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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4 06:18

개학 날 빵빵한 가방.

조회 수 1289 추천 수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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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개학날.  5학년 5반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 가는 길.

가방이 빵빵하다.

초록색 에나멜 가방의 끈이 늘어날까봐 살짝 걱정된다.

 

빵빵한 가방 속엔

 

<책 읽는 교실>

<토론하는 교실>

<아이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는 55가지 원칙>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녹슨 못이 된 솔로몬>

 

다섯 권의 책이 들어있다.

 

 

 

<아이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는 55가지 원칙>

미국 중학교 교사가 쓴 책이다.

 

이 책의 '차례'에는 너무나 정직하게도 아이들이 지켜야 할 55가지 원칙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내용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오늘은 55가지 원칙 중 3가지만 읽어주었다.

 

1. 어른에게 공손하게 대답하기

2. 이야기 할 때 상대방 눈 보기

3. 다른 사람 칭찬, 격려하기.

 

지난 2년의 교사 생활동안

도덕적인 내용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해!" 라고 했다.

왜? "당연하잖아!" 이런 식으로.

 

만약 어떤 아이가

 

"왜 어른들한테 공손하게 대답해야 하는데요?

어른들은 우리한테 공손하게 안하잖아요."

 

라고 되묻는다면 ,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상상한 적이 있었다.

마땅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그렇게 묻는 아이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 난 책을 읽어주었고,

아이들은  "아, 이래서 어른에게 공손하게 대답해야 하는구나~"하고 공감해주어서

마음이 뿌듯했다.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솔직히 지난 2년간은 아이들에게

일기를 왜 써야하는지,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없이 무조건 "써!"라고 했다.

 

2줄, 3줄 써온 아이에게는 "좀 더 써와!" 라고 했고

일기의 아래에 댓글을 달아 줄 때에는 "참 착한일을 했구나." "다음부턴 그러지 말거라" 등의 말을 썼다.

 

이젠 아이들에게 왜 일기를 써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2, 3줄 써온 아이에게는 "많이 써" 가 아니라 "자세히 써"라고 말할 수 있고,

일기에 댓글을 달아줄 때에는 그 아이가 쓴 내용에 대해 '가치판단'하는 내용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는 말을 써 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밀일기를 쓴 날은 선생님이 안볼테니,

그 표시로 일기장을 반 접어서 내거나

그것도 혹시 볼까 불안하면 접어서 끝에 풀칠을 하고 붙이라고 배려하는 방법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안쓰는데 아이들에게 쓰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책의 내용에 따라,

나도 매일 일기를 쓸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공언했다.

그리고 오늘은 일기장 하나를 샀다.

일기를 쓰고 교실 한 켠에 게시해 둘 생각이다. 아이들이 나의 일기를 읽고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해 보아야 겠다.

 

<녹슨 못이 된 솔로몬>

 

그림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은 폭 빠졌다.

누구 하나 크게 숨쉬는 아이도 없었다.

어쩌면...

5학년이면 다 커서 이런 걸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제일 뒤에 앉은 아이는 그림이 잘 보이지도 않을텐데,

아이들은 정말 눈이 똥그래져서 이야기를 듣는다.

(코를 후비면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녹슨 못'으로 변하는 재주가 있는 토끼 이야기입니다. ^-^ )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준 후 이렇게 말했다.

"만약 너희들도 무언가로 변신할 수 있다면, 뭐로 변하고 싶고 그렇게 변한 후 뭘 하고 싶은지 일기에 쓰고 싶은 사람은 그 주제로 써봐."

 

나는 내일 아침이면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의 속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겠지?

 

-----------------------------------------------------------------------

 

지난 2년간 . 짧다면 짧은 그 교사생활동안, 적지 않은 시간 고민하고 괴로웠다.

 

도대체 애들한테 무엇을 꼭 지키라고 내세워야 하는 것인지,

이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도대체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건지...

 

정말 아이들이 잘못해서 내가 혼을 내는건지,

내가 아이들이 잘못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었으면서 왜 이러는건지...

 

우리반 아이가 내가 지나갈 때 인사를 하지 않으면

한번쯤 어른한테 인사 안해도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수업시간에 물먹으러 가겠다고 하면 그럴수도 있지 싶어서

그냥 놔둔 적도 많았다.

 

나부터가 무엇이 규칙이 되어야 하는지 원칙이 바로 서있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게만 대하면 다 인줄 알았다.

 

근데 그것도 아니다.

작년에 4학년 담임일 때 우리반 이었고,

올해 5학년 담임하면서 또 1년을 함께하게 된  준용이는

나의 그런 모습에 질렸던 모양이다.

 

오늘 아이들에게 보여준 프리젠테이션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생님이 좋아요?

 1. 항상 웃고 칭찬하는 선생님. 2.꾸짖고 화내는 선생님>

 

 장면에서 준용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둘 다 하는 선생님이 좋아요"

 

준용이의 그 대답에 나는 뜨끔했다.

작년에는 이 물음에 모든 아이들이 1번이라고 했고, 준용이도 그러했을 터인데

1년간 나와 함께 지낸 준용이는 둘 다 갖고 있는 선생님이 좋다고 한다.

 

"그래, 선생님이 작년에 2번을 좀 안하긴 했지?"

준용이는 끄덕끄덕 거린다.

준용이의 끄덕임에 반성했다. 마냥 따뜻하면 다인줄 알았지만 준용이는 제대로 된 가르침에 목말랐을거다.

그리고 올해 나를 또 만나서 조금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준용이가 바라는 선생님은 꾸짖고 화내기도 하는 선생님이라기 보다도

뭐든 "괜찮아~"하면서 넘어가는 선생님이 아닌

아닌건 아니라고 따끔히 말 할 수 있는, 원칙이 제대로 있는 선생님이었을거다.

 

 

이젠 작은 희망이 생긴다.

작년보다는 올 해가 나와 아이들에게 좀 더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래 석희언니 글 제목처럼 <책 속에 답이 있다>.

답을 갖고 있는 책을 찾기 위해,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 ?
    전재영 2008.03.04 06:18
    초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제가 다리에 기부스를 하고 있을때 계단 오르고 내리고 할때마다 업어주신 선생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실안에서 만큼은 정말 무서운 분이셨죠
    윤보미님 힘내세요^^ 아이들 기억에 기리 남을 선생님이 되실거예요~
  • ?
    이병록 2008.03.04 06:18
    윤선생님에게서 배운 얘들은 많이 배우고, 추억도 많고....선생님도 귀엽고 예쁘고....정말 복이 많은 얘들이군요.
  • ?
    임석희 2008.03.04 06:18
    보미씨 같은 선생님을 만나는 아이들은 행운아.
    백북스를 만난 보미씨도 행운아.
    그리고, 나도 행운아.
    우리 모두 행운아 입니다. ^^*
  • ?
    최상준 2008.03.04 06:18
    전 초등학교때 전교에 소문난 말썽쟁이었는데요. 덮어놓고 혼내는 선생님도 있었고, 덮어놓고 마냥 잘해주는 분도 계셨죠.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초등학교 4학년때 선생님이었지요.
    제가 뭘 잘못하거나 잘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그냥 절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어요.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저에게 선생님이 절 믿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했죠. 꾸짖기보다 잘 들어주시는 분이었어요. 저야 주말선생님(과외) 밖엔 안해봤지만, 그도 한 아이와 몇 년씩 했던터라 선생님이 된다는건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선생님이라뇨.. 윤선생님 화이팅입니다!!
  • ?
    이정원 2008.03.04 06:18
    흐뭇~ ^^
  • ?
    주용성 2008.03.04 06:18
    보미 글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 글에 진실이 있고 느낌이 있고 감정이 있어. 그리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그래서 그런지 글이 읽기가 쉽고 공감이 잘 가. 마치 글을 읽기만 해도 보미하고 대화를 하고 있는 것같아..... 여타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야. 나또한 이렇게 글을 쓰라고 하면 못 쓸꺼 같아. 대단해~ 이건 분명 보미의 재능이야. 보미 글에 리플이 많이 달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 ?
    이동선 2008.03.04 06:18
    보미샘 땜에 이 땅에 아름다운 봄, 그 봄이 올 해도 왔지~. 원칙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중요하죠. 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오늘 확실히 배우는 것 같아요. 아무튼 보미샘의 책읽어주기는 참으로 소중하고 큰 희망을 봅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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