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리진 책을 읽다가 지금까지 배운것과 접목돼 다시한번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읽기 쉽게 술술 넘어가게 정리했습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됩니다.
사실 a4 3장 반입니다. 지루한게 당연합니다. 지루하다는 거 각오하고 어디한 번 얼마나 지루한지 읽어보자. 하는 그 마음으로 보면 조금은 읽기 쉽지 않을까ㅋ
교차로~ 모두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자연에는 네 가지 기본적인 힘이 있다. 질량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강한 핵력, 쿼크와 경입자에 모두 작용하는 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마찰력과 같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힘들은 이 기본적인 힘이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예)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 - 전자기력이 작용하기 때문.
살면서 이 네 가지 힘으로 분류되지 않은 현상은 없다.
과학의 기원과 기원을 다루는 과학에 대한 단상
우리의 뇌리에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지구에서 살아온 ‘경험’이 깊이 박혀 있다. 따라서 기원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자연현상이 중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주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알게 될 수록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수천억 개나 되는 은하 가운데 하나인 보통 은하의 변두리에 위치한 보통 별을 돌고 있는 먼지로 이루어진 보통 행성에 살고 있을 뿐이다. 우주적으로 볼 때 우리가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인간은 심리적으로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과학에서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주를 자세하게 관찰하는 것과 관찰된 사실을 성명할 수 있는 기초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얻은 결론을 의심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함으로써 과학은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과학의 이런 속성이 다른 사람의 결론을 못 믿도록 유도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과학자의 결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에게 그의 오류를 지적해주거나 그의 결론이 틀릴 수 있는 중요한 이유를 말해주는 과학자의 행동은 좋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명상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신참자의 귀를 때리는 고승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다.
따라서 과학이 이루어낸 성과는 한 사람이 얻어낸 전리품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의 성취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 사회는 선임자의 생각을 무조건 따르는 사회가 아니며 그런 사회가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과학자의 이런 태도는 특히 이론적인 분야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만약 과학이 단지 우주에 대한 또 다른 설명체계의 하나였다면 과학은 결코 많은 것을 이룩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이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의 결론들이 실제로 작용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에 과학이 자연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을 본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네 가지 중 하나의 태도로 반응한다. 첫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로 과학적 방법이야말로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큰 희망(ex 박문호 박사님)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우주를 이해하는 데는 과학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방법은 아예 다른 방법은 아예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과학을 무시하는 사람들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과학을 흥미롭지도 않고, 불분명하며, 인간의 영혼에 반한다고 여긴다.(ex 예전의 나. 무시는 커녕 아예 모름 무시도 알아야 하니까^^) 소리나 영상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마술’과 ‘기계’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세 번째는 소수의 사람들로 과학이 그들의 오래된 신앙을 방해한다고 생각해 과학적 결과들이 틀렸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과학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ex 그러나, 그래서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 그러나 과학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인 자세는 과학의 회의적인 체계와는 다르다.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면 그들을 회의적인 과학자들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무슨 증거를 대면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겠는가?” 그들은 과학이 틀렸다는 증거만 찾을 뿐 과학의 결과가 옳다는 증거는 모두 외면한다. 이러한 반과학들은 존 던이 현대 과학 최초의 위대한 성과에 대해 1611년에 쓴 시 “세계의 해부:첫번째 기념일”을 읽고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철학이 모든 것을 의심 속으로 불렀네.
불의 원소는 꺼졌는지
태양은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그리고 지구도.
어디를 찾아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인간의 지혜는
어디에도 없네,.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이 소모되었다고 할지니
행성이나 하늘에서
그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그들은 이 세상이
원소로 분해되는 것을 보리라.
모든 것이 조각나고 모든 결합은 사라지리라.
시의 배경: 17세기 영국사회는 새로운 과학지식의 등장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갈릴레오의 천문학적 발견 앞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존 던은 당시의 사회변화를 인정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존 던은 당시의 사회 변화를 인정하고 흔들리는 있는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새로운 철학이 모든 것을 의심 속으로 부르는” 시대에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