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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연(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하여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까치마늘 같던 발아!
蓮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연엽(蓮葉)에게...송수권 시 전향미 낭송
 
 


 


송수권

시 '山門에 기대어'를 통해 먼저 죽은 동생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표현했던 송수권 시인(64·순천대 교수)이 이번에는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아내 김연엽(53·金蓮葉)씨에게 바치는 한 편의 詩로 읽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하고 있다. 송 시인은 아내의 이름을 딴 시 ‘연엽(蓮葉)에게’에서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라며 절규했다. 그는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자신의 아내에게 피를 나눠준 서울 동대문·종암·성북경찰서의경 18명에 대한 감사의 글을 올리면서 덧붙여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노래한 시를 공개했다. 시인의 아내는 지난 5월 백혈병에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 출혈로 서울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때 의경들이 피를 나눠줘 목숨을 구했다. 시인은 “아내는 어려운 시절 30리 길을 걸어서 수박을 이고 날라 나를 시인으로 만들더니 28년간 보험회사를 다니며 나를 또 다시 교수로 만들었다”면서  “전문학교(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를 나와 학위조차 없는 내가 순전히 아내의 노력만으로 시를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이 됐다”고 밝혔다. 시인은 그러나 “만약 아내가 죽는다면 다시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때도 다시 시를 쓴다면 도끼로 나의 손가락을 찍어버리겠다”고 아내의 병상에서 절필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그는 “시란 피 한 방울 보다 값 없음을 알았다”면서 “그 의경들이 달려와서 주고 간 피가  언어로 하는 말장난(詩)보다 진실이며, 그 진실은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2억5000여만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부담스러워 골수이식을 거부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숨을 거두면 시를 쓰지 않겠다”며 간절하게 설득한 끝에 다음달 김씨의 남동생 인태(47)씨의 골수를 이식 받기로 했다. 아내 김씨는 그동안 "2년 후면 당신도 정년퇴직인데, 당신 거지 되는 꼴을 어떻게 봐요. 그게 1억이 넘는다는데…"라며 극구 이식을 거부해 온것으로 알려졌다.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 시인은 7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아내에 바치는 시와 편지 전문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2003/10/30 14:55

 

 


 

 

서울지방경찰청장님께 올리는 글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봉직하고 있는 송수권 시인(교수)입니다. 저의 아내는 몇 개 월째 백혈병으로 입원하여 AB형 피를 수혈하며 살고 있습니다. 동대문 경찰서 방범 순찰대 (의경) 중대장님께 감사합니다. 종암경찰서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성북경찰서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저의 아내는 몇 개월 째 서울대병원을 거쳐 지금은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백혈병으로 AB형 피를 받아먹으며 지금껏 연명하고 있습니다.AB형 피를 수혈해주신 동대문 경찰서 손승홍, 임춘추, 양상렬, 최원석, 김은광, 권경민 의경님께 백골난망, 이렇게 엎드려 큰절 올립니다. 종암경찰서 김민수, 문종민 이강산, 최의규, 김희동, 전인성 의경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성북 경찰서 의경 선현철, 김준석, 김두영, 최진영, 이진욱, 양승욱 의경님께도 삼가 큰절 올립니다. 지난 추석연휴절엔 저의 아내는 AB형 혈소판의 피를 수혈하지 못해 내출혈로 온몸에 피멍울 반점으로 얼룩져 누워 있었습니다.저도 아내도 주기도문을 외우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저의 아내 이름은 김연엽(金蓮葉)-어여쁜 연잎새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침상의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아내의 맨발바닥을 빨며 다음과 같은 통곡을 했습니다. (내용낭송시와 같음 삭제)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 똥장군을 져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낸 여인입니다.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저는 수박밭을 지키고 아내는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을 걸어서 그 수박을 이고 날라 그 수박 팔아 시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보험회사 28년을 빌붙어 하늘에 별 따기 보다 어렵다는 교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도 없이 전문학교 (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만 나온 저를 오로지 詩만 쓰게 하여 교수 만들고 자기는 쓰러졌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놓고 <.......시 쓰면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라고 평생 타박했더니 시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라고 울었습니다. 특별전형을 거쳐 발령통지서를 받고 <여보! 학위 없는 시인으로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군요. 해방 후 시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이라고 남들이 그러는군요!>라고 감격해 하더니, <그게, 어찌 나의 공이예요, 당신 노력 때문이지.......총장님께 인사나 잘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는 이렇게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쓰러졌습니다. 친구나 친척들에게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도 <2년 후면 송시인도 정년퇴직인데, 송시인 거러지 되는 꼴 어떻게 봐요, 그게 1억이 넘는다는데.......>라고 생떼를 씁니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병간호를 하고 있는 시집간 딸 은경이의 친구가 2003년 9월 고등학교 1학년 학력평가 문제지 (수능 대비 전국 모의고사)를 들고 왔습니다. 언어영역 문제지에는 저의 詩《山門에 기대어》가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은경이의 친구가 자랑처럼 말하자 아내는 <너는 이제 알았니? 은경이 아빠의 詩, '지리산 뻐꾹새'와 '여승'도 진작 수능시험에 출제되어 나갔어야!>라고 설명해 주고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난 이제 죽어도 한은 없단다> 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것을 자기의 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큰 것이라고 모든 공을 주님께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저는 저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청장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아내가 죽으면 저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습니다. 시란 피 한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AB형! 그 의경들이 달려와서 주고 간 피!그것이 언어로 하는 말장난보다 '진실'이라는 것-그 진실이란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강의가 끝나고 내일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저의 집필실 마당; 감나무에 올라가 가을볕에 물든 단감을 따고 있습니다. 햇과일이 나오면 그렇게도 아내가 좋아했던 단감입니다. 아내와 함께 다음에 집을 한 채 사면 감나무부터 심자했는데, 이렇게 비록 남의 집 감나무이긴 하지만 감이 익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감처럼 붉은 피가 아내의 혈소판에서 생성되어 AB형 피를 앞으로는 빌어먹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골수이식까지는 아직도 피가 필요한데 하느님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이 짐승스러운 시인의 피를 저당잡고 죽게 할 일이지, 왜 하필 아내입니까? 저에겐 죄가 많지만 순결한 아내의 피가 왜 필요하답니까? 저를 살려두고 만일에 아내가 죽는다면 저는 다시는 부질없는 詩를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도 시를 쓴다면 저는 도끼로 저의 손가락을 찍어버리겠다고 아내의 병상 밑에서 이를 악뭅니다. 청장님, 귀 산하의 동대문 경찰서장님, 종암 경찰서장님, 성북 경찰서장님 그리고 소속 중대장님, AB형 피를 주신 18명의 의경님께 진심으로 은혜의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내내 평안과 함께 건투를 빕니다.

 

2003년 10월 2일국립순천대학교 교수 송수권 올림(낭송-전향미) 

  

 

글을 올려 놓고 몇번을 보고 한 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왜 올렸는지부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제 아주 깊숙한 곳에

저도 모르고 있는 감정이 있나봅니다.. 어쩌면 제 미래에 대한 투영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문태준씨의 가재미란 시를 보았습니다.

 

비슷한 소재의 두 시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내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떠올립니다.

 

저는...바라옵건대 가재미로 눕고 싶습니다.

 

 

이제 부턴 아름다운 시만 올려야 겠습니다.

 

 

 

 

 

 

 

 


 
  • ?
    송윤호 2008.04.22 09:46
    그림, 음악, 시낭송, 기사, 편지 들이 한 데 어울려 아련한 느낌을 전해 주는군요.

    좋은 게시물 고마워요...... 창문 열어 바람이라도 맞고 하늘 한 번 쳐다봐야 겠어요...
  • ?
    송윤호 2008.04.22 09:46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________^
  • ?
    이병록 2008.04.22 09:46
    온 가족이 음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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