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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지상주의-일체유심조 불교-대체의학-기와 한의학 오행설> 비판
 
 
 
 
<마음지상주의>와 ‘일체유심조’라는 주문
 
개인적으로는 <유물론적 환원주의>만큼이나 <유심론적 환원주의> 또한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유물론적 환원주의와 유심론적 환원주의는 각각 <뇌지상주의>와 <마음지상주의>에도 유비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현대 뇌과학 진영에는 모든 사안들을 뇌의 생리학적 작용으로 환원시켜 설명해보려는 입장이 있는데, 이에 대해선 이미 일전에 잠시 언급한 바 있다. https://100books.kr/?no=18698 참조.
 
그런데 마찬가지로 또 다른 한 쪽 반대 진영인, 관념론적이고 유심론적인 <마음지상주의>자들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음을 말씀드린다.
 
예컨대, 불교철학의 경우에도(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마음의 절대화를 일삼는 마음지상주의의 흔적들이 보이고 있는데, 이들은 “마음이 곧 부처라고 보거나, 일체법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마음의 명칭이요,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알파요 오메가로 자리하는 경가 많다고 하겠다.( 윤원철, “마음을 가져와라”,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서울: 운주사, 2009), pp.127-195)
 

마음지상주의자들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나 혼자만의 견해가 아니며 이미 불교진영 안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비판이라는 사실을 필히 기억했으면 한다(각묵스님, “‘마음의 절대화’ 유감”, 『불교신문』(2480호) 11월29일자 글 참조). 또한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 역시 불교인들 중에는 마음을 하나님처럼 절대화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박성배, 『몸과 몸짓의 논리』(서울: 민음사, 2007), 참조)
 

특히 화엄경의 핵심사상에도 속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용어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존재의 본체를 마음에 두고 있는 언명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 같은 일체유심조를 철썩같이 믿고 여전히 주문처럼 뇌까리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마치 론다 번(Rhonda Byrne)의 대중 히트작인 『시크릿』the Secret이라는 책의 유행처럼 번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알고 보면 사회 체제 구조의 문제는 탈각된 채로 철저히 자본주의 성공 신화의 욕망에 대한 실현으로 유도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미키 맥기, <자기계발의 덫>(모요사) 참조).
 

'자기계발'이라고는 하나 세계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명한 현실 삶의 문제들은 회피한 채 인간이 지닌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와도 곧잘 맞물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마음치유라고는 하나 현실 삶의 구조적 변혁의 문제는 탈각된 채로 온전한 몸치유가 되지 못하면서 힘든 이 땅의 현실에선 되려 아편적 기능으로 이어지는 경우 역시 많다.
 
만일 <일체유심조>라는 개념이 단지 마음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적 차원이라면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만에 하나 마음에 대한 존재론적인 선차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아직까지도 이 구분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질 않은 채로 순진스럽게도 정신적인 마음 작용의 존재론적인 단독적 선차성으로서 부지불식간에 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매우 다분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불교 진영 전체가 그렇다고 보질 않으며 다만 일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언어나 문자가 갖는 파생적 효과마저 인지한다면 가급적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소통 노력 역시 필요하기에 좀 더 개선된 수정 역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대체의학>에서도 나타나는 마음지상주의
 
불교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 진영에도 마음지상주의자들의 허다한 위험성이 엿보이고 있는데, 이들은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다.

이들이 보는 “마음은 몸과 별개로 존재한다. 마음은 몸과 독립적이기 때문에 유체이탈이 가능하며 죽음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과 몸은 독립적이며 사후의 마음은 유전되고 재생된다. 진화의 주체는 마음이며, 인식의 주체 역시 뇌가 아니라 마음이다”라고까지 주장할 정도다. 강길전/이기환/홍달수 공저, 『대체의학의 이론과 실제』(서울: 가본의학, 2008), p.44-49. 그야말로 정말 서프라이즈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말그대로 뇌지상주의자들과는 또 다른 반대 진영의 극단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구체적 검증과 실험을 중요시하는 서구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같은 대체의학 분야를 비판적으로 대하거나 논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지금 대체의학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임상적으로 하나도 효과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대체의학이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잘못된 철학적 언명과 그 명제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명상이 갖는 기본적인 분명한 치유적 효과가 있다. 심지어 나는 상상치유의 물질적 효과 역시 어느정도는 긍정한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상상을 통한 치유 방법들도 일정한 효과도 있을 순 있으나, 실제 구조화된 부조리의 현실 조건들까지 바꾸기에는 그 역시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뇌에 온전한 약물 투여 치료만큼이나 마음을 가다듬으며 치유를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며, 또한 몸에 대한 물리적인 환경과 조건들을 개선하는 작업 역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반경 및 세계사회 역시 내 몸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치유는 전인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아편적 치유나 플라시보(placebo)가 아무리 일말의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것 역시 여전히 일정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지속적인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지 않는다.
 
철학사에서는 오랜 동안 물질이냐? 정신이냐? 하는 문제로 유물론과 관념론 진영이 싸워왔지만, 철학적 맥락에서 볼 때 대체의학을 포함해 이러한 마음지상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 관념론적 진영에 속하고 있다. 심지어 이상한 종교화로도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탈속화된 초월과 영성을 주장하며, 세상사에 초연한 도인들도 매우 많다.

따라서 설령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의 그리스도적 영성으로 드러나든 혹은 불교의 간화선 수행으로 드러나든 혹은 그 어떤 테라피 방법이나 심리치유 기제들과 시스템으로 표현되든 간에 우리는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관념론적 병폐와 아편적 특성으로서의 기질들까지 우리는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도 있을 걸로 본다.

겉으로는 고통에 대한 치유를 표방하나 결국은 그러한 치유 방법 그 자체에 대한 중독으로 넘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념적 종교를 계속적으로 끊지 못하거나 테라피 자체에 대한 중독 현상들 역시 이에 속한다. 내가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실상 몸의 고통 자체를 온전히 해결하고 있진 않은 채로 그저 수렁에만 계속적으로 빠지도록 할 뿐이기 때문이다.
 
기(氣)의 실체와 오행설을 현대과학적으로 밝힌다?

언젠가 필자는 우연히 실제 기공술 강의 수업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한 번은 그 기공술 강사가 포즈를 취하며 손으로 이리저리 휘젓더니 지금 강원도의 신선한 공기를 자신이 이 강의실에 끌어왔다면서 이것이 느껴지지 않냐고 말하길래, 나로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자, 기가 아직 부족하거나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얘길 듣고 조금 황당스럽기도 했다. 도대체 그것이 진짜 강원도 자락의 공기인지 그리고 또 내가 그렇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면서 그 강사는 흔히 뉴에이저들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한 양자물리학을 들먹이면서, 지금 기의 변화로 강원도의 신선한 공기를 이곳 강의실에 들여온 것은 매우 과학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구라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을 참석하다가 도무지 황당스런 주장들에 결국은 나왔지만, 어이없게도 정말로 이를 믿고 체험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나와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솔직히 나 자신은 일부 동양의학 연구가들이 시도하는 것처럼 동양형이상학적인 개념의 기(氣)를 실증적인 과학으로 밝히겠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본인은 매우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다. 사실은 왜냐하면 그럴 필요조차도 없는 게 형이상학과 자연과학은 결코 일대일 대응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氣)는 전적으로 고대 동양인들이 생각해낸 형이상학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철학의 기 개념은 고대 동양인들이 광범위한 일반성에 대한 사유의 탐험에서 직관적 사유로서 붙잡은 궁극적 가정으로서의 철학적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수용하는 이론은 인류가 도달한 측정 범위 내에서의 일반성을 지향한 것이기에 실은 학문의 범주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한때 봉한학설 해프닝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듯이 마치 기(氣)를 과학적으로 발견했다고 떠들어댄다면 이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처사일 뿐이다.

기(氣)라는 개념을 일종의 유비적 의미로선 받아들일 수 있으나 과학적인 측정 장치와 추론을 통해 발견된 그 무엇을 가리키며 이를 곧 기(氣)라고 선언한다면 이는 동양인들 안에 깃든 서양과학에 대한 콤플렉스 반응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철학은 과학을 통해 예증되거나 수정되어질 뿐이지 그 자체로 일대일 대응 관계가 성립되진 않는다.

동양철학의 위대함은 일찍이 고대로부터 예리하게 간파했던 그 직관적인 통찰력에 있다. 고대 동양인들은 존재의 생성 소멸과 사물의 형성이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변화 과정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매우 일찍부터 직관적으로 간파했던 것이다.

또한 동양의 한의학 분야에선 거의 교리 수준의 대전제로도 작동되는 음양오행(陰陽五行說), 특히 오행론(五行論)에 대해서도 (그 오행의 본뜻이 실제적인 의미든 기능적 의미든 간에) 다소 미심쩍게 보는 입장에 서 있으며, 실제로 어떤 이는 동양의 오행 개념을 현재 이론물리학에서 말하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의 다섯 유형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경숙 지음, 『기의 여행』(서울: 구름, 2009) 참조.)
 
아..동양철학의 오행설이 현대 물리학의 초끈 이론의 다섯 유형과 연관된 것이었다니..정말 새로운 부활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놀라운 끼워맞추기 발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오행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4행, 8행, 9행, 12행도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동양철학자들 중에서도 내가 알기에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 선생님도 오행설을 비판한 것으로 안다. 결국 이러한 오행설을 현대의 몸 이해에 있어 교리적인 대전제를 삼기에는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이 때문인지 서양의학을 전공한 연구자들 중에는 한의학은 결코 과학이 아니라고까지 말하며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입장을 표방하기도 한다.

물론 서양의학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대체의학이든 동양의학이든 그 연구 자체에 대한 필요성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내가 볼 때 기존의 한의학 전제들은 그 방법론적 토대부터 다시금 살펴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알다시피 수천 년 전에 쓴 고대 중국의 <황제내경>은 지금도 한의학 진영에선 거의 성경급으로 취급할 정도인데, 이제는 정말 새롭게 업그레이드가 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자는 4체질론, 8체질론 등등 이러한 체질론을 오히려 업그레이드로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별로 동의하고 있진 않다. 참고로 소설가 김태연은 한의학 비판 장편소설인 ‘반인간’에서 한의학의 공상과 허구를 비판한 바도 있다.
 
생각건대, <유물론적 환원주의>나 <유심론적 환원주의>나 어차피 양 극단은 균형을 잃은 것이다. 인간 이해에 있어 <뇌지상주의>든 <마음지상주의>든 균형을 잃은 한 쪽 극단으로서의 이해는 아무래도 매우 오류와 병폐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며, 가능하면 인간 이해에 대한 파편화된 영역들을 일관된 통합으로서 엮어내는 연구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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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두 2013.05.10 18:07
    '지상주의'를 경계하는 지적은 근본적으로는 옳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체유심조와 같은 사상이 제기된 것은 인간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매달려 물질지상주의로 치달리는 것에 대하여 반대편 추에 마음의 기능을 제시하여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일체유심조의 의미를 잘 못하면, 밖에 있는 물건 자체를 마음으로 만든다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니고,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개입해서, 내가 전에 했던 경험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의도에 의해서 내가 해석한 대로 본다는 의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이 내 의식을 왜곡한다는 해석이 더 가까운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본래의 의미를 잊고, 아주 멀리 가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마음만으로 아주 신기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미선님의 말씀대로 반대편 방향인 마음지상주의로 마음만을 강조하게 되면 본래의 의미와는 반대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나 유교가 그보다 더 상위차원으로 근본적으로 제시하는 "중도" "중용" 은 자연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인간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메세지인 것으로 봅니다.

    즉, 동양 종교와 철학에서 마음, 기 등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보통 눈, 피부 등 감각으로 느끼는 것에 끌려서 내면의 것을 보기는 어려운 점 때문에, 내면의 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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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두 2013.05.10 18:07
    저도 공부가 별로 없어서 잘 모르지만,
    여기서 '내 의식'은 내가 인식하는 것, 인식으로 떠오르는 것을 말할 것이고요, '내 마음'은 감각으로 받아드린 것과 내가 생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기억(불교에서는 '업')과 '나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화심리학에서 보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 속에도 유전자 속에 새겨진 우리 조상의 의지가 반영된다는 얘기를 합니다.
    불교의 연기론에도 내용이 단순하지 않고, 마음에 대한 많은 학설이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종교나 일반 사회활동이나 하나의 양태를 보이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것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해도 학생들 각자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다른 것처럼 다양한 모습일 것입니다.
    어떤 종교, 어떤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그 종교가 또는 그 단체가 지향하는 대체적으로 정통적인 견해와 주장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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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두 2013.05.10 18:07
    "그렇기에 제 입장에서는 마음이라는 용어는 워낙 외연이 넓다고 생각되며, 일종의 모든 생명체가 지닌 정신 작용들을 통틀어서 마음 작용으로 볼 뿐입니다."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마음이라는 용어는 거의 비과학 용어처럼 일반화되었는데, 일상적으로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감각으로 부터 의식의 출현까지를 심, 의, 식(心, 意, 識), 의식(意識)으로 단계를 나누어 보는데, 이렇게 보면 마음(心)은 무의식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타락의 수순을 받은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전문용어나 고급스러운 용어로 쓰이다가 일반화, 일상화되면 격이 추락하지요.

    우리가 '놈'이라고 하면 욕으로 들리는데, 원래는 보통의 지칭(者)이었던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운전하는 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운전하는 놈'했다가는 큰 일 나겠지요.^ ^

    마음(心)이 원래는 의식과는 구별되어 사용되는 과학적인 용어였는데, 불교를 많이 공부했다는 과학자도 마음(心)은 과학용어가 아니고, 의식(意識)이라고 해야 과학용어라고 합니다. ^ ^

    미선님이 지적한 것처럼, 마음은 뇌의 진화과정에서도 초기에 나타난 작용이고,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의식작용일 것 같습니다.
    심, 의, 식, 의식으로 단계적으로 고차원화 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일체유심조"라는 작용은 우리가 우리 밖에 있는 객관적인 동일한 세계에 산다기 보다, 자신의 뇌로 만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산다는 의미인데,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면, 외골수라고 칭하는 자기만의 골방에서 살 수도 있고,
    독창성이라고 하는 창의창조성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세계까지, 다양한 색채의 세계에 사는 것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모두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일테지요. ^ ^
  • ?
    이기두 2013.05.10 18:07
    어느 순간에 갑자기,
    미선님이 '마음지상주의자'같은 모습으로 변하시네요.

    마음은 없다.
    여기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을 있다고 하면,
    생물학 모임에서 본 수잔 블랙머어의 책 5장, Self에서 본
    'egoist'가 될 것이니까요.

    실체는 없다,
    관계성만이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소리는 없다,-- 우리가 소리를 든는 순간에
    소리가 우리에게 인식된다.
    우리가 음파를 인식하는 순간에 음파가 소리가 된다.
    인식작용만 존재한다.
    그 인식작용은 우리가 '몸'으로 있는 동안만 잠시 있다가
    몸의 요소가 흩어지면, 그 역시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혼이라는 실체는 없다.

    마음은 우리가 몸을 만드는 순간에 인식의 주체로 형성한
    '관계성'인 거죠.
    관계성이 사라지면, 마음도 없는 것,
    '나', '나라고 인식하는 Self'도 없는 것,

    이것을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지만,
    "......."
  • ?
    이기두 2013.05.10 18:07
    위의 미선님의 질문하신 '구체적인 출처'는 유식(唯識)불교를 알아 보시면, 심, 의 식에 대한 입장을 보실 것으로, 추천합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언밀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물리학적이냐, 화학적이냐는 것으로서, 뇌과학이나 다른 과학의 어떤 개념에 대응하는 사상도 물리학적인, 화학적인, 과학적인 개념으로 말한 것입니다.

    저로서는 동양사상을 형이상학의 범주에 넣는 것은 반대합니다.
    서양에서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것은 플라톤이 이상세계라는 관념론을 말하므로서, 생긴 것인데, 동양사상은 사실과 법칙에 관한 것을 먼저 말하고, 사실과 법칙에 의해서 당위론을 말하는 전통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사실과는 관계없는 관념의 학문에 합쳐서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동양에서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사상이 현대과학에 의해서 가치가 발견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사상에 대해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관점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동양의 종교사상을 형이상학이라는 범주에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먼저 신학을 형이상학속에 넣는지 부터 묻겠습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불교를 과학사상과 관련지은 것은 동양의 종교 경전은 앞부분(서론)에 사실과 법칙을 먼저 밝히고 뒤에 종교적인 처방, 당위성 등 종교적인 메세지를 밝히는 체계로 되어 있는데, 앞의 사실에 관한 부분은 과학사상에 대응시켜도 된다고 봅니다.
    뒤의 종교적인 사상은 당연히 과학과는 다른 종교의 분야지요.
    당연히 철학과는 다른 분야인 것이 분명합니다.

    서양의 형이상학과 대응되는 부분도 앞부분(서론)에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유식불교를 형이상학에 포함시키는 것는 어불성설인 것이 분명합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그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종교에 해당되고, 과학사상에 해당되는 부분은 토론에서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개념상의 교집합이 없다보니, 헛손질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종교나 사상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 상대의 입장을 먼저 명확히 이해하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좀더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요즘 과학공부쪽으로 집중하다 보니, 종교쪽으로는 공부가 부족합니다.
    유식불교쪽은 세친이라는 분이 완성했다고 합니다.
    조계종에서 발행한 책 중에서, 세친이 저자로 되어 있든지, 세친의 론을 설명하는 책 중에서 읽으시기 좋은 책을 고르시든지, 또는 인터넷 상에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용어라고 한 뜻은 '마음'이라는 용어를 뭉뚱그려 포괄적인 용어로 쓰지 않고, 과정을 나누어서 썻다는 것입니다.
    즉, 감각기관(안, 이, 비, 설, 신) 에서 받아드린 감각(전5식-색, 성, 향, 미, 촉, 법)을 저장하는 단계를 心이라 하고, 저장된것을 인출해서 WHAT을 판단하는 1단계를 意라고 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識라고 하고, 이 과정을 총괄하는 것을 意識(제 8식)이라고 하고, 이것으로 우리가 Self로 인식한다고 설명하고 있은 것을 봅니다.
    또 각단계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 다양한 학설도 등장합니다.
    즉 이렇게 나누어 자세히 살펴 보는 자체를 과학적인 과정이라고 보고, 그래서 과학적인 용어로 사용했다고 한 것입니다.

    설명이 부족하면, 위의 자료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불교가 과학이다 또는 철학이다로 말하는 것과 붓다께서, 또는 불교에서 메세지를 설명하는 중에 과학적인 사실이나, 법칙을 많이 밝히고 있고, 또는 인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를 말일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고, 책이나 자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 ?
    이기두 2013.05.10 18:07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종교는 어떤 학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

    종교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대응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종교라고 하는 것.

    과학과도 모순없이 대화할 수 있고,

    철학과도 모순없이 대화할 수 있어야 종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과학이 된다든지,

    종교가 철학이 된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과정이 격렬한 부분도 있었지만,

    유익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참고자료 추천 고맙습니다.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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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1 한 여름 오후의 영성스터디와 여흥을 함께! ( 한국정신과학학회) 김선숙 2013.07.11 1583
4080 서호주 영상 몇개 4 문경수 2013.07.09 1702
4079 한국 대학들의 학문쳬계는 낡은 19세기 틀임 -고쳐져야 ! 1 file 이정모 2013.06.26 1839
4078 미선님의 글에 대한 의문 5 이기두 2013.06.19 1864
4077 김원수교수 강연과 TEA TIME- 한국정신과학학회 6얼 월례회 file 김선숙 2013.06.11 1639
4076 뇌과학에게 인문학을 말하다 7 미선 2013.06.05 2103
4075 서호주 탐사프로그램 2 이갑주 2013.06.05 2090
4074 (사)한국정신과학학회 6월 5일 공부방 모임 file 김선숙 2013.06.04 1669
4073 소리에 대한 생각 2 이기두 2013.05.30 1805
4072 연료굴뚝에 의해 성장하는 은하에 관한 연구--<출처>KISTI 미래안 이기두 2013.05.28 1580
4071 [화이트헤드 철학 기초 입문 강좌-총10회] 5월20일(월) 2 미선 2013.05.14 4958
» 마음지상주의-일체유심조 불교-대체의학-기와 한의학 오행설 비판 11 미선 2013.05.10 3530
4069 (사)한국정신과학학회/한국심신치유학회 학술대회 file 김선숙 2013.05.10 2151
4068 261차백북스 선정도서 "인류의 발자국" 고원용 2013.05.08 1994
4067 5월11일(토)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춘계 학술대회 발표 1 file 미선 2013.05.03 1815
4066 [참여연대 5.18기념특강]상처 입은 치유자, 5월의 사람들 느티나무지기 2013.05.03 1580
4065 [현장스케치] 작가 박범신과 함께 내고향 논산길 걷기 4 조수윤 2013.05.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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