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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당의 ‘梨花에 月白하고’에 다녀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콘서트 홀이 아닌 작은 한옥의 뜰아래서 듣는 우리의 가락과 현악의 울림은 어떨까..





길은 마음과 달리 막히고 있었다. 한시간이면 족하리 생각했는데.. 일차선에서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함께 가자고 꼬드긴 언니를 픽업하느라 더욱 늦어지고, 길치인 나는 안내지도를 보고 출발했음에도 한밭대학교를 조금지나 차를 세우고 결국 메모해온 문경목 회원님께 손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낯선 회원에게도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을 해주시고, 잘 찾아왔는지 문자로 확인도 해주신다. 고마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결국 먼발치서 보이는 불빛과 북소리를 들으며 온지당에 도착했다.


달빛을 받아 환하게 미소짓는 배꽃을 보며 가슴을 두드리는 북소리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온지당 대문에 들어섰다.


꽃같이 어여쁜 숙녀 두 분이 환한 미소로 방명록을 내민다.


마당안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옥상끝에라도 앉아볼 요량으로 마당을 에둘러 반대편으로 향했다. 결국 옥상 입구는 찾지 못하고 서있다가 틈을 찾아 자리를 마련했다.


흥겨운 우리 가락에 어깨춤이 절로 나서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춘다. 소리를 하시는 명창분의 걸쭉한 입담에 금새 느슨하게 마음의 빗장까지 풀려 버린다.


사람들도 흥에 겨워 추임새를 넣고 얼굴에는 함박꽃이 핀다.


‘사랑가’를 부른다.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매도 내 사랑아.





우리의 창에는 격식을 차리는 고고함은 없을지 모르나 배시시 웃음이 배어나는 해학과 여유와 풍류가 있다. 말마다 시요, 말마다 절절한 진심이 묻어있다. 살아서 파닥이는 생동감이 있다.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끼어듬의 미학이 있다. 흥겨움이 있다.


행복함이 밀려온다.





재창이요~를 외치는 고마운 분 덕에 배뱅이 굿을 덤으로 듣고, 삼창이요~를 외치고 싶은 나의 마음속 외침은 접어 간직한다.





아..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 누군가가 외친다. “달 떳어요.~~ 달 좀 보세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본다. 정말 동그랗고 어여쁜 달이 두둥실 맑은 얼굴로 떠있다. 내 마음도 함께 달뜬다. 그러고 보니 보름 근방이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던 불씨를 피운 4.19 혁명이 일어난 그날이기도 하다.


태양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달빛을 사랑한다. 낮에는 태양빛에 가린 채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찾아와 길을 비춰주고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달빛은 아름답다. 오늘은 노란 달덩이가 내 가슴에 살포시 안긴다.





드디어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다.


오래전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에서 이 곡을 처음 듣고 내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커다란 콘서트 홀이 아닌 한옥의 작은 안마당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 없이 오직 두 대의 바이이올린이 들려주는 살아있는 연주를 듣다니... 꿈만 같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2악장  largo, ma non tanto는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이 나누는 대화같다. 두 개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내는 비단결 같은 선율이다. 조근 조근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여 주고, 정성껏 화답해 주면 등을 토닥여 주고, 서로를 감싸 안아주는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마음이 아련하고 충만함이 밀려온다.





뒤 이어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와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정말 열정적인 연주였다. 연주자의 기교와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휘파람 소리처럼 가늘고 애처로운 울림에서부터 파도처럼 격정적인 울림까지 연주자는 이미 악기와 한 몸이다. 악기를 통해 발산되는 격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저 사람은 정녕 신에게 축복받은 피조물이 아닐까...


시샘보다는 경이로움이 앞선다. 나는 이럴 때 다시 한번 신의 존재를 확신한다.





내 앞에서 앉으셔서 국악이 나올 때마다 추임새를 넣고,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시며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시며 입가에 시종일관 행복함을 감추지 않던 오렌지빛 스웨터를 입으신 신사분이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자 신발을 벗어 조용히 옆에 두시고 양반다리를 하시더니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명상의 자세를 취하신다.  이 모습 또한 아름답다. 전혀 모르는 낯선 분이시지만 맑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며 경계감이 사라진다.   





모든 행사를 끝내고 나오는 자리....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하고, 이런 좋은 공연을 그냥 보고 나오려니 죄송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백건우 연주회 때 뵈었던 분들도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주변머리 없음을 변명삼으며, 조용히 온지당에 머리숙여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오늘의 이 따뜻함을 안고 가서 누군가에게 그 온기를 전하겠습니다.”


그 날의 행사를 준비하신 모든 분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세영 배상










  • ?
    임석희 2008.04.21 10:59
    정말 너무 좋았죠? ^^* 저희는 맨 뒷줄 구석에 있었더랬죠.
    끝나구서 뒤풀이도 있었는데...(보름달 아래에서 대금산조를 감상...)
    22일엔 에트리에서, 24일엔 공주에서... 만나요. ^^*
  • ?
    이정원 2008.04.21 10:59
    후기 너무 잘 읽었습니다. ^^
  • ?
    송윤호 2008.04.21 10:59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가지 못한 아쉬움이 더하기도 하면서
    함께 하지 못한 슬픔을 덜어주는 후기군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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