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by 이중훈 posted Sep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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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강판권, 2002, 지성사



설화와 민담, 역사 속에는 참 많은 나무가 등장한다. 달에 비친 계수나무, 단군 신화의 박달나무, 불교 미술의 비밀을 반영하는 향나무 등등. 나무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 봐도 역사가 술술, 한 권은 족히 된다. 나무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려는 새로운 시도 하에 탄생한 이 책에는 나무 그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과 나무에 얽힌 다양한 설화, 역사적 사실, 저자 자신의 감상 등이 쉬운 이야기체로 담겨 있다.

주변의 사물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 자체는 '성리학적 격물치지'를 본받은 태도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센다는 것은 나무에 깃든 사연을 더듬는 행위이고 더 나아가 인간의 생활, 정신사를 읽는 태도라는 설명. 눈 덮인 해인사에서 꿈에 그리던 박달나무를 만났을 때의 정황 설명, 살구씨와 닮아서 '은빛 살구(은행)'라고 불리는 은행알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인문학의 위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인문학 부흥을 위한 새로운 공부론을 제안하는 한 젊은 역사학도의 낮은 목소리가 있다. 성리학적 격물치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주변의 사물을 살피는, 이른바 근사(近思)의 공부법이 바로 그것.

이 책의 저자인 강판권 박사는 나무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다. 나무에 깃들여 있는 사연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어느덧 인류의 기나긴 정신사적 궤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학교 교정에서, 동네 어귀에서, 답사의 길목마다에서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세고 있다. 나무를 세는 것은 이제 그에게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나무 세기에 관한 보고서'이다.


한 그루 나무를 통해 역사를 읽는다는 일이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예컨대 "환웅이 내린 박달나무는 어디에 있을까?"라거나 "백악기 시대 속씨식물, 달 속의 계수나무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떠올렸다고 해보자. 이들 질문들은 어쩌면 역사 이전의 단계, 즉 신화의 세계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여기에는 강한 '추측'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과 상상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이들 나무들에 대한 '역사적 실체'가 조금이나마 만져지지 않을까?

본문에서는 저자가 실제 박달나무와 계수나무를 찾아 안타깝게 헤맨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 박달나무를 만났을 때의 감격을 그는 이렇게 전한다. "도로변에 우뚝 선 물박달나무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박달나무를 만났다는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물박달나무가 내가 상상했던 우주목(宇宙木) 혹은 세계수(世界樹)와는 달리 너무 왜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안아 보았다. 굵지 않은 나무인지라 작은 가슴에 들어왔다. 비가 내린 뒤라 나무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본문 31∼32쪽)." 그러면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왜 박달나무를 숭배하게 되었는가로 이어진다. 그 이유가 다듬잇방망이나 홍두깨, 빨랫방망이와 관련이 있다면, 과연 신성한 나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어진다.

화가 고흐의 자살과 측백나무를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고흐는 왜 죽기 직전에(1년 전) <측백나무>를 그렸을까? 과연 그는 측백나무가 불로장생의 상징이자 실제로도 정신병 치료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측백나무에는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좋은 '백자인'이 있다.) 이런 생각들을 좇다 보면 참으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논어』의 「자한」 편에 나오는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의 송백(松柏)을 우리는 흔히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해석하는데 사실은 '측백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저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그럼 이런 생각은 어떤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된 팔만대장경의 비밀이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에 숨어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는 이 팔만대장경판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250개의 표본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는 기존의 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팔만 가지의 번뇌를 새긴, 81340매의 경판을 이루는 나무의 주종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류였다고 한다. 또,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오지 않고 / 무심한 일편 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더라"는 시조처럼 큰 뜻을 품었던 옛 선비들의 기상을 기리는 대목에서는 오늘날 이땅의 지식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케 한다. 정녕 벽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있는데 봉황은 선비가 그리운 것은 아닌지…….

이렇듯 이 책은 열여섯 나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에 얽힌 역사와 신화를 더듬어 보는 책이다. 하지만 단지 나무에 얽힌 온갖 지식의 단편들을 주워 모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무'라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새롭게 역사를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방법'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더욱 풍요로운 경험들은 독자의 몫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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