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기사]사랑의 화학

by 서지미 posted Jul 09,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랑의 화학











‘얘, 나 그 사람한테 한눈에 반했어!’ ‘그럼 너, 그 사람에게 성적 매력도 느꼈어?’이런 대화를 슬며시 엿들을 때마다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정말 사람이 타인에게 그렇게 한 눈에 이끌릴 수 있을까? 사람에게 성적매력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흔히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특이상태를 유발하는 환경은 무엇일까? 결국 사람의 감성도 체내에서 생산되는 화학물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자주 듣는 ‘페로몬’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묘약일까? 큐피드 화살 촉에 페로몬이라도 발랐다는 말인가? 과연 어떤 화합물들이 사랑의 분자들일까 


  


 














페로몬은 동물 특히 개미, 꿀벌 같은 곤충들이 자기들 사이의 통신을 위해 소량으로 분비하는 화합물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며, 호르몬과 종종 혼돈하는데 이들 두 화합물 집단 간에는 기능면에서 전혀 닮은 점이 없다.


 


개체 간에 나누는 통신의 내용이 다양하므로 페로몬의 종류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개미 경우는 길표지페로몬, 경보페로몬, 성유인페로몬을 분비해 상호통신을 위한 화학신호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 페로몬의 분비량이 워낙 소량이라 화학자들에게 그 화학 구조를 알아내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합성 성유인페로몬을 해충 구충에 이용하는 얘기는 이제 오래된 얘기다. 사람에게도 페로몬이 발견될까? 상대방의 특수한 체취에 이끌려 사랑에 취해버렸다는 경험담이 진실일까?








 


 



















사람의 침, 땀, 오줌에 소량 들어있는 안드로스테론을 종종 인간의 페로몬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안드로스테론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있다. 안드로스테론이 함유된 향수 선전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다. 그러나 안드로스테론 냄새가 사랑의 상대를 유인하는지, 더 나아가 성적 유혹을 느끼게 하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안드로스테론의 냄새를 느끼지 못하지만, 극히 일부는 기분 나쁜 땀냄새, 오줌냄새라고 불평하는가 하면, 향긋하고 꽃내음을 맡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안드로스테론에 더 민감하다는 몇 가지 실험결과가 알려져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간의 후각이 안드로스테론 냄새를 판단하기에는 지나치게 퇴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퇘지 침에는 안드로스테론이 꽤 많이 들어있을 뿐 아니라, 암퇘지에 성적충동을 유발한다고 믿는다.


 


 











사랑에는 흔히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각 단계마다 감정적 변모가 다르고, 그에 따른 과학적 설명도 다르다. 인간에게는 이끌림, 빠져듦, 애착의 단계마다 다른 사랑의 분자가 관여한다. 흔히 서로 강하게 끌릴 때는 두 사람 사이에 ‘화학’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의 첫 단계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이라 부르는 남성 호르몬과 에스트로겐 이라는 여성호르몬이 관여한다. 이 두 호르몬이야 말로 우리가 상대방에게 끌리게 만드는 화합물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이 성장하면서 남자답게 보이게 만들며 에스트로겐은 여성이 아름다운 육체와 미를 지니게 만든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은 우리 두뇌의 집중력, 기억력, 공간 판단력 등 인식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2차 성적특성발달 이외에도 생리주기 조절, 신진대사 촉진, 근육 양 감소, 자궁내막 성장촉진 등 다양한 생리작용에 관여한다. 흔히 여성호르몬을 에스트로겐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에스트로겐은 에스트론, 에스트라디올, 에스트리올 등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에스트라디올과 테스토스테론의 화학구조를 비교해 보면 그 유사성에 놀랄 것이다.


 



 


 














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상대방에게 빠져드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온통 대상 생각 외에 다른 일에는 주의 집중이 불가능해지며,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심하면 식욕도 잃는다. 상대방 앞에서 말을 더듬거리며,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속이 조마조마해진다.


 


이런 상태는 우리 뇌에서 몇 가지 화합물의 생성이 활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들 화합물 군을 모노아민계라 칭하며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이 이에 속한다.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은 흥분시키는 기능을 지니며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들을 사랑의 화합물이라 부르며, 우리 뇌에서 신경전달 물질로서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항우울제 중에는 세로토닌 생산을 지나치게 촉진해 오히려 낭만적인 사랑에 해를 줄 수 있다고, 미국 룻거스 대학(Rutgers Univers ity)의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Helen Fisher, 1945-)는 경고하고 있다. 그녀는 오히려 세로토닌 양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 낭만적인 사랑과 함께하는 환상에 젖게 한다고 주장한다. 피셔 교수는 사랑의 화학연구에서 세계를 이끌고 있다.







 


 












사랑의 세 번째 단계는 애착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단순히 상대에 대한 매력을 지나 함께하는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이 사랑의 단계에서 두 가지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바소프레신이 그들이다. 이들 호르몬은 아미노산 9개가 결합하고 있는 나노펩티드다. 아미노산 두 분자가 물 한 분자를 잃고 아미드기를 통해 결합하면 우리는 디펩티드라 부른다. 옥시토신은 ‘포옹화합물’이라는 별명을 지니며 연인들 사이의 애착심을 증가시킨다. 또 여성에게는 출산 시 자궁의 수축과 모유 수유를 도와주며 모성애를 발현하도록 한다. 성적쾌감을 느낄 때 남녀 관계없이 혈장에 옥시토신의 양이 증가한다. 옥시토신은 시상하부 뉴런에서 합성되어 후배부 뇌하수체의 축색돌기로 이동된 후 혈액으로 배출된다. 뇌에서도 옥시토신이 일부 합성된다.


 


두 번째 애착유발화합물로 바소프레신이 있다.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제화합물’이라는 별명을 지닌다. 포유동물의 약 3퍼센트 만이 일부일처성이며, 불행이 인간은 그에 속하지 않아 가끔 부부생활을 복잡하게 만든다. 들쥐는 철저하게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동물이라 바소프레신의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들쥐를 상대로 한 연구결과물이기도 하다. 수컷 들쥐는 짝짓기 후에는 자기 짝 보호를 위해 다른 수컷들에게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며, 자기 짝에 대한 지속적 애착을 유지한다. 이런 행위는 짝짓기 후에 바소프레신이 뇌에서 평소보다 많이 발견되는 점을 보아, 옥시토신과 함께 바소프레신이 짝 결합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믿는다. 이 밖에 바소프레신은 항이뇨 호르몬 기능을 지니며, 동맥혈압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바소프레신은 옥시토신이 만들어지는 장소와 같은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이 두 호르몬은 매우 가까운 호르몬 임에 틀림없다. 화학구조를 보아도 아홉 개의 아미노산 중 두 개 만이 다를 뿐이다.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드는 진통제인 엔도르핀 또한 지속적 사랑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옥시토신(좌)과 바소프레신(우)의 구조, 파란 이탤릭체로 된 두 아미노산 단위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약자로 표기한 아미노산은 다음과 같다. Gly – 글리신, Leu - 루신, Pro - 프롤린, Cys - 시스테인, Tyr - 티로신, Ile - 이소루신, Gln - 글루타민, Asn - 아스파라긴, Phe - 페닐알라닌, Arg – 아르기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짝을 선호할까?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 밖에 없는가? 여러 가지 설 중에서 유전적 선택론이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우리는 알게 모르게 건강한 후손들이 태어나 자랄 수 있게 자기와 다른 면역계를 지닌 유전자 소유자를 택한다는 설이다. 동시에 유전자가 본인 것과 너무 다르지 않은 짝을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오래 동고동락한 부부는 매우 닮았다고 하는 평가를 종종 받는데 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랑의 세 단계에 완전히 다른 화합물 군이 관여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심리상태는 우리 몸에서 생성, 소멸되는 화합물로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rticles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