輿사상은 도상을 표현의 중심에 두고 있는 회화 전반, 특히 地形地勢를 대상으로 삼으면서 地氣와 感應하고자하는 山水畵의 造形論이 圖讖의 形局論과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와 같이 성긴 듯한 한국의 眞景山水畵에서 우리 산야의 얽히고설킨 來龍의 形局이 지닌 質朴性을 느낄 수 있으며, 實事求是로 지리적 사실성에서  自我發見을 통해 미래의 理想鄕을 借景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미술은 철저히 현실에서 출발하여 부단히 미래로 질주하는 變易의 흐름 속에서 樂園을 꿈꿔왔다. 아마도 한국의 화가들은 우리 민족이 이 땅의 風水 속에서 영원토록 삶을 영위하며 뼈를 묻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한 우리를 감싸고 있는 하늘과 땅과 바람과 물의 言語를 圖象化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萬有의 存在者가 停止態가 아닌 傾向態로서 쉼 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믿는 한국의 화가들은 우리의 산하가 자리한 自生風水를 빌미로 寬容의 미학을 구축해 갈 것이다.





                                               一 浪   李 鍾 祥

                                                  

                                                  대한민국 藝術院 회원

                                                  서울大 名譽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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