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by 한창희 posted May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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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북스 회원여러분,


회원 한창희 입니다.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글 올려보네요!


제가 오늘 새벽에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글을 쓰는 사유는 그저 자랑을 일삼으려 함은 아니고요,
해당의 분위기와 느낀 생각들 그리고 고민을 털어놓기 위함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산 불구경 하듯 그냥 뒤짐 지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제 자리 걸음만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무칠 것 같아서 다녀왔습니다.



향후 방문하실 예정이 있으신 분께 조그만 도움이 되고자 방문에 관한 개괄사항을 설명하면,



삽시간에 대전, 청주 노사모 회원과 일반조문객분들 마흔 다섯 분의 뜻이 모여져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그나마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평일에다 출발시간이 밤 9시라 교통정체로 인한 어려움은 별로 없이 예정시간 안에 도착했습니다.
자가용 조문객들은 진영공설운동장에 주차를 시키고 셔틀버스를 타고 봉하마을 입구까지 와야 하는데, 그시간도 만만치가 않거든요!
그런데 45인승 버스가 만(滿)차로 움직이니 봉하마을 입구까지 직통으로 들어가는 편리성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생필품이 부족하다하여 생수도 버스 화물칸에 가득 채워갔고요!



봉하마을 도착시간이 밤 11시 40분경,
줄서서 조문을 마친 시간이 새벽 3시 경 이었습니다.
조문까지 세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이지요!
조문인원이 새벽까지 몰려들다보니 한 번에 사, 오십 명이 헌화(獻花)하고,
5초정도 단체 묵념하는 것으로 조문을 마칩니다.
마치 조문이 아니라 참관(參觀)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더군요!



줄을 서 조금씩 장례식장으로 다가가면서 수많은 인간군상을 봅니다.
말씨를 들어보면 전국 각지에서 오셨는데, 새벽시간이라서 그런지 사투리로 봐서는 김해 근방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기나긴 기다림의 건너편에는 줄 선 조문객들의 장관에 혀를 내두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부러움의 시선들이 넘쳐나고,
차가운 밤공기에 칭얼대는 아기를 유모차에 혹은 등 들쳐 업고 온 조문객도 있었고,
이전에 약주를 한잔 하셨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푸념을 하는 진한 억양과 사투리의 부산 할아버지도 계셨고, 조문보다 기념사진 찍기 바쁜 철없어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중간에 나누어주는 우유와 빵을 게걸스레 먹고 챙기는 허기에 찬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걸음씩 거북이 걸음을 걷다가도 저 멀리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가 보일 때면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무언지모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의 심정과 같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는 설명에 도움이 되게 사진이라도 첨부하면 좋겠으나,
깊은 밤의 장례식장에서 플래쉬를 터트려가며 셔터질 하기가 민망스러워서 그 흔한 사진 한 장 찍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마 씹을 거리가 목에 넘어가질 않아서 물 몇 모금마시면서 방명록과 추모 글 간략히 남겼고요!
아쉬운 건, 그야말로 시골이라 주위에 도시조명과 같은 불빛이 없다보니 주변경관을
전혀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마지막을 준비하시던 시간까지는 머물다가 부엉이 바위라도 직접 보았으면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이후로도 봉하마을 방문하실 분들은 너무 많은 짐 가져가지 마시고요!
의복에 있어서는 낮에 가실 때는 최대한 얇게, 밤에는 체온 유지할 걷 옷 준비하세요!
식수와 간식거리를 나누어 주기는 합니다만, 조문객이 많으면 동이 나버리므로 음료수는 별도로 챙기시는게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조문까지 세, 네 시간은 걸리고 기다리는 내내 앉을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낮 시간에는 햇살이 상당히 따갑다 하니 얼굴 잘 타시는 분들은 자외선 차단제나
차양 및 양산 준비하시구요!
무엇보다 화장실이 부족하니 휴게소에서 사전에 용무를 마칠 것을 권해 드립니다.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함을 유념하세요!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차내에서 한명씩 간략한 자기소개와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러 여성분께서 울먹이시더군요!
그래서 영정 앞에서 나마 실컫 울고,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기를 바랬는데,
기다림에 지쳐 막상 조문의 차례가 되면 모두들 무표정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일관되고 기계화된 그 모습이 거북스러워서 주변의 분위기를 물리치고,
절이라도 올려서 그런지 늦은 잠의 꿈속에 대통령님이 보이시더군요!
지성이면 감천인 모양입니다.
몸은 파김치처럼 숨죽어 부대끼지만,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줄일지 모른다는...




봉하마을은 이미 또 하나의 성지(聖地)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개념만이 아닌 종교적 관념의 성지..
5.18의 핏자국이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만들었다면,
5.23은 민주화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 이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그간 핍박과
냉소의 지역 내에 의인(義人)의 한(恨)과 선혈(鮮血)을 담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성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깊은 밤을 넘어 한 새벽에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각지에서
모여드는 모습과, 누구하나 강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자원봉사자와,
점 점 더 쌓여가는 후원물품들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것이 바로 인간 노무현의 힘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우리 민족의 정서 저 밑바탕에 깔려있는 순수와 선(善)의 의지, 정의에 대한 갈망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의 시작 시기를..
그것이 풀벌레의 날개 짓과 같은 미약함 이던,
사자후와 같은 표호(豹虎)이건 상관없습니다.


이미 하지 못한 말의 무게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써야할 글에 대한 중압감에 손톱 끄트머리가 하얗게 바래졌습니다.
망자를 보내드리는 마지막 예(禮)로써 삼가 참고 있습니다.
그 시작이 영결식(永訣式)이후가 될지,
삼우제(三虞祭)를 마치고 일지,
사십구제(四十九齋)를 지내고 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가 좋을까요..?



이것이 현재의 딜레마입니다.





추신 : 정치색을 넘어서,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느낌을 전하고자 하는 차원이니 이점 곡해 없으시길 바랍니다.