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1.02.03 05:59

국어와 창작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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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고시에도 직장에도 매달리지 않았다. 남들이 알아주지도않는 국어사전 편찬에 30여년을 꼬박 바친 사람. 재야 한글학자인 남영신 한국어문연구소장(49).



그는 87년 「우리말 분류사전」을 펴내 국어학계의 갈채를 받았었다. 우리 토박이말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그 활용법을 담은 색다른 사전이었다. 보통 국어사전과 달리 우리말을 종류별로 나누고 다시 모양 느낌 소리 등으로 세분해 수록한 사전이다. 단어를 몰라도 대강의 내용만으로 우리말을 찾아갈 수 있는, 그야말로 국어사전의 신기원을 마련한 작품이었다.





그의 열정은 8년 뒤「우리말 용례사전」을 만들어냈다. 고전에서부터 근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우리 문학작품에서 가장 잘 쓰인 문장과 표현을 뽑아 수록한 사전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또하나의 역작을 냈다. 「한 국어사전」. 『이 사전 한권이면 일반인이 우리말을 구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각 어휘에 뜻뿐만 아니라 맞춤법 표준어 발음 용례 등 언어생활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아놓은 사전이다.






국어사전의 개념을 완전히뒤집은 그의 30년 「오기」.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 그야 너무당연하죠.하지만 사전이 한권 한권 나올 때마다 아쉬움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67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시절. 법전이나 판결문에 일본식 법률용어가 남용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곧바로 국어운동학생회를결성했고 우리 토박이말을 수집해 나갔다. 법관에의 꿈은 자연스럽게사라졌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죄송스런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그리고 청춘의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국문과로 옮기고도 싶었고 동양철학도 하고 싶었다. 방황이었다. 그래서 4학년때엔아예 머리를 깎고 해인사로 들어갔다. 성철 스님 밑에서 마음을 다스리길 6개월. 혼돈은 새로운 빛을 가져오는 것인가. 우리말에 인생을걸어야겠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언어가 주체적이지 못하면 우리 민족의 독립도, 민족문화 창달도 불가능합니다. 정치 경제의 근원도 바로우리말이죠』 이 신념 하나로 토박이말 수집에 본격 돌입했다. 남산중앙도서관을 드나들며 온갖 고서적을 모두 뒤져 숱한 토박이말을 발굴해냈다. 80년무렵 드디어 사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계속 자료를 수집하고 수작업으로 우리말 카드를 만들어 나갔지만 할 일은점점 늘어만 갔 가족 생계는 점점 쪼들어가고. 그때 은인이 나타났다. 당시 뿌리깊은나무 사장이었던 고 한창기 선생. 『곧 기계로국어사전을 만들 때가 올거니까 컴퓨터를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뿌리깊은나무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사전을 만들어낼지 궁금했다. 『사전 제작은 이번으로 끝입니다. 진짜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국어개혁을 통한 사회개혁이다. 언어는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따라서 언어를혁명해야만 사회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말호칭의 표준화. 『아버지를 부르는데도 호칭이 너무나 제각각입니다. 배우느라 찾아보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합니다. 결국 사회의 낭비죠』 이처럼 복잡한 호칭, 혼돈스런 언어생활은 곧 권위적 형식적 언어생활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 전반의 권위와 형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30년만에 새로운 길 앞에 서있는 남소장. 여전히 고독하겠지만 그길 역시 「우리말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는 결코 쉽지 않은 한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셈이다.








남영신 선생님 글


우리 작가들은 지금 최고의 표현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그 자유는 자신들만 즐길 수 있는데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머리를 가진 독자들에게는 고통과 분노를 주는 자유이다.



모국어를 아무렇게나 사용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는 분명히 세계 어느 나라의 작가에게도 주어진 바가 없는 자유임이 분명하다. 왜 우리 작가에게 이런 자유가 주어졌을까? 그것은 우리 작가들이 모국어에 대한 무식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글을 쓰는 관행을 통해서 작가들 스스로 쟁취한 자유이다. 우리 작가들이 구가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곳에 몇 소개한다.





* 황만근을 낳은 그의 어머니는 집 안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인데 젊다. 그리고 아주 곱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있으면, 그런 경우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보기 어렵다. 한 사람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방안에 있고 한 사람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밖에 있으니 말이다. 모자간이 아니라 오누이간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물론 황만근이 오빠로 보인다.(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 밀려 있던 일을 대충 해치우고 나니, 그날은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다. 스님은 다비의 불길 속에 모든 인연을 떨치고 갈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면, 열반이야말로 인연의 본체가 아닐 것인가, 나는 잠깐 어림해보았다.(윤후명, '달의 향기'에서)



* 넓은 하늘밑에 하루의 노동에 노곤해진 다리를 뻗고 부엌에서 새오나오는 생선 굽는 냄새를 맡는다. 왕성한 기능의 위. 재촉을 하면 어머니는 어린애 같다고 꾸중을 한다. 찬란한 꽃밭 매미노래와 새소리. 이것이 곧 인간의 삶. 생명을 받고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가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조그만 권리.(선우휘, '불꽃'에서)



우리 작가들은 이렇게 마구 글을 쓴다. 제 멋에 겨워서.





2004. 11. 5 남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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