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도예가 이종수님을 만나다

by 강신철 posted May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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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디 번개모임으로 도예가 이종수 선생님을 만났다.

 


이종수 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어렷을 적 동네 정자나무 아래 지는 해 등지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촌로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서울대 미술과를 나와 이화여대 교수자리를 때려치고 대전 갑천변에 가마터를 마련하고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는 님의 삶자세가 이미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황홀과 불안이 내 마음 안에서 맞서 있는데/ 오늘도 가슴팍 깊은 곳에 보석을 담고 싶은 욕망은 꿈 속을 더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시울이 뜨겁던 그 어느 날 잔설의 여운은 짙게 묻어 있을 것이다.”


 

"어머님의 품"

"겨울 열매"

"잔설의 여운"

"경"


님이 좋아하는 그릇 제목들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착하디 착한 그의 심성이 도예 작품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흙이 좋아서, 그릇 만드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릇을 깨는 사람이 될 줄이야...도예가에게 그릇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떤 놈은 좀 못 생겼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깨버린다는게 인간의 겸손인지 오만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세상이 자꾸 오염되고 있는데, 잘 못된 작품을 자꾸 세상에 내보내서 사람의 마음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하면 그도 못할 짓이고..."

이종수 님의 고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용래 시인과의 교제를 소중히 여기며 들려주는 님의 잔잔한 이야기에 심취하여 마치 산골짜기 오막집에 앉아 달빛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풍경 속에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시인이 세상을 보는 눈이나 도예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기술과 과학, 그리고 예술이 만나야 작품다운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지극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작은 계획과 뭘 하고 싶다는 의지, 그게 다이다. 그 다음은 흙과 나무, 바람과 불, 이런 것들이 알아서 한다." "인간은 완전성을 추구할 뿐, 완성 여부는 신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곧 인간다움이 아니겠는가?"

 



"흙만 가지고 그릇이 되겠는가? 다행히 물이 있어서 흙을 개서 그릇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다행히 바람이 있어 그릇을 말리고, 나무가 있어 불을 지필 수 있고, 그 불로 그릇을 구울 수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행복하다."

 


월요일은 달이 있어 밤에도 장작을 지필 수 있고

화요일엔 불이 있어 가마를 덮힐 수 있고

수요일에 물이 있어 흙을 갤 수 있고

목요일에 나무가 없다면 무엇으로 불을 지피겠는가

금요일에 금속재료들이 있어 그릇에 영롱한 색채를 더할 수 있고

토요일에 흙이 필요함은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요일엔 좀 쉬어야지

 


"만물과 그 조화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산속에 까치가 푸드득 날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애련하고, 못 다 녹은 잔설이 주는 강한 인상은 가물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님의 말씀이 편리와 경제성에 오염된 후배들에게 던지는 고수의 일침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더 심심하고 싶고, 더 쓸쓸하고 싶은 심정을 그릇에 담아내고 싶다."는 님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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