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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기차를 탄다.
지난 해, 천안에서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새벽열차를 타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보다는 조금의 시간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먹을 새도 없이 허둥지둥 집을 나선다.


열차 안에 몸을 싣고 나면,
이제부터는 온전한 내 시간이다.
동터 오는 창밖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지난 강의를 뒤적이다가,
문득 생각에 빠져든다.



어제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얼굴을 보자는데 굳이 주말이다.
강의 들으러 가야하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했더니
뒤늦게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그렇게 먼 길을 가서 뜬금없이 뇌과학이라니,
배워서 뭐할거냐고 묻는다.
그러게. 나는 왜 매주 미친듯이 이 길을 달려가는가.



그러다가 가만히 머리를 매만진다.
지금 이러한 생각의 틈바구니에서, 외우려고 펼쳐둔 코돈표와 씨름하는 동안
내 시냅스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이 잠시 상상이 된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달리고 부딪치고 있을 전기적 흐름들도 그려진다.
입력된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구워지려면 유전자가 발현되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반복된 자극이 중요하다는 것.
외우기 위해 열심히 되뇌이는 동안에 내 신경세포에서도 유전자가 “ON” 되고
새로운 소극이 생겨나고 있을 거라는 상상.
통통해진 소극들이 분열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난 유난히 암기에 약하다. 거기에 덧붙여 숫자에도 약하다.
어디를 방문할 때도 번지나, 동 호수가 나의 취약점이었다.
주소를 기억하기보다 나의 몸이 그 위치를 기억하게 하는 게
더 쉬울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암기라는 부분 때문에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을 다 싫어했던 것 같다.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할 때도 많았다.
암기 위주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공연한 성토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한번에 깨어져 나간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놓치며 살아오고 있었는지 깊이 깨닫게 된다.
내가 왜 공부를 못했었던가 하는 원인도 알게 된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암기의 필요성이 절감되니까,
외우려는 노력이 힘들지가 않게 된다.
정보의 축적. 기억이 창의성을 불러온다는 말씀에 깊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던 생소한 세계가 내게 불러온 변화는
내 삶의 궤적을 바꾸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이루어볼 용기도 가지지 못한 채
오랫동안 막연하게 품고만 있었던, 꿈을 향해 조심스런 한걸음을 내딛는다.
시작의 설레이는 몰입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하고
서울로 가는 4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한 순간을 이제야 만나는 분함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너무 많이 감사한다.

  • ?
    이홍윤 2010.02.19 13:32
    항상 웃는 얼굴로 열성적인 홍종현님
    파워풀합니다.

    중국속담에 "늦게 시작함을 후회하지 말고 하다 중지할것을 걱정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화이팅
  • ?
    문건민 2010.02.19 13:32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한 순간을 이제야 만나는 분함,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확 다가오네요. 지금이라도 만나서 너무 많이 감사한다, 라는 말도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 ?
    윤정희 2010.02.19 13:32
    저의 처지와 비슷한 동지를 만난것 같아서 너무 기쁘요.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공부한다면 시너지가 더 폭발적으로 생길 수 있을거라고 믿어요.(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맞아" "맞아"를 함께 외치면서 말이죠~!)<--- 1회강연비만 입금했다면 벌써 포기 했을텐데 4회까지 일괄입금 이라는 일을 저질러 놓고나니 일단 끝까지 도장을 찍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내일을 기다립니다.(아직 암기세포가 벌떡 일어나지 않아서 꼬시고 있는데 참 많이 힘듭니다.)
  • ?
    이병은 2010.02.19 13:32
    글을 읽으며 설레요.
    나에게도 꼭 이런 마음이 있지 확인하면서
  • ?
    문영미 2010.02.19 13:32
    공부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늘 고맙지요.
    저도 홍종연님만큼 열정과 인내로 공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올해도 더 힘내서 열심히 합시당!!
  • ?
    임석희 2010.02.19 13:32
    홍종연님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옵니다..
    열공하시는 모습, 잘 보고 배울께요~!!
    건강 무리하지 마시고... 운동하세욤~!!! 그리고, 맘껏~~~ 공부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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