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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3 02:40

[글연습7] 손수건 명찰

조회 수 1642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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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한 글을 읽고 어머니 생각에 글을 올려봅니다.

 

인간이 탄생하는 전 과정


그 벅찬 기적을 찍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어긋난다. 산모가 피와 땀과 울음을 한바탕 토해낸 끝에, 탯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기가 쑥 밀려나온다. “응애응애!” 우는 핏덩이를 가슴에 얹은 산모는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다. 한 인간의 생애가 시작되는 이 벅찬 순간을 담은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 옆에 사진작가 남경숙(49)씨는 “너는 왔고 나는 어미가 되었다”고 썼다.


 


남씨가 23~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트비트 갤러리에서 ⟪36도 5부 전⟫을 연다.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온식구가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서 어린 것과 눈을 맞추는 순간까지 탄생의 전 과정을 담은 흑백 다큐 사진 10여 점을 건다.


 


서울 전시에 앞서 이 사진은 경남 김해 문화의 전당에 걸렸다. 15~20일까지 엿새 동안 관객 1000여 명이 들었다. 여러 관객이 혼자 와서 울고 간 다음 이웃과 가족을 데리고 또 한번 보고 왔다. 전시에 맞춰 출간된 사진집 ⟪36도 5부⟫(다빈치)는 가슴 찡하다. 산모가 동물처럼 악을 쓰는 사진 뒤에 탯줄 끊은 어린 것이 새근새근 잠든 사진이 나온다. 탄생은 인간 누구나 공평하게 경험하는 d일한 기적이다.


 


“최근 발표된 다큐 사진들 가운데 기교가 뛰어난 작품은 많아도 ‘짠’한 감동을 주는 ‘징’한 작품은 드물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 내 생각에 균열이 갔다. 남씨의 사진은 삶에 대한 곰삭은 성찰을 미학적 허세 없이 드러낸다.” (사진 평론가 최건수씨)


 


남씨는 무명이다. 작품을 파느냐, 마느냐로 프로페셔널을 가린다면 그녀는 아마추어다. 단 한 장도 판매해본 경험이 없다. 생업은 간호사다. 김해에 있는 23평짜리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치과병원 마취과장으로 일한다.


 


그녀는 취미 삼아 사진을 독학했다. 2000년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쓰러진 뒤 마음 독하게 먹고 탄생 다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병석에서도 6남매의 슬픔을 먼저 걱정했다. “내가 가도 한 품지 마라. 니들은 원(怨)이 없을기야. 니들은 내인테 잘했으니까 괜히 ‘울 엄마한테 잘못했다’ 하지 말아라.”


 


어머니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남씨는 날마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김해의 산부인과 5곳을 돌았다. 매달 50~100건의 분만을 지켜보고, 산모와 의료진의 동의를 받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해 겨울 흰 눈 오는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남씨는 “그때 비로소 어머니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존재인가 깨달았다”며 “남들의 출산 장면을 촬영하면서 나는 우리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섭외도, 촬영도 고생스러웠지요. ‘아이구야, 내 이래 스트레스 받으면서 뭐하러 찍노. 밥을 주노, 떡을 주노’ 했지요. 그래도 이 사진은 나보다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탄생을 찍는데 7년을 매달렸어요. 나는 이제 원도, 한도 없습니다.”


 


남씨의 목표는 교도소, 노숙자 쉼터 등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남씨는 “전에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환자가 들어와도 무심히 ‘아, 수술 들어오네’ 했는데, 탄생 사진을 찍기 시작한 뒤로 환자를 보면 ‘아, 사람이네’ 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변했듯이,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당신도 이렇게 귀하게 태어난 생명’ 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그녀는 앞으로 ‘죽음’을 찍고 싶다고 했다.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내가 그 현장의 일원이 되지 않으면 겉 밖에 못 찍는 주제에요. 가슴 찡한 탄생 사진을 찍었으니, 이젠 가슴 찡한 죽음의 장면을 찍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36도5부의 체온으로 세상에 왔다가 그 체온을 잃고 떠나는 존재니까요.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와 함께 소풍을 갔던 적이 있다. 소풍 장소에서 유치원생들은 왼쪽 가슴에 명찰을 모두 달고 다녔었다. 한 참을 놀던 나는 명찰을 잃어버린걸 알고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야외에서 없어진 이름표를 다시 만들 수도 없고 선생님께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하셨다. 철부지 꼬맹이인 나는 계속 울고만 있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손수건에다 싸인펜으로 크게 ‘문경목’이라고 써서 옷핀으로 내 가슴팍에 달아주셨다.


 


아주 가끔 사진앨범을 뒤적이다 그 시절 친구들이랑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곤 하는데 왼쪽 가슴에 크게 걸린 손수건 명찰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지금이야 별로 신경도 안 썼을 것인데 그 때는 이름표 하나에 왜 그렇게 매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참 더 자라서 20대 시절을 지내고 있는 요즘 어머니의 사랑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평생을 감사해도 부족할 터인데 길러주시고 또 챙겨주시고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나 보다. 더욱이 어머니는 네 명의 누나와 나까지 모두 다섯 남매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주셨다. 그 고통이야 말로 기사 속의 남경숙 작가가 찍어내려 했던 그 순간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는 나이지만,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는 어머니를 보면 이제 내가 더 챙겨드려야 하겠구나 하는 맘이 샘 솟는다.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은 살며시 안아드려야겠다.

 

2008년 4월 22일 문경목
  • ?
    전지숙 2008.04.23 02:40
    이글을 읽다보니 저도 초등학교때 언제나 가슴한쪽에 달고 다니던 명찰과 흰 손수건이 생각이 납니다.
    이정원님의 탄생의 순간을담은 사진에서도 느꼈고.또 박혜영님의 글에서도 엄마된다는것.
    평생을 사랑할 대상을 만드는 순간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모는 평생 자식을 짝사랑 한다잖아요?
  • ?
    윤보미 2008.04.23 02:40
    글 속의 무명 사진작가인 그 분은 .
    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탄생과 죽음이
    우리 생활 속 가까운 곳에 언제나 함께있음을 알고 계신 분같네요.

    탄생을 찍는다.. 죽음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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