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필로소피

by 이중훈 posted Nov 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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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필로소피'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매튜 크로포드는 소위 잘 나가는 '엘리트'였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의 연구소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피곤했고 월급은 많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회의가 밀려왔다.

싱크탱크 연구소장으로 일한 지 다섯 달 만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오토바이 가게를 차렸다.

신간 '모터사이클 필로소피'(이음 펴냄)는 오토바이 수리공이 된 크로포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의 가치를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우선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지식노동은 머리만 쓰고, 육체노동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몸만 쓰면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은 육체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싱크탱크에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손을 써서 일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했다"고 고백하면서 오토바이 수리 등 육체노동이야말로 지적 능력과 네트워크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가 출발하지 않는 원인을 알아내려 할 경우 실제로 오토바이를 분해하기 전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봐야 한다.

또 오토바이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와 냄새, 감촉'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까지 구별해내는 직감을 기르려면 오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만일 이 오토바이가 이미 20년 전쯤 자취를 감춘 제조사의 제품이라면 오토바이 애호가나 골동품 기계 수집가, 수리공 모임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저자는 "손으로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지닌 인지적, 사회적 풍요로움과 타인의 마음에 호소하는 매력을 고려하면 왜 이것이 교육의 요소로서 그토록 평가절하를 당해왔는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한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교육,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물질문화와 소비주의, 인간의 행위주체성과 자율성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1990년대 들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사회에 진출할 '지식 노동자'로 준비시키면서 기술수업은 낡은 시대의 유물이 돼버렸으며, 기술의 발전으로 공구를 사용할 일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손으로 하는 일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행위주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정신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손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다. 즉, 손기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어떻게 인간의 존재가 빛나게 되는지 깊이 고민하는 일이다."

정희은 옮김. 320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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