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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모임은 2010 창디기획 <미니강좌, 미니모임>시리즈에 근거해 창디 정기모임에서 분리되어 나온 <2010 창디 독서 프로그램>입니다.


  1월 미니모임 독․담은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점의 거실 같은 아늑한 분위기에서, 아주 오붓하게 가졌다. 함께 읽은 책은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원제: Design for the Real World). 매우 광범위한, ‘인간을 위한 진짜 세상’의 디자인에서 손에 잡히는 ‘퍼즐’ 몇 조각을 가지고 함께 느끼고 나눈 생각을 간추려 본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우선 우리에게 디자인이라 하면 일상적으로 거리에서, TV 광고에서 보는 패션, 핸드폰, 자동차, 가전제품, 백화점 진열장의 상품들, 팬시문구 등 예쁘고 세련된 모양의 상품을 떠올린다. 계속 새롭게 탈바꿈하는 디자인은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고 기업체와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겠지만, 그러나 소비자인 우리가 피부로 실감하는 것은 비싼 가격이다. ‘디자인이 좋은 제품은 비싸다’는 생각은 거의 통념처럼 박혀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은, 몇 달 간격으로 계속 새로 출시되는 핸드폰은 달라진 디자인과 비싼 가격만큼이나 기능 또한 정말 좋아진 것일까? 과연 우리가 지불하는 돈의 가치만큼 편리함과 나아진 삶의 질을 누리는 걸까? 하는 점이다.



산업 디자인에 대한 비판
파파넥은 이런 상품을 일컬어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의 책은 서두부터 우리가 소비하고 늘 보는 제품 디자인에 대한 상식을 확 깨어버린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도록 자극하는 광고 디자인과 이런 용도의 제품을 만드는 산업 디자인을 “유해하고” “가장 위선적인” 직업이다.
맥주캔이나 향수병, 과자봉지처럼 상품 내용물보다 몇 배나 비싼 ‘창의적인 포장’ 디자인, 몇 년 마다 자동차를 새로 바꾸도록 처음부터 몇 년 주기로 스타일의 변화를 치밀하게 계획한 디자인. 이렇게 폐기되어 버리는 자동차는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달나라까지 계속 쌓아올려도 처치곤란이고, 포장 쓰레기는 이미 지구 안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인간이 필요한 도구와 환경을 만드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디자인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에서 산업계와 공동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 밖으로는 쓰레기가 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는 ‘뱅크 오브 플래닛’ 캠페인 포스터.
(출처: 『디자인?!』, 한국디자인진흥원 기획/ 백종원 글) 이 포스터를 보며 한 사람이
평생 배출해내는 쓰레기의 량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키메닉세트
파파넥은 디자이너에게 높은 도덕적 윤리적 책임감을 요구한다. 디자이너들이 봉착한 이런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시간과 재능의 10분의 1을 풍요로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특히 궁핍과 기아 속에 살고 있는 제3세계의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중세 교회에서 십일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핀란드어 ‘키메닉세트kymenykset’에서 유래한 이 아이디어는 당시 젊은 산업디자이너의 새로운 마인드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30~40년이 지난 현재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처에서 자신의 시간과 학식, 재능을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봉사자들, 그리고 지구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고심하는 미래학자들의 디자인 철학에도 그대로 스며있다.     



파파넥이 말하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
디자인은 ‘저렴하고, 단순하며,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의 조건은 모든 진리가 그렇듯 단순해 보인다.
파파넥이 만든 디자인은 가능한 폐품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수작업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외관을 포장하는 장식은 모두 배제되고 제품이 잘 작동되는 원리만을 고수하는 원칙에 따른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62년 개발도상국을 위해 개발한 ‘9센트짜리 깡통라디오’이다. 폐품 깡통에 바람을 차단하는 양초처럼 심지와 왁스를 넣어 대체 전지를 만들고(왁스가 없으면 말린 쇠똥이나 나무, 종이로 대신할 수 있단다), 여기서 얻은 에너지로 이어플러그 스피커를 작동시키는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전세계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에서 현대 문명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교통과 통신 수단에서 단절된 지역의 주민 대부분은 문맹자였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깡통라디오는 새로운 삶을 향해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었다.



    9센트짜리 깡통 라디오 (출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이런 철학과 목적으로 파파넥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지원한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식량부족 국가에서 쥐와 미생물, 뜨거운 기후으로 인한 막대한 식량 손실률을 막기 위해 1970년에 제작한 ‘태양열 냉장 저장고’ 와 장애아동들을 위한 자전거와 운동기구들, 심지어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식료품을 옮기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던 쇼핑봉지를 임산부들을 위해 개발한 어깨에 매는 ‘끈 달린 쇼핑백’, 장시간 앉은 자세에서 일하는 사무실 근로자의 고충을 헤아린 사무용 의자 등 매우 다양하다. 

 



 




(위) 장애아동의 수중치료를 위한 운동용 부유기. 퍼듀대학교 대학원생 로버트 센의 디자인
(아래) 파파넥이 디자인한 사무용 의자 (출처: 『인간을 위한 디자인』)



 통합 디자인과 제너럴리스트
파파넥의 ‘좋은 디자인’ 정신은 ‘통합 디자인’과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디자인은 쓰임과 목적, 재료 선택, 제작 및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용자의 환경과 제한된 조건을 세심하게 배려하여 제작되며, 이후에도 그곳 현지인이 간단하게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로 인한 수익은 이것을 직접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디자인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체에 특허권으로 매도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며, 신문과 같은 공공 매체에 공개하여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본래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와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생산된 제품은 “인간과 환경간의 의미 있는 연결로 이루어진 산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그들의 사회적 생활과 사고 방식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총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과 교육 환경은 특수한 한 분야에만 집중된 전문적인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고 있다. 이런 스페셜리스트의 디자인은 파파네식으로 말하면 “나쁜 디자인”이다.


그가 제시한 통합 디자인의 원형은 자연으로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얻고 자연의 생물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사용한 뒤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구석기시대의 삶의 방식에서 길어온 것이다. 제너럴리스트는 이처럼 삶의 전체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황폐해진 자연과 주거 환경, 생산품, 도구 등의 기능과 구조를 변경하여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해야 한다.


“디자인은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라는 그의 말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그가 의미하는 제너럴리스트는 디자인에 종사하는 전문가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것이며, 물론 소비자인 우리들도 포함된다. 아름답고 “섹시”해 보이는 포장보다는 용도와 기능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똑똑한 소비자’로 거듭나고, 과도한 소비생활과 주거환경을 의식적으로 개선하려는 아주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파파넥의 후예들
책의 집필시기(초판:1963~1971년, 증보판: 1981~1984년)를 보면 파파넥의 생각이 얼마나 선구적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30~40년 전에 그가 제시한 대체에너지 자원이나 초소형 전기자동차와 대체에너지 자동차, TV와 교육 기기를 통한 교육, 오염제거 시스템 등은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 이미 사용되고 있으며, 아직 실현되지 못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다양한 분야의 미래학자들에 의해 연구 개발되고 있다.
파파넥의 뒤를 이어 현재 활동 중인 대표적인 그룹이 싱크사이클ThinkCycle인데, 이들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학자, 기술자, 발명가, 연구자들이 온라인 시스템에서 공동으로 작업하여 저개발국가를 위한 콜레라 치료 기구를 만들었다. 기존의 치료 기구는 1대에 2000달러인데 싱크사이클에서 디자인한 것은 단돈 1달러 25센트였다고 한다. 9센트짜리 깡통라디오의 또 다른 후속작이다. 
이밖에 파파넥 정신을 잇는 후예들의 아름다운 활동은 2009년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월드체인징』(Worldchanging.com/ 알렉스 스테픈 엮음, 2009 바다출판사)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현대판으로 읽으면 좋을 것같다.     



    라이프스트로우 LifeStraw (디자이너 V. Frandsen): 물 부족 지역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정수기 (출처: 『디자인』)



    시소파워See-saw Power (디자이너 D. Sheridan): 지역사회로 대체 에너지 시스템 확산



   Q드럼Q-drum: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먼 거리에서 식수를
   운반하는 과다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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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10.01.30 01:03
    촬영 끝나고 이제 들어왔습니다.^^* 창디게시판에 회원님들께서 글 남겨주시니, 행복합니다.ㅎㅎ 류은희님께서 정성들여 남기신 후기, 알찬 내용 큰 도움됐습니다!! 총무보다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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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10.01.30 01:03
    창디모임 게시물들은 왠지 예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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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희 2010.01.30 01:03
    드디어 글자로만 채워진 흑백지면에서 쬐금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매우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창디회원님들의 평균수준에 미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요.
    두 분 총무님들, 도움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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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경 2010.01.30 01:03
    책을 온전히 읽은 세명이 모여 읽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두시간,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예쁜것은 디자인이고 디자인 과정을 거친 것은 비싼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에게 보여주시려고 그 두껍고 무거운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오시고, 이렇게 멋진 후기까지 남겨주신 류은희님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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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10.01.30 01:03
    소박하고 아름다운 독서담소에 제가 개인적 일로 참석못한 점과 까다로운 책 선정과 관련하여 석고대죄하옵니다.ㅜㅠ // 이정원총무님, 내용도 알차다고 해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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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정 2010.01.30 01:03
    '사람을 향한 디자인',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보다 필요로 하는 것을 디자인 하라'
    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디자인에 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류은희선생님~~그날 들려주신 여러가지 이야기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이렇게 꼼꼼하게 정리,마무리까지 해주시다니......♥♥♥
    다음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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