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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6 21:44

가시연의 101book話 - 첫날

조회 수 2123 추천 수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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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책을 한보따리 버렸어요. 오래 전 이사 와서 책꽂이가 모질라 그냥 위에 쌓아 두었던 오래된 소설과 불온서적들을 드디어 해치웠답니다. 그나마 절반 이상은 다시 박스에 담고 평생 다시 떠들어 볼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들만 추려내었습니다.  솎아내다 보니 잡지, 계간지 같은 것들과 대학 때 읽었던 금서들 위주로 버리게 되네요. 10년 전엔 미처 버리지 못했던 책들인데...... 대부분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사람들의 책이랍니다.





책을 출판한다고 감옥에 가다니...... 전혀 감이 오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만해도 사상서적이란 꼬리표가 붙어서 어둠 속에 몰래 사서 보던 책들이 있었지요.





책꽂이 위에 상전처럼 떠받들어지던 책들이 하루아침에 폐품처럼 변해버렸네요. 워낙 책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큰맘 먹고 두 눈 질끈 감고 노끈으로 책을 꿰어 줄줄이 현관 밖으로 몰아냈답니다. 그날따라 바람이 유난히 차가운데 층층이 묶여진 책들 사이에 원성이 대단하겠습니다. 첫 페이지마다 새기었던 결심과 생각을 품은 책들...... 누군가에게 주기도 어렵고 헌책방에 내다 팔수도 없는 녀석들. 좀 너른 서재가 있는 집에 살았다면 버리지 않고 계속 지니고 있었을까요?





한때 불면의 밤 한 귀퉁이를 환하게 비추며 왼쪽에서 뛰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책들이었는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두가 길어집니다, 그려.





                                  *        *        *





혹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 마술 같은 밤의 이야기 말이에요. 세헤라자데를 모르신다면 아직 천일야화를 읽지 않으셨군요.





아라비안 나이트, 천 하루의 이야기.





왕비의 불륜(동성애)에 광분하여 자신이 새로 결혼한 처녀를 신혼 밤이 지나고 나면 처형시켰던 잔인한 샤 리아르 왕의 복수를 잠재우고자 지혜로운 세헤라자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밧드의 모험과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람과 동물들의 모험과 사랑이야기는 사막의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에게 잠 못 이루는 개구쟁이 아이가 있다면 밤마다 들려주고 싶은 책입니다.





아, 또 서두가 길어집니다. 눈치 빠른 분은 제목을 보고 아셨겠지만 '필진 글쓰기'를 못하고 기한을 넘겨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변제하고저 좀 긴 글을 써볼까 합니다.





오랫동안 책을 벗하고 탐식해왔으나 변변히 글로 말로 풀어내지 못한지라 제 안의 또아리 튼 말들이 켜켜이 먼지처럼 쌓여만 있네요. 오랜 변비 환자의 소원처럼 멋진 황금글변을 시원하게 뽑으면 좋으련만 성실하게 100북스클럽에 글 올리는 것으로 모자라는 재능을 대신하려구요.





어느 연인보다 살뜰하게 제 마음을 헤아렸던 책들과의 이제 떠나 보내야하는 책들과 소홀히 여겨 먼지 쌓인 책, 이해가 짧아 중도에 포기했던 책, 인연이 닿지 않아 영원히 만나지지 않을 책들을 위해 세헤라자데처럼 위안이 되는 책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제가 좋아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천일야화처럼 다른 사람의 책이야기, 책 속의 책이야기, 책 속의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책 안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거여요.





두근두근 신밧드의 모험처럼 멋지게 펼쳐지면 좋으련만~





                                  *        *        *





첫 날 책) 300년 전의 맛, 을 추억하며......





300년 전 어느 날, 식솔들이 모두 잠들어 고요한 밤에 안채 밝혀진 호롱불이 유난히 환하게 보입니다. 밤늦은 시각이지만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계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그 첫머리는 이렇습니다.





이 책은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오되, 가져갈 생각일랑 하지말고.


부디 상치말게 간수하여, 수이 떨어 버리지 말아라





순간 어디선가 저고리의 희고 빳빳한 동정만큼 깐깐한 할머니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노부인이 밤늦도록 쓰고 있는 책은 1670년경에 발간된 *****입니다. 한글요리책으로 다양한 음식의 조리법이 종류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국수, 만두를 비롯해 모두 146가지 음식과 술 내리는 법에 대한 조리법과 조리 기구, 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조리기구, 음식 재료의 보관법이 자세히 설명되어있어 지금도 이 책을 따라서  요리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을 펼쳐서 책 서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은 앞뒤 표지 2장을 포함하여 전체가 30장으로 된 1권 1책의 필사본이며 다른 등사본이 발견되지 않은 유일본이다. 이 책은 17세기 중엽의 음식문화, 음식 조리 방법을 알 수 있는 한글로 쓰여 진 최고(最古)의 조리서이다.





첫 날 책으로 이리 ‘오래된 요리책’을 고른 까닭은 앞으로 제가 개척하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100booksclub 사람들이 자기 집안에 하나쯤 간수해놓고 펴볼만한 책이란 생각에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왜 하필 요리책이냐구요? 사실 이 책을 빌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어느 틈엔가 잃어버린 우리네 삶의 품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각의 생리학이란 책을 쓴 브리야 사바랭(Brillat Savarin, 1755~1826)은 "당신이 무엇을 즐겨 먹는가를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리라" 란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들이 무엇을 먹는가를 살펴보면 그 종의 특징과 성격을 많이 파악할 수 있지요! 굳이 사바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식’에 대한 연구는 문화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면병류(국수, 만두) 15종, 어육류(고기, 생선) 46종, 소과류(채소, 과자) 31종, 주류(술) 53종으로 술에 대한 조리법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빈번한 손님접대 풍습과 가문마다 ‘가양주’를 빚어 먹는 전통에 대한 것입니다. 자신의 다스리고 부리는 사람들을 위한 탁주에서부터 귀한 손님으로 모셔야할 분들을 위한 맑은 청주까지 다양하게 빚어 먹었던 술문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집안마다 지병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약초와 한약 등을 첨가하여 만든 술로 고질병들을 치료하였다고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먹고 마시는 것 하나에도 성심과 성의를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동시대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맛의 계보를 통해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을 자신의 요리법으로 맥락화해낼 수 있는 귀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고전으로 불리워지는 옛서적을 읽으면 시공을 뛰어넘어 느껴지는 공감각적 공감에 감격하게 됩니다. 이렇듯 멋진 고전을 읽으면 우리도 우리의 삶을 글로 남겨야한다라는 소명을 갖게 합니다.





또한 이책의 뛰어난 점은 한권의 독립적인 책으로 쉽게 쓰여진 언문책이라는데 있습니다. 조선시대 위대한 시와 서를 남기었던 사임당과 허난설헌도 자신의 책을 엮진 못하였습니다.

 

또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실용서로서  어려운 한자가 아닌 쉬운 한글로 쓰여졌다는 점이 더욱 매력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첫 문장에서 보듯이 딸이나 며느리한테 말하듯 구어체인 한글로 정감 어리게 쓰고 있습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졌다는 점이 300년이 지난 우리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인절미 굽는 법>


인절미 속에 엿을 넣어두고 약한 불로 엿이 녹게 구워 아침으로 먹어라.

 

어때요, 간단하면서도 바로 따라할 수 있는 요리법 아닌가요?

글을 보다보면 위 요리법처럼 간단하면서도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도 있습니다. 

 

저에게 이책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고 하라면 ‘누구라도 따라할 수 있도록 땔깜 하나까지 세심하게 적혀진 레시피’ 라고 하겠습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볼까요?








 


<*****  주해 중에서 발췌>



 


위의 글을 보면 뽕나무를  땔감으로 하라는 내용까지 참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 위에 나온 어만두 만드는 법을 활용하여 친구들과 깔끔한 어만두를 즐기고 있지요. 여러분도 한번 집에서 만들어 보시길~


 

(위 어만두 요리법의 고기는 민치나 대구살처럼 흰살생선을 이용하고 꿩고기 대신 닭고기를 이용해도 됩니다. )

 

이 책의 가치는 이러한 현재성과 더불어 우리 삶의 계보와 무엇을 이어나가고 기록해야하는 가에 대한 미래까지도 밝혀준다는 데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노부인 장씨의  기록 속에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와질 수 있는 우아함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그럼 다들 300년 전의 맛을 추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보시기 바라며......






* 책 제목은 왜 알려주지 않냐구요? 하하 그야 재미를 위해서지요.


세헤라자데처럼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스톱 해봤자 전 왕에게 다음날 처형당할 위험이 없으니 '책 제목 맞추기 놀이'를 통하여 즐거움을 느껴보려구요.





물론 상품 있습니다!


제목을 맞추시고 관련 화답 - 책에 대한 비평이나 관련글- 을 멋지게 쓰신 분께 선물 드립니다.





중간 중간 퀴즈~ 도 있으니 재미있게 참여하시길~

  • ?
    이상수 2007.12.26 21:44
    음식디미방

    구글가서 "어만두법" 치니까 안나오네요.
    네이버가서 "어만두법" 치니가 뭔가 나오네요.
    "음식디미방"으로 검색하니까 주르륵 뜨네요.

    옛날에는 약으로 사람 몸을 다스리는 것은 하급이고 병이나지 않게 음식조절을 잘 하는 것이 상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
    임성혁 2007.12.26 21:44
    안녕하세요 가시연님, 서울모임에 첫날 참석하고선 이후 참석을 못하고 있네요.저는 좀 더 배우고 나서야 같이 토론하는 형태에 참여할 수 있을 듯 합니다.책을 많이 버리셨다니 감회가 새롭게 들겠군요.저의 경우는 지난 몃개월간 팔십여권의 책을 골라서 버리고(도서관에 기증)새로 사십여권의 책을 삿습니다.
    보는 책의 성향이 바뀌면서 과거 보던 책들이 버려 지네요.책장에선 더 버릴 책들이 나올것 같은데, 새로 사는 책들은 아마도 버려지지 않을듯 합니다.

    참 나머지 100book話 기대 합니다.^^
  • ?
    이정원 2007.12.26 21:44
    서울모임 때 예고하신대로 뭔가 재밌는 기획을 하신 듯. ^^
    다음 글들도 기대가 됩니다. ㅎㅎ
  • ?
    이정원 2007.12.26 21:44
    야~ 이런 책은 어떻게 찾아서 읽어보신 거에요?
    음식에 대한 웬만한 관심이 아니면 읽어보기 힘든 책 같네요. ^^
  • ?
    가시연 2007.12.26 21:44
    이상수님 땡이에요! ㅋㅋ
    임성혁님 나중에 뵈어요~
    이정원님 압박글쓰기의 시작이죠..ㅎㅎ 정기적인 도서관 방문으로 얻은 월척이랍니다.
    이 책 덕분에 옛문헌들을 뒤져볼 용기가 생겼지요. - 학교 다닐때 고전문학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였는데 이렇듯 재미난 글들도 있고 더 찾아보니 옛사람들의 음식이야기 재미가 쏠쏠합니다. 곶감 빼먹듯이 하나씩 소개해드리죠.~
  • ?
    윤성중 2007.12.26 21:44
    규곤시의방 ^^ (요며칠 바쁘다는 핑계로 클럽사이트 방문을 게을리했더니...재미난 글이 있었네요~^^ 너무 늦게 참여해서 죄송^^)
  • ?
    이정원 2007.12.26 21:44
    시리즈물 시작하셨으면 끝까지 책임지셔야돼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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