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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북스 홈페이지에 처음 가입인사를 남긴 것은 지난 10월 2일이었다.

많은 분들이 반겨주셔서 고맙고 편안했다.
이후에 나는 박문호 박사님께 자연과학독서(바로가기)에 관한 화두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에도 올렸었다.

공동체 선언을 한 직후에 백북스의 철학과 비전(바로가기)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었다.


사진과 함께 정리해 둔 여행기를 올려보기도 하고 음악이나 미술 얘기를 꺼내보기도 했었다.
샘프라스와 페더러의 경기가 있던 날에는 그 주제로 글을 올려보기도 했다.
온지당에도 다녀왔고 수유+너머에도 다녀왔고 등산모임에도 나갔고 동해 독서여행을 다녀왔고
독서산방에도 세 번 다녀왔고 서울 월요모임에도 다녀왔고 교차로 모임에도 나갔고
뇌과학연구회 총무를 맡게 되었고 천문우주탐구 모임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석 달째 백북스에 빠져 있다.

등산모임 한 번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백북스 모임에 참석한 것 같다.
두달 반 전 가입인사 글을 남기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5년 전 ETRI에 입사하고 그해 지금의 아내를 만날 무렵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동안은 자동차잡지, 락음악잡지, 영화잡지, 시사잡지, 오디오잡지 등을 봤었다.
아내는 우리집에 놀러올 때마다 내가 들려준 델러니오스 몽크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재즈를 즐겨듣게 되었고 락콘서트에도 같이 다녔다.


나는 아내의 책읽는 모습이 좋았다.
조선시대의 왕후들이 얽힌 에피소드를 엮어서 나에게 얘기해 주기도 했고
아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한다고 해서 늦게나마 <개미>를 읽어보기도 했다.
연애시절 아내의 생일날에 대형서점으로 데리고 가서
30분 시간을 줄테니 보고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보라 하고는 그 책을 모두 선물로 사 주었다.
나도 같이 골라줬지만 30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는지 열 몇 권 정도밖에 고를 수 없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야생초편지, 백범일지와 같은 책도 있었고,
비어즐리, 뭉크뭉크, 팜므파탈, 살바도르 달리 등 서양미술사 관련 책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마구잡이로 책을 읽기에는 교양으로서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스로마신화, 성서, 한국사, 중국사,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들,

세계지리, 서양미술사, 서양음악사 등을 하나씩 쌓아나갔다.
조금씩 알면 알수록 어느것 하나 재밌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주 인용되는 인물과 사건들을 알고 나니 책읽기가 점점 더 재밌어졌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새로 발을 들여놓은 분야는

서양고전음악, 서양미술사, 유럽영화, 문화유적답사 정도다.
서양음악사를 훑고 나서는 발레가 낯설지 않았고,

서양미술사를 훑고 나면서부터 건축사가 낯설지 않았다.

 

결혼하고나서 책장을 정리하다보니 아내의 책과 겹치는 책이 꽤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내가 좋아한 책이라 아내도 사서 봤고,
<고등학교 국사, 세계사, 세계부도 교과서>는 서점에 같이 가서 골랐었고,
문화유적답사를 다니면서 <문화유적지도>, <문화유적수첩>,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 등을 같이 사서 봤었다.

 

올해 백북스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연스레 자연과학 분야로 관심이 옮아갔다.
도킨스와 굴드의 책을 번갈아 읽었고, 린 마굴리스의 책도 제본해서 읽었고,
뉴튼 과월호들을 사서 천문학과 신경과학, 진화론의 내용을 설명한 그림들을 훑어보기도 했다.
뇌과학연구회와 천문우주탐구 소모임을 시작하면서 더욱 관심의 깊이가 더해졌다.

 

아내와 같이 하길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퀴즈대한민국을 보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문제를 맞히는 분야가 확연하게 갈렸다.
국사, 세계사, 국문 분야는 아내가 맞히고 음악, 과학 분야는 내가 맞혔다.
미술사는 같이 입문했으니 경합이 치열했고
간혹 답사 관련 문제가 나오면 머리속에서 용어를 끄집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암사의 지붕을 받치는 부재 구조인 하앙을 묻는 문제가 2천만원 짜리 문제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문제를 맞히는 날에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웬만한 매니아나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맞힐 수 없는 문제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국사, 세계사 분야의 문제를 맞히는 빈도가 늘어났고
아내가 과학 분야의 문제를 맞히는 빈도도 약간씩 늘어났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이 아니면 아내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문과생에게 자연과학의 토대는 매우 허술한 듯하다.
최근 우리의 관심이 천문학으로 옮겨가는 시점에서 아내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기로 한 것 같다.
우선 잡지를 보듯 관심 항목을 늘여가고 조금씩 깊이를 더하면 이해 못할 내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자연과학은 혼자서 시작하기에는 너무 턱이 높다.
우리가 함께 별을 보고 함께 뇌 속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나의 20 대는 최대한 많은 분야에 관심을 뻗어두는 데 쏟았다.
의도적으로 공부한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타이밍을 잘 활용했다.
타이밍이 맞으면 공부가 더 재밌고 효과적이다.
어느 분야든 혼자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정도만 들어가두면
다른 책을 읽다가도 연관되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다.
작은 자극에도 많은 정보를 환기할 수 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류할 줄 알기 때문이다.
또 이미 알던 것을 환기하고 그것과 새로운 내용을 연관지어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쉬지않고 공부하기만 한다면 지식은 선형적으로 느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단 꾸준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가 왜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내용이 틀렸고 다른 설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이것과 저것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느날 문득 그 연관성을 찾아냈을 때.
내가 새로 알게된 것을 남에게 알려줄 때.
공부의 과정에는 이런 짜릿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고
그 과정 자체는 몰입의 대상이다.

 

백북스에서 활동하고 나서부터 다른 회원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는다.
내가 다른 회원들에게 자극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도 동기가 된다.
당분간은 뇌과학과 천문학을 나 혼자 공부할 수 있을 정도 깊이까지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지난 5년을 뒤돌아보면 많이 배우고 발전했다.
가속이 붙은 지금, 백북스와 함께 할 앞으로의 5년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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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 2007.12.20 20:07
    독서클럽에 푹빠져 몰입하고 있는 회원님의 모습은 생명최초의 30억년뿐만 아니라 니체 강연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경수, 송윤호 회원님들과 함께 이정원회원님의 모습은 저희 젊은 회원들에게도 많은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단 꾸준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말씀해 주셨기에 저희도 우직하니 백북스와 함께 몰입에 대한 무아의 경지에 도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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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07.12.20 20:07
    타이밍을 이용한 공부는 효율적인것 같습니다.제가 잘 써 먹는 방법인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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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순 2007.12.20 20:07
    훌륭하십니다~ 부부가 함께 책을 읽는다는것, 생각을 나눈다는것, 너무도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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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7.12.20 20:07
    진해에서 근무시절에 몇 달만에 서울집에 휴가와서 책만 보고 있으니,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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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환 2007.12.20 20:07
    이정원회원님은 우리클럽의 '자극제'입니다. 저만 자극을 받는줄 알고 있었는데,
    많은 회원님들이 그러하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활동하는모습을 보면 저역시 닮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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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윤경 2007.12.20 20:07
    저에게도 책 좋아하는 남편이 생겼음 좋겠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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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영 2007.12.20 20:07
    저에게도 정원 님은 '자극제'입니다.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멋지세요.
    정원 님 글 가슴에 팍팍 꽂고 갑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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