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산 시 4편-23일 읽을 시

by 이강산 posted Mar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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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북스>를 뒤늦게 알게 되었고, 어느 분이 귀뜸해주신 덕으로 이 글까지 쓰게 됩니다.

23일(화)에 저의 졸시집 <물속의 발자국>과 함께 회원님들과 읽을 시 4편을 올려드립니다.
(적당한 창을 몰라 이곳에 올립니다.)

4편의 시 작품은 최근 문예지 발표작으로, 저의 삶과 시세계를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옮겨 놓습니다.
행사일에 복사본을 드리겠지만 미리 읽고 오신 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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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에 새발자국이 파묻혔어요



발자국 떠내려간 줄 새는 모를 테지요



물속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간 것 못 보았지요



비를 털며, 못 본 척 모르는 척



먼 데 하늘만 올려다보겠지요






(『시로 여는 세상』/ 2009 겨울호 발표)






저수지






김치찌개 냄비에서 고기가 또 낚이는 것이다



밥그릇은 어언 밑바닥이 들여다보이는데



둘이나 셋쯤 끝날 줄 알고 푹, 푹 숟가락질 했는데



냄비 기슭에서조차 돼지비늘이 튀는 것이다



물속이, 주인 여자가 두어 길 저수지여서



진흙에 빠진 듯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이다







(『시로 여는 세상』/ 2009 겨울호 발표)




 

호박죽







찬 밥 한 술 떠먹고 가을볕 쬐겠다며 계룡산 골짜기 상신리에 간다


 산그늘도 허수아비도 폐가 장독대도 살 부러진 우산도 단풍이다 퍼질 대로 퍼진 배추 엉덩이도 단풍이다



단풍인 척, 단풍인 척 흔들리다 돌아오니 아버지는 막내 손자의 토끼가면을 거꾸로 쓴다


턱밑으로 귀가 쫑긋, 선다



아, 


위아래를 몰라보는 토끼의 눈도 단풍이다



가면의 고무줄이 간지러웠나보다
  빨간 색 손잡이 귀이개를 찾지 못해 늙은 아내에게 혼쭐이 난 토끼



빨간 색이 대수냐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토끼 눈에 그릇그릇 넘쳐나는 호박죽
  내가 어제 죽집 다녀와 쌓아둔 토끼 아내의 호박죽


상신리 은행잎마냥 누우런 단풍이다





(『시에』2009 겨울호 발표)




  첫눈







호수는 물뿐이어서 눈물 나더라



모과나무 아래 모과뿐이어서 눈물 나더라



빙어장수 안 씨, 여름내 무사했는가



폐가 홀아비 김 형은 겨울을 어찌 견디려는가



수중엔 까치밥 한 그릇,



울며 집 나와 모자를 푹 눌러써도



피할 수 없는 눈뿐이어서 눈물 나더라






(『정신과 표현』2010년 신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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