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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2 20:40

공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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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중앙일보 허의도 편집장


서울대 소광섭 교수 팀은 최근 신비의 경혈, 경락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북한 김봉한이 봉한학설에서 말하는 '산알'입니다. 왜 무명의 독학 전통의학도 공동철이 그리워지는지요.




경혈(經穴)과 경락(經絡) 이야기를 하죠. 2004년 7월초 서울대 물리학과 소광섭 교수는 신비의 경혈, 경락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좀 전문적으로 말하면 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가 경혈, 그 자극을 온몸의 장기에 전달하는 통로가 경락입니다.


흰쥐의 생체조직에서 우연히 발견한 봉오리 모양의 것이라고 합니다. 너비는 0.5∼1mm, 관의 지름은 머리카락 절반 두께인 5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이라네요. 경혈과 경락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임에 분명합니다.


사실 관련 논문을 세계 최초로 발표한 사람은 북한 학자 김봉한입니다. 팀에서 그 사실까지 함께 공개했더군요. ‘봉한학설’에 따르면 온몸 곳곳에 경혈(봉한소체)과 경락(봉한관)이 그물망을 이루며 연결돼 있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소 교수 및 약리학 수의학 광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 12명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봉한학설에서는 살아움직이는 봉오리 안 핵 모양의 알갱이들을 살아있는 알이라 해서 ‘산알’이라 불렀습니다. 그 역할은 상처 부위의 손상된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번 연구팀의 성과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참으로 생경한 이름 김봉한일 터입니다. 그는 1941년 경성제국대 의학부를 나와 경성여자 의과전문대(지금의 고려대 의대 전신) 강사생활을 하다 한국동란 때 월북(또는 납북)했습니다. 이후 그는 평양의학대학 생물학과 강좌장까지 지내며 경락 연구에 몰두했고 1965년 4월 '생명유기체의 자기 경신에 대한 학설'을 제창한 이후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울분으로 고층건물에서 투신자살했다, 아오지탄광에 끌려갔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등 진위를 알길 없는 소문만 나돌 뿐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오늘 요절한 의학연구가 공동철씨를 말하고 싶어 꽤 긴 도입의 글을 썼습니다. 2001년 벽두 전통 의학연구가 겸 저술가 공동철씨가 집필실 의자에 앉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이 뒤늦게 발견됐는다는 연락을 받았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냉기 가득한 방안에서 글을 쓰다 영양실조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사망진단을 맡은 의사 말이었습니다. 지인 몇몇이 달려가 장례를 치러줬습니다.


공동철...그가 우리 곁을 떠나기 얼마 전 가을, 단풍 색이 절정인 북한산 능선의 오가는 길에서 만나 바위에 걸터 앉아 저와 잠시 말을 나누던 게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동행한 사람은 뜻을 같이하는 전통 의학도라고 했구요. 마흔다섯의 짧은 평생을 우리 전통의학, 특히 세계적인 경락 연구가인 북한의 김봉한을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그였습니다.


그는 김봉한이라는 인물을 한국 사회 처음 소개한 주인공입니다. 김봉한-.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경락의 실체를 생체학적으로 규명, 세계 의학계를 놀라게 한 북한 학자였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1950년대말부터 경락 연구에 투신한 이래 1961~65년 발표한 5편의 논문을 통해 서양의학이 '반쪽'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이중 제 4논문 '산알 이론'(산알은'살아있는 알'의 우리말)과 마지막 논문' 혈구의 봉한산알, 세 포환'은 생명체의 최소단위가 세포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고 산알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즉 새로 발견된 생체구성의 최소 단위 산알은 경락(봉한관으로 명명됨)속에서 서로 융합해 세포 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다시 산알로 분열돼 경락으로 되돌아오는 역동적 운동을 거듭한다는 것이죠. 결국 세포는 산알운동의 과도기적 존재에 불과한 셈이 됩니다.


그가 개체발생 실험을 통해 발견한 봉한관은 혈관, 임파선과는 다른 제 3의 맥관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전도도가 높고 내부는 DNA, RNA등 생체 활성 물질로 채워져 있는 형태입니다. 특히 그것은 동양 전통의학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방대해 신체표피, 내장, 중추신경, 혈관 등 거의 모든 부분에 분포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공동철이 김봉한의 '수제자'가 된 인연 또한 각별합니다. 출판사 정신세계사에서 기획위원으로 일하며 전통사상 공부에 빠져 있던 그는 1990년 가을 무렵 미국의 의학 전문서적 <기(氣)의학>(Vibrational Medicine)을 검토하다가 ‘Kim Bong Han’ 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게 운명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책은 제도권 의학에서는 수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민간에 널리 통용되는 것들을 집대성한 서적이었습니다. 침구술은 물론 척추교정법 등과 함께 ‘경락의 객관적 실체 발견’에 대한 내용이 게재돼 있었죠.

정작 공동철에게 충격으로 다가선 것은 방사선을 이용해 토끼 등 실험동물을 통해 경락의 실재를 실험했다는 것이 북한 과학자 김봉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김봉한 추적은 시작됐습니다.

관련 자료와 서적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북한을 방문하기란 애초 난망한 일이었고 그나마 복한에서조차 그 실증기록이 다 폐기된 판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 공백을 메꾸는 방법은 탈북자 중 의학을 전공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1992년 통일원 북한자료실이 개방되는 것을 계기로 그는 아예 거기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 당시 찾은 <경락의 대발견>이라는 책은 공동철이 ‘봉한학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김봉한과 서울대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동창생인 한격부 박사를 만나 그의 삶과 학문적 태도를 전해 들었습니다. 

잠시 고 공동철씨의 분석을 옮겨보죠. "김봉한팀은 병아리 발생 실험에서 다른 어떤 조직, 기관보다 봉한관이 먼저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조직세포의 세포핵에까지 다 닿아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건축물의 기본 골조와도 같다."


당시 봉한학설은 러시아, 중국, 동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 서유럽에까지 알려져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세포는 세포에서만 생긴다'(독일 생물학자 루돌프 피르호, 1840년)는 현대 생물학의 기본명제가 뒤집히는 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3년 중앙정보부의 극비 지시로 극소수 한의학자들이 봉한학설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당시 남북한간 체제경쟁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이 내놓은 세계적 의학 성과를 공개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시 공동철씨의 말-. "반도체가 한국의 산업근간이 되고 있다는 판단은 오산이다.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는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봉한학설을 완벽하게 복원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유한 세계 유일의 원천기술. 의료비 지출이 각국 평균 국민총생산의 1%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외화획득은 거의 천문학적 규모일 것이다."


그런데 1967년 이후 봉한학설은 갑작스레 꼬리를 감췄습니다. 인체시험의 제약을 극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대 포장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갑산파 숙청과정에서 당시 권력 서열 4위였던 박금철의 제거와 함께 김 교수도 희생됐다는 설이 유력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계적 학문 성과가 정치적 이유로 폐기되고 말았다는 얘기가 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공동철은 봉한학설을 한국의 역사 이래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북한에선 정치적 사건으로 김봉한이 숙청된 후 관련 성과가 완전 폐기됐지만 지금에라도 ‘봉한학설’을 원천기술로 삼아 세계 의학의 중심으로 발둗움해야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전북대 수의학과 한 학생이 <김봉한>을 본 후, 동물실험을 통해 경락으로 추정 되는 거미줄조직을 발견했다는 낭보를 공씨에게 전해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더 확고히해 갔습니다. 또 원주의대 생화학과 교수로부터 “너무 놀랍다. 끝까지 파해져야 한다”는 격려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공동철의 질곡의 어린 날 얘기를 여기서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역경을 딛고 공부해 서울대 출신의 전기공학도로 대기업에서 촉망받는 기술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사표를 낸 후 그는 자신의 병을 스스로 지료하기 위해 전통의학의 마당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영문 학술지에서 ‘김봉한’이란 이름 석자를 만나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거죠.


그가 봉한학설을 처음 소개한 것은 1992년. 서방의 연구자료와 청진의대 출신 귀순자 김만철씨, 그리고 중국 옌볜(延邊)의 전통의학 연구자들을 통해 불완전하나마 김봉한과 그 학설을 부분 복원하는데 성공했구요. "공씨는 이제 봉한학설을 남한이 꽃피울 의무가 있다고 판단, 가칭 통일의학연구소 설립을 주장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 절망을 이기지 못해 그는 <소설 김봉한>을 썼습니다. '북한이 낳은 세계적인 의학자 김봉한이 한국에 오다!' 소설에서 김봉한은 한국을 찾아 옵니다. 그의 생환은 한반도의 번영과 통일을 기약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동양 전통의학의 기본개념은 몸거죽에 나타난 오장육부의 자리를 의미하는 경락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서양 의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경험적, 비과학적, 심지어 미신수준의 학문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공동철이 오랜 망각의 터널을 거슬러 어렵사리 들춰낸 한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의 전망을 읽게 합니다.


다시 작가의 말입니다. "소설적 완성도보다 김봉한에 대한 개인적 열망이 앞서 있음을 안다. 실제 북한 내부에서 김봉한 연구자료가 전면 폐기되지 않고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떤 경로로든 더 늦기 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연구업적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답답한 것은 기존 의학계가 아무 말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동철은 소리 없이 찾아온 죽음에 끌려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몇 차례 북한 방문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반려 당한 채 실의에 빠져 있어면서도 귀순 탈북자 중 의학을 전공한 사람을 만나 김봉한의 실체를 찾는데 몰두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병마와 싸우면서 집필과 방송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의학과 병원의 문제점을 절실히 깨닫고 스스로 의학과 인체과학을 연구하여 마침내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나갔습니다. 그가 남긴 저술은 번역서 <생명과 전기(The Body Electric)>에 이어 창작집 <소설 김봉한 1,2> <한약은 죽었다> <우리시대의 한의학> <리승기> <환자도 죽고 의사도 죽는다> 등입니다.

지금 어디에도 공동철이라는 이름 석자는 없습니다. 산알의 발견 성과가 터져나오는데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는 듯합니다. 세상의 아웃 사이더-. 홀로 김봉한을 찾아내고 그러다 봉한학설에 빠진 남자 공동철은 글자 그대로 우리 의학계의 아웃 사이더였습니다.


쓸쓸한 길을 건너 새로 자리한 저승에서 김봉한을 만나 미처 매듭하지 못한 이론의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자고 떠나간 길 아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다시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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