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과학 공부 2

by 문건민 posted Jan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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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의 생각, 감정, 욕구- 그 모든 것을 담은 분자, 단백질




나는 고민한다. 그리고 누구나 고민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시냅스와 자아>를 쓴 세계적으로 저명한 뇌과학자 조지프 르두의 표현을 빌리면,


“퍼스낼러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아, 즉 ‘당신임’의 본질은 당신의 뇌 안에 들어 있는 뉴런들 사이의 상호연결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냅스라 부르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접합부는 뇌에서 정보의 흐름과 저장이 일어나는 주 통로다. 뇌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뉴런들 사이의 시냅스전달과, 과거에 시냅스들을 거쳐 간 암호화된 정보의 소환을 통해 수행된다. 뇌기능에서 시냅스전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자아는 곧 시냅스다’라는 말은 사실상 자명한 이치다. 그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박문호 박사님의 ‘그것밖에 없다’로 풀면 ‘신경세포와 시냅스, 그것밖에 없다’ 가 된다.




데카르트 식으로 표현한다면


“ 나의 시냅스막에 단백질 분자가 박혀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말할 수 있을까.




2. 박문호 박사님의 ‘특별한 뇌과학 강연’ 시작




  박문호 박사님의 4회에 걸친 뇌과학 강연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자아와 퍼스낼러티의 뇌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우리의 자아를 이루는 기억들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까? 의식이란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풀어보지 못한 뇌과학의 중요 주제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지난 주 토요일(1월 23일), 드디어 뇌과학 강연이 시작되는 날이구나 하고 아침부터 설레었다. 남편과 아이들 점심 차려주고, 혹시나 같이 따라나선다고 떼쓰진 않을까 하여 카스테라와 딸기요구르트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상 위에 풀어놓고선 나는 지하철 역으로 뛰었다.




  서둘렀건만 벌써 강의시작 10분전. 강의실 열기는 대단했다. 벌써 많은 분들이 자리잡고 앉아서 기대에 찬 얼굴로 강의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 수녀님도 스님도 오셔서 함께 강의듣는 자리, 화학전공자부터 법학전공자까지 청중의 출신도 다양하다.


  대구, 강릉, 부산 등 멀리서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오신 분들도 있었다.  강의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맨 뒷자리까지 꽉 메워지고 조금 더 늦게 오신 분들은 앞쪽 통로에 의자를 갖다놓고 강의를 듣는 풍경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김태한 부사장님은 강의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고 적극적인 자세로 들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의의 첫 슬라이드는 ACGT(DNA를 구성하는 네가지의 염기) 문자들로 꽉 채워진 화면으로 시작되었다. 박사님이 질문을 던지신다. “이 문자들과 생명의 현상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보통은 DNA에서 시작해서 단백질의 형성과정 순서로 풀어가는데 박사님은 단백질에서부터 아미노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미노산의 기본구조를 밝히고 그 변형을 통해 우리 뇌의 주요 신경전달물질이 화학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까지 쭉 풀어내는 색다른 방법으로 강의를 하셨다.




  유전자란 무엇인가.  (이것은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유전자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DNA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연결이므로 단백질을 만든다는 것은 아미노산을 지정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인간의 유전자는 대략 2만 5천개인데 벼의 유전자는 5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한해살이 식물인 벼보다 인간의 유전자 개수가 훨씬 적은데도 왜 벼는 달에 못 가고 인간은 달에 갈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는가, 그 비밀은 무엇인가. 인간 유전자에서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부분은 1.5%밖에 되지 않으며  7-80%를 차지하는 인트론과 20%정도의 전사조절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점이 최근 게노믹스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인간의 단백질은 multifunctional  하고 팀웍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인간의 경우 어떤 단백질이 언제, 어디서 발현되는가를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핵심이구나! )




 박문호 박사님께서는 브레인 공부를 위해서는 게노믹스(유전체학)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신다.



  왜? 
왜 브레인 공부를 하는데 유전체학을 공부해야하지?




-브레인의 활동은 신경세포들 사이의 교류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경세포들 간에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은?


 그야 신경세포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겠지.




-신경세포들끼리는 세포막을 길게 뻗어 서로 만나지만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간의 아주 좁은 틈이 바로 시냅스!




-그 틈은 누가 연결해주지?


-신경전달물질




 시냅스전 신경세포가 흥분하면 그 흥분은 축색을 따라 전달되고 축색돌기 말단에서는 신경전달물질   이 분비된다.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 글루탐산, 가바 등이 이런 물질들이다.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를 건너 다른 신경세포(시냅스후 신경세포)의 세포막으로 전달된다.




-시냅스후 신경세포의 세포막에는 무엇이 있지?


  이온채널들이 있다. 이온채널은 세포막에 무수히 많이 심어져 있는 단백질분자이다. 




신경전달물질이 이온채널에 결합하면 이온채널의 단백질 구조가 변화하면서 세포주위의 양이온이나 음이온들을 통과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음 신경세포의 흥분시키거나 흥분을 억제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경전달물질과 이온채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네!




-그렇지!


 그런데 신경전달물질도 단백질, 이온채널도 단백질.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모여 엮인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DNA이고.


-아미노산의 구조를 아는 것은 우리의 의식, 감정, 욕구가 태어난 기원을 추적해가는 일이야.


 빅뱅에서 태어난 원자들이 내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와 안에서 춤추며 뛰노는 것을 느껴봐!





3. 공부방법론


   -반복과 암기를 두려워 말자!




 고백컨대, 나도 예전에는 암기의 중요성을 무시했던 사람이었다.


사법시험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두문자로 외우는 것 (앞글자 하나씩만 따서 주문처럼 외우는 것) 따위 ‘유치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해하면 되잖아! 일단 이해하고 그 흐름에 따라서 머리에서 빼내면 더 완벽한 거잖아. 




  아마도 나는 은연중에 이해하는 과목과 암기과목이라는 것을 나누고 암기과목이라고 하면 한 단계 낮은 차원의 공부라고 여겼던 듯 하다. 다른 과 친구들이 “법학은 통째로 암기하는 거지? 힘들겠다.” 하면 “ 아니, 그렇지 않아. 먼저 내용을 이해해야하지.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암기할 수 있겠어.”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공부 요령에 약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런 점이 나의 고시준비기간을 연장시키는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몇 년씩 어린데도 공부를 참 잘하는 후배들을 보고 어느 날 깨달은 것은, 그들은 암기사항을 절대 미루지 않으며, 특히나 핵심개념, 정의는 반드시 외운다는 점이었다.




 어떤 개념에 대해 ‘그건 대충 이렇고 이런 것..’ 하는 식으로 느낌만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명확한 용어로 된 정의를 담아두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사고과정은 명쾌했다.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관계 뿐 아니라 새로운 사례의 사실관계에 적용해서 결론을 이끌어낼 때도 논리성을 잃지 않았다.



  그 후로는 두문자를 따든 의미를 새기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틀을 외우고 핵심개념을 외웠다. 책 목차를 복사해서 책상 앞에 붙여두고  전체 틀을 의식하며 책을 읽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씹어 삼켜 보겠다는 자세로 공부하는 것의 장점은 확실했다.  앞 내용을 암기하고 있으니 뒤쪽에 나오는 내용과도 자연스럽게 비교, 분석이 되었고,  내가 책의 여기저기서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실은 한 가지 문제의 여러 가지 표현이고 분야별로 조금씩 달리 변형되어 표현된 동일주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럴 때 그 과목에 자신감이 확 붙으면서 공부의 묘미를 느꼈다.




  어떤 목표를 향해 가면서 똑같은 에너지를 투입한다고 할 때, 요령과 접근방법을 아는 것은 자신이 투입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어떤 강의를 들을 때 훌륭한 선생님의 강의일수록  내용보다도 공부방법이나 접근방식에 대한 얘기에 더 귀를 쫑긋 세우는 버릇이 생겼다. 수업진행중 잠깐 집중을 풀어주면서 여담처럼 이런 얘기를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 잘 듣고 노트 한 쪽에 빨간 펜으로 적어두고 동그라미 쳐 둔다.  




 어떻게 하면 잘 외울 수 있을까?




 일단 마음을 열어야한다. 친한 친구를 맞아들이듯이.  그게 무슨 암기요령이냐고 콧방귀 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이걸 정말 외어야 할까?’ ‘외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치워버리는 것에서부터 암기는 시작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아미노산의 염기배열을 한 눈에 보여주는 코돈표의 암기!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장에만 꽂혀있던 분자생물학 책을 펴들었다.




 다음은 반복이다.
반복은 이해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고 암기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당장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도저히 내가 이걸 피할 수는 없는 문제구나 라고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경우 작년에 137억년 우주의 진화 강의에서 유전자 전사와 번역에 관해 안면만 익힌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좀 더 친해져보자고 한 번씩 쿡 쿡 찔러보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반드시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옆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복해야지!




  당장 읽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새로 공략하려는 분야의 책을 미리 사서 책꽂이에 꽂아 놓고 보는 것도 박사님께 추천하시는 방법인데, 요즘 시도하고 있다. 제대로 읽기 전 단계에서라도 가끔 그 책과 관련된 내용을 접할 때면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어본다든가 책 목차를 훑어본다든가 주르륵 넘겨보면서 그림이나 표를 눈에 바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살짝 맛을 본 다음 다시 책장에 꽂아둔다. 조금씩 그 책과 친해두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사귈 때 무리가 없다.




4.함께 나누고 싶은 즐거움, 백북스




  한 동안 백북스 홈페이지를 들여다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던 때가 있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몰랐을까.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안타까워하며 괜히 혼자 동동거렸다. 이제부터야, 이제부터야 하고 되뇌이면서도 멋진 강연들과 모임들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후훗, 이제야 백북스를 만난 회원분들도 백북스를 알아 갈수록 나 같은 심정이 될지도 모른다. 




  백북스를 만나고 강의를 듣고 공부하며 내가 느낀 것을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달리기 연습한답시고 혼자 뛰고 시행착오도 거치고 하다가 이제는 전문코치를 만나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기록이 날로 향상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몇 년에 걸쳐 단련된 수준급의 동료선수들을 만나니 그들에게서 배우는 기량이 상당하다.  언젠가 나도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뇌를 공부하는 것은 나에 대한 관심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며, 세상과 의미있는 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를 배우는 것!   배우고 느끼며 바라보는 세상은, 닫혀 있던 창문을 열고 비온 후 맑게 갠 풍경을 보는 듯 새롭고 신선하다.




  열정적인 강연을 해 주시는 박문호 박사님과 뒤에서 손발이 되어 큰 도움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더 많은 백북스 분들과 강연장에서 만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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