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詩社

칼럼
2008.07.17 22:47

창디 2차 워크샵을 마치며

조회 수 3594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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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디회원 여러분!

워크샵 내내 무더운 가운데서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유지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워크샵을 마치면서 우리 주변의 도시와 건축을 보며 껄쩍지근한 현상들에 대한 언급이 다소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생각을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


19세기 초엽 영국 정부는 대탐험가 로스 형제에게 가까운 북대서양 항로개척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로스 형제는 기지를 출발해서 몇 시간 항해하지 않아 선수를 되돌려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북쪽 해안을 따라 얼마 항해하지 않아 바다가 끝나고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아메리카 연방 정부에서도 피어리 제독에게 의뢰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여서 그의 보고서에 따라 그 거대한 산 이름을 크로컬랜드라 명명하고 지도에 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 얻은 영토를 미 연방정부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기 위해 크로컬랜드 탐험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탐험가들은 처녀지 앞에서 함성을 지르고 정신나간 듯 들뜨고 있었다. 그들은 빙해를 가로질러 도보로 몇 시간 행군을 시작했지만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그 산은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쪽 빙원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들 앞을 우람하게 가로막고 있던 산이 별안간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 아닌가? 도깨비에 홀린 듯 했었을 그들의 모습!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크로컬랜드는 태양 빛의 복사에 의한 신기루였다니...





 약속의 땅 , 최음의 땅 크로컬랜드! 정체불명의 땅 크로컬랜드! 석양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색이 드러나는 허무와 망연자실의 땅, 크로컬랜드! 예정된 좌절의 땅 크로컬랜드! 나는 크로컬랜드의 신기루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한국의 근,현대건축이 겪어온 질곡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 근,현대 건축의 여정은 경제개발의 기치아래 실로 숨가쁜 변혁의 세월로 점철되었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던으로 다시 해체로 이어지기까지 숫한 건축사조의 이입과 명멸이 반복되어 왔다. 어쩌면 서구 근대건축의 발빠른 변신의 도정을 뒤따라가며 수용과 대응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교훈을 정리하거나 평가하지도 못한 채, 늘 허덕여왔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자학일까? 비평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서구 모더니즘은 대안의 땅 크로컬랜드가 아니었던가?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곳으로 향하는 대열에서의 일탈이란 곧 실패를 뜻했다.


 


세월이 흘러 거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다수가 공유할 패러다임이 무너져버린 듯한 지금, 대중들은 건축을 패션이라고 여길만큼 문화적으로 숙성(?)되었고 그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흉내라도 내어야하는 분위기가 도처에 창궐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네 집 안팎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국적불명의 형태를 은유하거나 차용한 기호들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마다 거리는 세계화의 기치에 걸맞게 때묻은 기억도, 역사도 말끔히 씻어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많은 건물들이 서구의 최신판 형태언어들을 내면화하지 않은 채 크로컬랜드의 환상은 실험정신의 고취라는 명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그 위용을 더해가고 있다.





가히 현 세태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건축은 “빛 아래 숙련된 정확하고 장엄한 유희”(“Le jeu savant, correct et magnifique sous la lumière")로 충만된 모습이다. 다만 그 본래의 말뜻과는 달리, 여기서 빛은 건물을 축복하기보다는 한껏 광택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본질은 눈부신 광택에 철저히 가려져 더욱 드러날 수가 없다. 그 빤질빤질한 광택의 위력에 힘입어 당분간 크로컬랜드에는 석양녘이 찾아오지 않을 전망이 유력해 보인다. 광택은 문명의 상징이요, 진보의 기표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세대에 도시의 광택내기를 다 끝마치기라도 할 것처럼 “역사”도 서슴없이 밀어내고 갈아치우기 위해-기리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조국의 모습이 바로 이것인가?-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광택이 문화라는 편리한 옷을 걸쳐 입고 설쳐댈 때이다. “지금 이대로가 최고”라고 설득하면서 왜곡된 모더니티의 편한함과 세련됨에 안주하도록 세뇌한다. 그리하여 건축은 껍데기의 변화만을 부추겨, 거리엔 ‘인테리어’풍(?)의 케쥬얼한 화싸드가 광택과 더불어 세련됨을 뽐내면서 호들갑스럽게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건축세태의 리얼한 단면이다.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설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라고 노래했던 소월의 허기진 시대는 지났으나, 우리는 이제 집이 있어도 서럽다. 배고팠던 시대에는 그나마 집을 갈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 했건만, 어느새 껍데기가 알맹이를 자처하는 세상이 되어 서러운 줄조차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까 ? 생각은 없고 이미지만 범람하고 있으며, <사유의 집> 없이 <언어의 집>만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태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한없이 미끄러져만 가는데, 누군가 제동을 걸어 그리 가면 크로컬랜드로 가는 길이라고 말해야 야 하지 않을까 ? 그러려면, 우선 자신이 살고 있는 <실존의 집>부터 다시 둘러보아야 한다. 환상을 거두어 근본을 묻는 문제제기 없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집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벽 아래 걸레받이는 왜 삼천리 방방곡곡이 새까만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가 ? 저 벽에 달린 값비싼 장식은 왜 저렇게 생뚱맞을까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저 집 모양은 왜 저렇게 튀어 보이는가 ? 겉모습은 화려한데, 집 속은 왜 이리 답답하기만 한가 ?  우리 집 아파트는 내부를 뜯어고친지도 얼마 안 되는 데, 왜 이리 지루하기만 할까 ? 아무리 도(盜)선생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파트 1층을 저렇게 철창을 치는 방법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가 ? 왜 우리는 거실에서 앞동의 스산하기만한 뒷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등등.... 





막상 질문이 시작되면 이처럼 디테일에서 아파트 단지, 도시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질문의 내용은 심미적인 가치에서 윤리적인 가치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삶에 깊숙이 개입된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주거의 문제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듯하다. “고객이 OK할 때까지”라고 하지 않던가 ? 소비자들이 깐깐해야 제품이 좋아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 막상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집다운 집을 염원하려면, 집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엇이 문제인 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집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 생각의 깊이와 언어의 기교가 일치하는 한 편의 시처럼, 두고두고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감동의 집을... 빛과 그림자로 직조된 침묵만으로도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집을... 실존에 뿌리를 두지 않고 허공에 들떠있는 크로컬랜드에는 그런 집이 없다. 좋은 집을 읽다보면 신기루의 정체도 파악되는 법이다. 그리하여, 다시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건축과 도시 이야기들을 작가블로그 http://blog.yes24.com/kuj725 에 틈나는대로 올리려 합니다.  블로그도 알고보니 한 채의 집처럼 지인들의 방문이 자주 있어야 허전하지 않을 듯합니다.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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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철 2008.07.17 22:47
    나이가 들면 욕심을 하나씩 버리라고 했는데 책에 대한 욕심과 공간에 대한 욕심은 맨 마지막에 버릴 것 같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살고 싶은 집을 그려왔습니다. 지금도 그리고 있지요. 저는 잠이 안 올 때도 집을 짓고, 무료하게 기다릴 때도 집을 짓고,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솟구칠 때도 집을 짓고, 마음이 괴로울 때도 집을 짓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 집니다. 한때는 골판지를 사다가 모형집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땅은 독서산방 터가 될 것입니다. 언덕배기를 좋아해서 비스듬히 지형에 따라 반지하 2층집을 짓고 싶었지요. 반지하 북창 휴게실에 앉으면 파란 들판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한쪽 켠에는 소형 무대가 있어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고 북클럽 토론도 가능하지요. 넓고 완만한 나무 계단을 따라 1층에 올라가면 남북이 통하는 거실과 동창이난 식당과 주방(몸이 약한 아내의 동선을 줄이기 위해 출입구와 가까이 부엌 창고가 북동쪽에 위치)이 있고, 서쪽으로는 게스트 룸이 두 개 있어 먼 데서 온 벗이나 결혼 한 자녀식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이층에 부부 전용 거실에 별을 볼 수 있는 배란다가 남쪽으로 나 있고, 동남편 한 켠에 아늑한 침실, 북서편에는 서재가 있습니다. 여기서 평생 책 읽고 책 쓰고, 거실 남향 앞 뜰 밖에 작은 연못가에는 1년생 화초와 야생화를 가까이 심고, 그 뒤에는 연산홍과 철쭉, 앵두, 배롱나무, 산수유 등을 심고, 서쪽 담장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잣나무, 히말라야시 등 키 큰 나무를 둘러싸고, 동편 입구에는 동백, 장미, 사철 등 키작은 꽃나무와 관목들로 담장을 대신하고, 북쪽에는 감, 대추, 배, 복숭아, 사과 등 과일 나무로 그늘 밭을 만들 생각입니다. 김억중 교수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창디 모임에 갈 때마다 제가 지을 집의 설계도는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그 사이버 공간에 푸근한 마음을 담아놓고 현실세계로 돌아와 즐겁게 일을 합니다. 정년 퇴임 후가 될 테니 한 십삼년 남았습니다. 얼마나 또 디자인이 바뀔지 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집모양이 점점 김억중 교수님의 마음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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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영석 2008.07.17 22:47
    1.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구성, 조직, 공간창조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구성은 나열이 아니라 창조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인물 120명을 머리속에 책상앞에 프스트-잇으로 메모하면서 소설 쓴다는 소설가 김탁환 교수 생각이 났습니다. 구성이나 조직을 잘하는 사람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많이 사유하고 사람들은 우선 종단연결과 더불어 이곳 저곳 관련 분야를 적절하게 횡단연결하여 맥을 정확히 짚고 핵심을 듣는 이의 눈높에 맞춰 쉽게 설명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2. 독서클럽에서 좋은 사람들, 이 염천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신바람나는 김교수님 , "차이는 다 뜻이 있는 것 이여 " 강의를 듣는 것은 정말 산들 바람처럼 그야 말로 꿀맛입니다. 지난 온지당 "이화에 월백하고" 끝나고 나서는 온지딩 대문앞에서의 배꽃향기와 수통골에서 내려오는 차갑기 조차 한 새벽 봄바람에 너무 행복했고 항상 자정 넘어셔야 끝나는 뇌과학 공부모임에 용량부족한 뇌가 터질것 같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3. 우리 경제와 학문이 발전함에 따라 각 부분에 그만한 역량이 축적되어가면서 사유의 눈이 생겨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니 보고도 외면해야 했던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 됩니다. 경제적 여유와 정보통신 기술발전이 젊은이들의 시각을 넓히는데 큰 역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국력과 지력에 맞게 100권독서크럽이 좋은 독서, 좋은 집, 좋은 음식을 정의하고 이를 실제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의마에서 창디모임은 구성/공간창조에서의 창의성 훈련은 물론 좋은 집, "그 자리 그런집" 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유를 하는 나침판 역할이 될 것입니다.

    4. 강교수님은 독서산방 좋은 터 자리는 이미 있고 설계/개념도 확실히 있고 안방, 서재에서 보이는 풍경까지, 즉 위치, 크기, 방향 모든 구상을 마쳤고 더우기 조경, 심을 나무 배롱나무 위치 까지 생각을 마쳤으니 이제 터 파고 "그 자리에 그런 집' 을 올리기만 하면 되겠군요. 작은 음악회를 할수 있는 소형무대, 북클럽 토론공간 까지 배려하니 마음 속의 궁궐 입니다. 좋은 집을 보여주는 실행 사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되어 동행을 늘리게 될 것입니다. 빨리 우리 강교수님 독서산방 궁전에 가고 싶군요. 가서 큰 음악회도 하고 독서토론을 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곳엔 이 맘때면 매미가 한없이 울러대겠지요.

    5. 수우너머 고미숙박사 낙산 산책길에 핀 들꽃을 보고 "어머 ! 이꽃은 산책 나온 우리를 위해 여기 피어있구나" 모든 사물은 다 의미가 있는것. 이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도 이르는 길인 듯. 그런데 100권독서클럽이 왜 있고 또 창디모임은 어찌하여 "그 자리 그런집" 공부를 한다는 것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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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혁 2008.07.17 22:47
    단지 최음의 크로컬랜드를 찾았다고, 느꼈다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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