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박민규/ 창비

by 정광모 posted May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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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소설은 따뜻하다. 그의 소설 소재인 치매노인, 불치병 환자, 신용불량 대리운전기사, 광고대행사 직원, 미래의 인간, 17,000년 전의 원시인 들은 따뜻하게 그들의 기막힌 인생을 긍정한다.

자신들을 구렁에 빠뜨린 사회를 한 번 뒤집어엎거나 살인을 해서라도 보복할 법도 하건만 그들은 우울하게, 때로는 유머로 자신들의 신세를 반추하고 뒤돌아서서 흐린 조명을 따라 사라진다.

소설집 ‘더블’은 모두 18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그 단편을 읽으면 박민규 이 양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부딪힌 상황에서 한 걸음 더 재껴 내딛는다. 한 번 더 도움닫기를 해 본다. 그의 소설에는 온갖 직업에 구석기시대 사람부터 쳔년 후의 미래 인간까지 나타나 마구 설을 푼다. 그의 특허품인 독특한 행갈이가 지나가면 그들의 사연은 굴곡지며 어떤 사람은 아예 뒤집어진 롤러코스터가 되며 혹자는 추락한다.

그 스토리 사이에 엉뚱한 유머가 끼어든다. 천년 후에 해동된 높으신 냉동인간이 자부동(방석)을 찾거나 노인요양병원에서 만난 첫사랑 치매 여인 앞에서 오줌을 싸거나, 애써 준비한 행사용 비행선을 쫒아가면서 마주치는 사냥꾼의 총질, 한강 아치에 자살하러 올라간 사람 앞에 경찰관이 내놓는 한국전쟁 당시 폭파된 한강철교 사진 같은 유머들은 작품 속에 틀어박혀 나도 몰라, 이게 뭔 황당 시추에이션인지 하며 나를 올려다본다.

박민규가 창조한 주인공은 우리 일상에서 보는 인물인데다, 그들이 쓰는 용어도 최신용어라 현실에서 소설 속으로 막 뛰어든 인물 같다.

그 인물들은 마라톤을 뛰며 뒤쪽 선수들이 어디까지 왔나 슬쩍 뒤돌아보는 선수들의 시선처럼 이 세상이라는 울타리에서 여기저기에 끼어든다. 그 에피소드들이 대개 있을 법 한 일인데, 인생에 불쑥 끼어든 재수 나쁜 사고처럼, 또는 인연 좋은 만남처럼 인생을 헝클어놓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는 어떤가를 온화한 눈으로 묻는다.

18편의 단편집에서 ‘낮잠’과 ‘아치’와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가 좋았다.

그리고 작가 프로필에 간략하게 정리된 ‘ 1968년생. 소설가’라는 소개가 좋았다.

작가가 군말이 뭐가 필요하랴.

작가의 말에서 지난 5년 동안 두 편의 장편과 스물 네 편의 단편을 썼다는 사실도 좋았다.

그 간 쓴 작품 양이 엄청나다.

더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도 좋았다.

그가 장편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면 좋겠지만 뭐, 이대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