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집과 주변을 묘사한 그림인데,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죠. 바로 위의 그림들에서 집이 주변과 어우러져서 아스라이 사라져가거나, 하나로 어우러져가는 부분으로 다루어졌다면, 세한도에서는 집과 주변이 적나라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디테일의 수준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힘있는 터치로 잔가지와 잎파리들까지 묘사된 디테일한 표현의 나무들.

의미는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했지요. 초라한집과 푸르른 나무라는 대립의 구도로 기본 요건은 완성되는 셈입니다. 자 그러면 이 충돌은 어떻게 강화되고 있을까요? 질문을 통해 나아가 보겠습니다.

변함없는 제자의 충성과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하는 4그루의 상록수들은 정확하게는 3그루의 잣나무와 1그루의 소나무입니다.  왜 이렇게 나뉘어졌을까요? 

집은 그 자체로 사실적인 묘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차라리 우리가 평소에 그리는, 개념도에서의 아이소메트릭isometric에 유사한 정도의 터치로 그려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무엇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늘려져서 그림의 가장 깊은 곳으로까지 잡아 뺀 집의 변형은 어째서일까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려진 면에는 창문 한쪽도 그려지지 않았지요. 집 하나만을 두고 보아도 심상치 않은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어째서일까?

3. 변별성 확보를 위한 자기보정

다시 ‘차이’에 주목하여 그림을 보겠습니다. 집이 늘려짐으로 해서, 집은 그 자체로, 수직적으로 높은 나무들과 대조적인 속성, ‘수평성’을 갖게 됩니다.  애초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간단한 디테일과 사실적 디테일의 집/나무의 충돌과 대비는 이렇게 수직성과 수평성의 대비로 한번 더 확장됩니다. 

집의 수평적인 속성을 더욱 부각하는 것은, 길게 잡아 늘여진 집의 끝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지면과의 접합부가 과도하게 강조되어 있다는 것만 보아도 다분히 의도된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음이 보여지요. 늘려진 집의 면에 그 어떤 개구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역시도, 뒤집어서 생각하면 타당한 이유를 어렵사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써 마련한 집의 수평적 속성에 애꿎은 사실적 묘사로 그 수평성을 끊어놓게 됨에 지나지 않고, 더군다나 집은 간단하게 보여져야 한다는 애초의 질서와도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만일, 집이 늘려지지 않고, 사실적인 비례대로 그려졌더라면, 아마도 집의 2배 이상 높이로 강한 수직적 속성을 갖는 나무들의 힘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고, 결국 애초에 계산되었던 ‘충돌’의 의미가 희석되고 다시 평범한 풍경화로 전락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림에서 집의 앞면에서조차도 지면과 집의 양 벽면이 만나는 부분을 과도하게 강하게 표현한 것 역시도 이를 통해 집의 존재감을 계속하여 강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처럼, 그림속에서 추사를 상징하는 집은 비록 초라할 지언정 – 이 역시도 나무와의 속성간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계산된 결과이지요. -  집의 위계와 당당함은 그림속에서 소나무와 함께 엄연히 그 위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립의 세계에서 오롯이 당당한 추사秋史의 모습은 예의 소비적 비평에서 “역경을 견뎌내는 굳은 의지가 들어있어 한층 진가를 높여준다”라고 단순히 설명되지만, 실상은 바로 그렇게 드러나기 위해서 그림의 구성요소들이 이렇게 치열한 자기 질서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3그루의 잣나무와 1그루의 소나무, 그 비밀을 풀어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두 요소들간의 차이에 집중하여 그 속성을 대별하여 보겠습니다. 분명히 잣나무는, 높이의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음이 그 표현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요. 그에 반하여 1그루의 소나무는 그들과 대별되는, 이른바 ‘조형소나무’로 성격화되어 전체 나무군들 사이에서 유독 완강한 독립성을 가지며 그림에서 오른편에, 즉 집의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집이 깊게 늘려진 또 다른 이유가 발견되는 셈입니다.  3그루의 잣나무는 강한 수직성으로 집의 수평성과 대별되는 변별력으로 충돌의 구도를 완성하고, 1그루의 Figurative object로 기능하는 소나무는 그 뒤의 초라한 집을 배경으로 하여 추사秋史의 유일한 사랑하는 제자 이상석의 변함없는 우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  이것은 추상화일까 구상화일까 풍경화일까?

그 경계를 가름짓기는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추사秋史가 나무와 집만을 가지고 ‘디자인’한 이 풍경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위의 이야기들로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적인 읽기를 위해 위해 차이의 개념이 유효한 분석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은 소개가 된 듯 합니다.

4. 추사秋史가 전하는 교훈.

아마 우리가 추사秋史의 입장이었어도 저렇게 그렸을까요? 아니면, ‘그래! 나는 초가집, 너는 소나무하며 우리 둘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보자’ 하며 별뜻없이 좋아 보이는 풍경을 만들려고 애를 쓰지는 않았을까요? 

열망을 뜻하는 영어 단어 디자이어desire, 그리고 디자이너designer, 이 둘은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어의 생김새부터 비슷하고 내용적으로도 그러하지요.  Designer에게는 익숙하게 지내왔던 것들, 익숙하게 그려왔던 그림들에 대한 도전적 열망desire. 바로 그것이 제일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추사秋史의 세한도를 보고 있노라면 바로 그같은 생각이 메아리 칩니다. 

나무 몇그루와 집한채가지고도 수천 수만가지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그 조합을 통해 본인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구성을 완성하는것,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핵심영역입니다. 아무리 의도가 그럴듯하다 한들 이 과정이 부실하면 그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요, 공허한 의미만 메아리치는, 캐치프레이즈만 남는 조성공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5. 조경에게 디자인을 묻다. 

자, 조경에게 디자인을 물어보겠습니다. 보통 조경이라고 하면, 삼천리 금수강산 푸르게 푸르게 식으로 그저 나무심고 돌놓고 하는 직업으로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친환경생태공원이라고 하면, 대부분, 초록색으로 구불구불한 자연형 형태로 습지도 있고, 언덕도 있고 하는 것을 떠올리기 십상이지요. 마치 통상적인 산수화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경보여주기식의 그림처럼 말이지요. 여기에 세한도에 버금가는 수준의 작품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West 8이라는 네덜란드의 조경디자인회사에서 시행한   Eastern Scheldt Storm Surge Barrier를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1986년 네덜란드정부는 남부 Zeeland지역의 해안선정비계획의 일환으로 공사기간 중 발생하게 될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임시 댐을 건설합니다. 이 임시 댐은 전체 해안정비공사가 끝난 뒤에도 예산상의 문제로 계속 방치되고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섬은 어느새 새들의 터전이 되고 추후에 예산을 확보한 정부는 이미 새들의 낙원이 되어있는 이 섬을 해체하기보다는 공원화하는 것을 결정, 디자인 공모전을 열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1등으로 당선된 Adriaan Geuze가 이끄는 WEST8의 제안입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이 섬의 주인공, 새들의 습성입니다. 검은 새와 하얀 새가 같이 하늘에서 지내다가 땅에 내려와서 쉴 때는 검은 새는 검은 색의 환경에서 지내고 하얀 새는 하얀 배경을 선호한다는, 자연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보호색을 그들의 환경으로 삼는 습성-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한 것이지요. 새들의 안전한 터전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검정색의 배경과 흰색의 배경을 제안했고, 선택한 재료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검은 홍합과 하얀 새조개였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를 위하여서는, 그것들을 과감한 스케일로 반복되게 하여, 60-80킬로 이상으로 짧게 지나쳐가는 찰나에 잠깐 마주치는 슈퍼그래픽이 만드는 독특한 장소성으로 인류와 조우하게 합니다.

실제 공모전의 지침에는 공원을 모래사장과 잔디언덕 등으로 조성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만일 정부에서 원하는 대로 잔디공간, 식재등으로 “조성”된, 생태”형” 인공자연으로 만들어졌다면, 사람에게도 의미 없고, 새들에게도 그다지 환영 받는 장소는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Adriaan Geuze는 그렇게 하는 것은 의미 없는 형태놀음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조건이나 문제점들에 대하여 나만의 특수한 해법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 특수한 해법이란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게 가져갈수있지요. 요는, 나의 특수한 해법이란것을 얼마나 명쾌하고 명료하게 드러날수있게, 하느냐에 그 디자이너의 능력이 달려있다고 할수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어본, 추사 김정희와 West8의 디자인에서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